미국 에너지부가 전기자동차 연비 계산법 최종안을 공개했습니다. 전기차 보급 가속화를 위해 차량 연비 등급을 더 낮게 책정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에너지부는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각) 이같은 내용이 담긴 ‘석유환산연비(PEF·Petroleum-Equivalent Fuel) 계산법’ 개정 최종안을 공개했습니다.
석유환산연비란 전기차 연비(㎞/kWh)를 내연기관차 연비로 환산하기 위한 비율을 말합니다. 에너지부는 이때 사용되는 석유등가계수를 조정해 전기차의 환산연비를 낮출 계획입니다.
완성차 기업이 연비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더 많은 전기차를 판매하도록 독려한단 취지입니다.
그러나 작년 4월 공개된 초안보다는 약화했단 평가가 나옵니다.
그리니엄이 최종안을 확인한 결과, 규제 시점이 연기됐으며 삭감 비율이 낮아진 것이 확인됐습니다.
에너지부, 전기차 판매 촉진 위해 환산연비 72% 삭감한 이유 💰
이번 규제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기업평균연비규제(CAFE)’를 알아야 합니다.
기업별 당해년도에 생산된 자동차의 평균연비를 산출하여 규제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고효율·친환경 자동차 판매 촉진을 위해 2012년 버락 오바마 전(前) 대통령 당시 도입됐습니다.
전기차의 경우 석유환산연비 계산법에 따른 환산연비가 적용됩니다. 평균연비가 기준치를 넘지 못한 기업은 초과한 연비에 비례해 벌금이 부과됩니다.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기업도 적용 대상입니다.
지난해 4월 에너지부는 전기차의 석유환산연비 계산법 개정 초안을 발표합니다.
초안에 따르면, 2027년부터 전기차 환산연비를 산출할 때 사용되는 석유등가계수를 기존 대비 72% 삭감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석유등가계수는 현재 1갤런(약 3.78리터)당 82㎾h(킬로와트시)에서 2027년 1갤런당 23.2㎾h로 삭감됩니다.
쉽게 말해 전기차의 환산연비가 이전보다 낮게 책정된단 것. 그렇다면 에너지부가 되레 전기차에 불이익을 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기차의 환산연비가 너무 높아 완성차 기업의 전기차 판매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전기차의 환산연비는 내연차보다 높게 책정됩니다. 반면, 내연차 중에서도 미국에서 인기 있는 차종인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SUV)는 연비가 낮습니다.
그간 전기차를 조금만 팔아도 인기 차종의 낮은 연비가 상쇄됐다는 뜻입니다. 일례로 2023년 기준, 제너럴모터스(GM)의 미국 내 신차 판매량 중 순전기차(BEV) 비중은 2.9%에 불과했습니다.
에너지부, 전기차 연비 최종안 “적용 시점 연기·삭감 비율 완화” ⏰
해당 초안은 스텔란티스·포드·GM 등 미국 3대 완성차 기업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이들 업체는 초안 시행 시 2027년에만 105억 달러(약 14조원)의 벌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습니다. 스텔란티스 30억 달러(약 4조원), 포드 10억 달러(약 1조 3,000억원), GM 65억 달러(약 8조 7,000억원)에 달합니다.
에너지부 또한 업계의 우려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결과, 최종안에서 에너지부는 법안 적용 시점을 2027년에서 2030년까지 단계적 도입으로 늦췄습니다. 또 2030년 석유등가계수는 기존 72% 삭감(갤런 당 23.2㎾h)에서 65% 삭감(갤런당 29㎾h)으로 완화됐습니다.
▲현재 방법론 ▲2023년 초안 ▲2024년 최종안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방법론에 따르면 순전기차 기준, 300mpg*의 환산연비가 적용됩니다. 2023년 초안의 경우, 72%가량이 삭감돼 84mpg가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2024년 최종안에서는 106mpg의 환산연비가 적용됩니다. 이에 대해 에너지부는 “(현재) 전기차 기술과 시장 침투력이 부족하다”면서 “(기업들이) 변경 사항을 반영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mpg: 마일당 갤런·12.16㎞/1리터
“무임승차 종식” vs “자동차 업계 승리” 평가 엇갈려 💬
환경보호단체 천연자원보호협회(NRDC)와 시에라클럽은 최종안 발표에 늦었지만 환영한단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들은 2021년 전기차의 석유환산연비 과대 산정을 지적하며 미 에너지부에 석유환산연비 계산법 개정을 청원한 곳들입니다.
피트 허프먼 NRDC 선임 변호사는 친환경 자동차 전환에서 “자동차 제조업체의 무임승차는 끝났다”고 평가했습니다. 그간 완성차 기업이 전기차를 적게 판매하면서 내연차 판매를 상쇄했던 관행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일각에서는 완성차 업계와 전미자동차노조(UAW) 승리란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존 보젤라 미국 자동차혁신연합(AAI) 대표는 초안은 오히려 “순전기차 생산 의욕을 약화시켰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 때문에 금번 최종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로이터통신 또한 “바이든 행정부가 디트로이트 자동차 제조업체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었다”고 전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미 완성차 3사가 위치한 미시간주 최대 도시입니다.
한편, 최종안은 연방등록부에 게시될 예정입니다. 발효는 게시 75일 이후 시작됩니다.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 나선 美 에너지부 “대선 영향·수요 둔화 때문” 🗳️
에너지부가 정책을 완화한 이유를 단순히 업계 항의 때문만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오는 11월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역 민심을 관리하기 위해 나섰단 해석이 나옵니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의 주요 경합 지역인 미시간주는 미국 자동차 산업과 노동조합의 중심지입니다. 위스콘신주·펜실베이니아주와 함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에 속합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前) 대통령은 바이든의 전기차 전환 정책이 자동차 일자리를 없애고 중국의 전기차 산업을 도울 것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최근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서 판매가 부진한 것도 에너지부가 속도 조절에 나선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앞서 지난 1월 폴 제이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리는 “내연차와 전기차 생산 사이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가 됐다”며 전기차 전환의 속도 조절을 암시한 바 있습니다.
+ EPA도 규제 완화 전망 “2030 전기차 판매 비중 60%→50%대로” 🎯
한편, 같은날 로이터통신은 미국 환경보호청(EPA) 또한 완화된 ‘차량 배기가스 규제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신규 승용차·트럭의 온실가스·미세먼지 등의 배출허용량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규제입니다.
지난해 4월 공개된 초안에 따르면, 2030년 전체 차량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은 6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완화된 최종안에 의하면, 이는 50% 이하로 감소할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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