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패션브랜드 H&M이 스웨덴 투자사와 손을 잡고 설립한 재활용 폴리에스터 합작벤처 ‘사이레(Syre)’를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각) 공개했습니다.
H&M은 섬유 간 재활용 산업의 빠른 확장을 위해 새로운 합작벤처를 설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합작벤처 설립에 함께한 투자사는 스웨덴 임팩트투자사 바르가스홀딩스입니다. 스웨덴의 대표 기후테크 유니콘인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와 녹색철강 기업 H2그린스틸의 투자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간 H&M은 재활용 기업 리뉴셀을 지원하는 등 섬유 재활용에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2월 리뉴셀의 파산 소식으로 신소재 스타트업의 침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됐던 상황.
H&M이 선택한 합작벤처 사이레가 순환소재 산업의 난국을 전환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립니다.
폐페트병으로 만든 옷, 언제까지 순환될까? ♻️
사이레는 순수 폴리에스터와 동일한 품질의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섬유 기업입니다. 화학물질인 글리콜을 사용해 섬유 폐기물을 단량체(모노머)로 분해 후 다시 중합하는 화학적 재활용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폐의류를 원료로 한다는 점에서 여타 재활용 기업과의 차별화됩니다.
현재 재활용 폴리에스터(rPEP) 상당수는 폐페트병을 원료로 생산됩니다. 페트병은 염료와 각종 첨가물이 포함된 섬유와 달리 재활용이 쉽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페트병을 재활용한 섬유는 다시 재활용이 어려워 결국 폐기물이 된다는 것.
이 때문에 사이레는 섬유 간 재활용으로 만든 ‘순환 폴리에스터(cPET)’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옷에서 옷으로, 진정한 순환 재활용이 가능하단 설명입니다.
회사 사명 또한 스웨덴어로 ‘바느질(sy)’과 라틴어로 ‘반복(re)’이 결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사이레’ 자체는 스웨덴어로 산소를 뜻합니다. “섬유 산업을 탈탄소화해 미래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뜻이라고 사측은 설명했습니다.
사이레는 순환 폴리에스터의 경우 석유 기반 대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최대 85%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이레, 세계 섬유시장 70% ‘초거대’ 규모로 공략 나서 🎯
시작부터 ‘초거대 규모(hyperscale)’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데니스 노벨리우스 사이레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목표가 “초거대 규모로 진정한 섬유 간 재활용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이레는 연내 가동을 목표로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또 2032년까지 북미와 남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 12개 공장을 가동한단 계획입니다. 노벨리우스 CEO는 향후 세계 12개 공장 건설에 약 20억 달러(약 2조 6,300억원)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이레는 이를 통해 순환 폴리에스터 300만 톤 이상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티셔츠 160억 장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내연기관차 300만 대의 연간 배출량에 상응하는 1,500만 톤의 CO2 배출을 피할 수 있다고 사이레 측은 설명했습니다.
H&M 또한 대규모 계약으로 사이레의 확장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H&M에 따르면, 이번 합작벤처는 지난 2년간 스텔스 모드*로 추진됐습니다.
H&M은 향후 7년간 총 6억 달러(약 7,900억원) 규모의 장기구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H&M이 현재 사용하는 페트병 재활용 폴리에스터의 50%가량을 조달·대체할 계획입니다.
이같은 공격적 확장의 기저에는 거대한 폴리에스터 시장이 있습니다. 폴리에스터는 세계 전체 섬유 시장의 70%를 차지합니다. 가격이 저렴할 뿐더러, 가볍고 내구성과 방수성을 지녀 여러 섬유와의 혼합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스텔스 모드: 일정기간 기업 창업 등의 현황을 비밀로 유지하며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신생 스타트업을 뜻한다.
선도주자 리뉴셀의 파산, 사이레는 다를 수 있나? 🤔
사이레와 H&M의 포부는 야심찹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최근 파산한 리뉴셀 또한 섬유 간 재활용 시장을 노렸습니다. 또 H&M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단 점에서 사이레와 유사성이 많습니다.
사이레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노벨리우스 CEO는 사이레의 순환 폴리에스터가 ‘플러그 앤드 플레이(Plug & Play)’ 솔루션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즉시 시작’이란 뜻으로, 별도의 설정 없이 운영된다는 컴퓨터 용어입니다. 산업계에서는 별다른 전환 비용이나 시설 투자 없이 빠르게 채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확장돼 쓰입니다.
즉, 순환 폴리에스터는 기존 폴리에스터와 품질이 거의 같기 때문에 공급망에 빠르게 투입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페트병 재활용 폴리에스터가 빠르게 시장에 안착된 모습에서도 확인됩니다.
시장 크기 자체도 다릅니다. H&M의 경우 전체 소재에서 폴리에스터 비중은 20%가량인 반면, 셀룰로오스로 만든 직물인 비스코스는 5% 미만에 불과합니다.
패션 시장뿐만 아니라 자동차·인테리어 등 다양한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노벨리우스 CEO는 이케아를 비롯해 주요 글로벌 브랜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각 지역별 밸류체인(가치사슬)과 연결할 계획입니다. 지역 내 섬유폐기물이 지역 내 의류 생산으로 순환되는 ‘클로즈드루프(Closed-loop)’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이에 따라 12개 공장 설립 부지는 폐기물 수거와 청정에너지, 인력, 섬유 산업 접근성 등을 고려해 선정할 예정입니다.
노스볼트 투자사의 ‘성공 방정식,’ 기대감 높여…관건은 ‘그린 프리미엄’ 💸
합작벤처 투자사 또한 사이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부분입니다.
투자사인 바르가스홀딩스는 그간 확고한 성공 방정식을 통해 노스볼트와 H2그린스틸 등 굵직한 유니콘 기업을 키우는데 성공한 이력이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탈탄소 솔루션 기업에 대규모 투자 의사를 가진 고객을 모으고, 구매 약속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식입니다.
폭스바겐과 노스볼트의 관계가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투자자에는 예비 고객사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H&M과 사이레의 사례에서도 반복됐습니다.
노벨리우스 CEO는 “리뉴셀을 잘 알지는 못한다”면서도 “우리는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견고성을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이레의 남은 과제는 역시 가격입니다. 노벨리우스 CEO는 “초기에는 그린 프리미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린 프리미엄이란 청정기술을 사용하는 대신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뜻합니다.
소비자들의 부담감이 상당한 상황에서 이런 비용 증가는 기업에게 부담이 됩니다. 쉬인과 테무 등 초저가 의류 시장이 성장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H&M은 이미 자사의 이익 목표에 지속가능한 소재에 대한 프리미엄 비용을 포함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H&M 등 대형 브랜드의 수요 확보로 규모가 확장함에 따라 생산비용이 점차 줄어들 수 있단 점도 긍정적입니다. 노벨리우스 CEO는 향후 생산비용이 절감됨에 따라 최종적으로 순환 폴리에스터를 사용한 의류당 추가 생산비용은 0.5달러(약 660원)정도 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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