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재활용을 선도해 온 스웨덴 스타트업 리뉴셀이 상장 4년만에 파산했습니다.
리뉴셀은 2020년 미국 타임지 선정 최고의 발명품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은 순환 스타트업입니다. 낡은 청바지 등 직물로 재생섬유인 ‘서큘로오스’를 만들어 의류폐기물 해결사로 기대받았습니다.
같은해 11월 리뉴셀은 북유럽 주식시장 나스닥 노르딕에 상장했습니다. 덕분에 기업가치는 17억 달러(약 2조 3,000억원)를 넘었습니다. 이듬해 레티시아 로카솔라노 스페인 왕비가 스웨덴 방문에서 리뉴셀의 순환소재가 사용된 드레스를 입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런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리뉴셀은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5일 그리니엄이 스톡홀름 지방법원 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리뉴셀 경영진은 지난달 25일(이하 현지시각)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법원이 이틀뒤(27일) 해당 신청을 승인함에 따라 파산이 공식 선언됐습니다.
CEO 해임에서 파산까지 “리뉴셀에 무슨 일이?” 🔍
리뉴셀 측은 파산 신청을 결정한 이유로 계획했던만큼의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되짚어보면 리뉴셀 파산 신호는 지난해 10월 실적 부진 발표에서 감지됐습니다.
2022년 리뉴셀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첫 공장 ‘리뉴셀1’을 완공하며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10월, 리뉴셀의 판매 실적은 예상을 크게 하회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며 이를 수습하기 위해 패트릭 룬드스트롬 최고경영자(CEO)를 해임했습니다.
올해 1월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전체 인력의 25%를 감축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사회가 추가 자금 확보에 실패하면서 최종적으로 파산을 선고한 상황입니다.
마이클 버그 이사회 의장은 “환경, 직원, 주주 및 기타 이해관계자에게 슬픈 날”이라며 이는 “패션 산업에 리더십과 변화 속도가 부족하단 증거를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리뉴셀, 매출 부진 원인 “공급망 복잡성 문제 때문” ⛓️
리뉴셀의 파산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옵니다.
그중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패션 산업 특유의 공급망 문제입니다. 패션 산업은 직물 산업보다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더 복잡합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일뿐더러 원료부터 생산, 운송, 판매망이 전 세계에 걸쳐있습니다.
공급업체를 쉽게 변경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더욱이 신소재를 도입해 재고가 늘어날 경우 고스란히 비용 증가로 연결됩니다. 기존 패션 기업이 새로운 소재 도입을 망설이는 원인입니다.
미 경제지 포브스 또한 리뉴셀 파산의 원인으로 “기반시설 및 공급망 통합이 없었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스웨덴에 위치한 리뉴셀은 패션 산업의 주요 공급망이 위치한 동남아시아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그간 사측은 스웨덴에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투자 자본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지불 의사가 있는 소비 시장이 갖춰져 있단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원료가 되는 섬유폐기물 수급처는 물론, 주요 고객사의 방적 공작이 위치한 곳은 동남아시아입니다. 중국·인도 등 아시아 시장에서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패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단 점도 유념해야 합니다.
아쉬움 남긴 리뉴셀, 파산 피할 방법 없었나? 🤔
리뉴셀 특유의 사업모델이 공급망 문제를 더 어렵게 했단 지적도 나옵니다.
리뉴셀은 재생섬유인 서큘로오스를 생산해 원사 공장에 판매합니다. 원사 공장을 찾지 못할 경우 그대로 재고로 남습니다.
미 다트머스대학의 니콜라이 안겔로프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이로써 리뉴셀이 공급망 전체를 통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쉽게 말해 리뉴셀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원료부터 의류 생산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뤄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리뉴셀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서큘로오스 채택을 가속화하기 위한 구성한 ‘서큘로오스 공급업체 네트워크(CSN)’가 대표적입니다. 파산 발표 나흘 전(21일)에는 35개 파트너가 신규 가입하며 151개 기업 네트워크로 확대됬습니다.
그럼에도 필요한 만큼의 수요 확보에는 실패한 상황인 것.
리뉴셀이 스웨덴이 아닌 인도를 공략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수 있단 주장도 나옵니다. 지속가능성 전문 기고자인 브룩 로버츠-이슬람은 포브스에 리뉴셀이 인도 같은 순환패션의 잠재력이 있는 국가를 먼저 공략했어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도는 주요 의류 생산국인 동시에 급성장하는 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단 점도 유리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패션 대기업 신소재 활용 약속…“공약(空約)으로 남았단 비판도” 💬
한편, 차세대 소재 수요를 이끌어야 할 패션 대기업이 소극적이었단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소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약속과 달리, 정작 신소재 활용은 일회성 컬렉션이나 한정판 의류 출시에 그친단 지적입니다.
일례로 2020년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은 향후 5년간 리뉴셀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해 9월 ‘2020 봄여름(SS) 컨셔스 컬렉션’에서 서큘로오스 소재를 선보인 직후였습니다.
자라 모기업인 인디텍스 또한 작년 10월 리뉴셀로부터 재생섬유 2,000톤을 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해당 발표 당시 리뉴셀의 서큘로오스 전체 판매량이 14,400톤이었단 점을 고려하면 대량 계약입니다.
그러나 정작 리뉴셀은 이러한 약속들에도 11월까지 어떠한 주문도 받지 못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후로도 수주 확보를 위해 다수의 고객사와 논의를 진행했지만 추가 주문 계약은 없었습니다.
작년 12월 최대 주주인 H&M을 비롯해 투자사와 금융계로부터 약 1,000만 달러(약 13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으나 경영난 해소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조슬린 윌킨슨 보스컨컬설팅그룹(BCG) 파트너는 “공급망 파트너들은 아직 브랜드 전반에 걸쳐 명확한 메시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윌킨슨 파트너는 “그들(패션 브랜드)은 명확한 메시지를 줘야 하며, 이는 주문을 뜻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업계 충격 남긴 리뉴셀, 순환소재의 미래는? 🔍
이번 파산은 리뉴셀 한 기업을 넘어 순환패션 전환에 대한 시스템 실패란 지적이 나옵니다.
지속가능 패션 플랫폼 패션포굿은 소셜미디어(SNS) 링크드인을 통해 “리뉴셀의 파산은 차세대 소재 확장에 있어 엄청난 어려움을 극명하게 일깨워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리뉴셀의 실패일뿐만 아니라 브랜드, 공급망 파트너, 투자자 전반의 긴급성 부족으로 인한 집단적 실패”라고 비판했습니다.
나아가 리뉴셀의 실패로 패션 브랜드 내 신소재 투자가 억제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옵니다.
회사 파트너였던 니콜 라이크로프트 캐노피 플래닛 대표는 리뉴셀이 신소재 업계에서 규모 확장의 선구자로서 상징성 측면에서도 중요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리뉴셀은 파산 이후에도 회사가 새로운 소유주 아래 기업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단 입장입니다.
사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회사가 향후 18개월에서 최대 2년간 예상 공급량에 해당되는 재생섬유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151개 파트너가 소속된 서큘로오스 공급업체 네트워크 또한 리뉴셀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라스 헨리크 안데르손 변호사는 현재 하루 15통의 문의 전화를 받고 있다며 여러 기업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안데르손 변호사는 사업 운영을 지속할 기회를 찾고 있으며 인수 희망 기업은 오는 3월 15일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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