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출시된 한정판 텀블러가 미국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미국 텀블러 브랜드 스탠리가 스타벅스와 협업해 출시한 분홍색 텀블러의 이야기입니다. 해당 텀블러는 정가 49.95달러(약 6만 6,600원)로 올해 1월 출시됐습니다. 이 텀블러를 사기 위해 일부 고객은 매장 밖에서 밤샘 캠핑을 하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품귀 현상이 빚어진 이후 스탠리의 한정판 텀블러는 온라인에서 한때 정가의 10배가 넘는 최대 600달러(약 8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15일 그리니엄이 경매 사이트 이베이를 확인한 결과, 스탠리 한정판 텀블러는 여전히 평균 가격이 150달러(약 19만원) 이상에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한정판 텀블러를 구하기 위한 경쟁을 두고 ‘스탠리 매니아(Stanley Mania)’란 신조어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이같은 열풍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행동을 촉발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화재 차량에서도 멀쩡한 ‘스탠리’ 텀블러”…북미 Z세대 사로잡아 🔥
1913년 설립된 스탠리는 등산객과 캠핑족을 위한 보온용기를 전문으로 만드는 아웃도어 브랜드입니다. 스탠리가 일반 대중들에게도 화제가 된 계기는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년 11월 14일(이하 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 틱톡에 차량이 불에 완전히 탄 영상이 올라옵니다. 다니엘이란 인물이 올린 영상 속 차량은 불에 타 곳곳이 새카맣게 그을리고 녹아내려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운전석 오른쪽 컵홀더에는 주황색 텀블러가 놓여 있었습니다. 빨대가 휘고 재가 묻었을 뿐, 텀블러는 손상된 부분이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그가 텀블러를 컵홀더에서 꺼내 흔들자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립니다.
해당 영상은 현재 9,640만 회가 넘는 조회수와 5만여개 이상의 댓글이 쌓여 있습니다. 영상이 화제가 되자 스탠리는 다니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그러면서 해당 고객에게 새 텀블러와 차를 선물하겠다고 스탠리는 밝혔습니다.
남성 아웃도어 브랜드 이미지가 강했던 스탠리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합니다. 화재를 이기는 탄탄한 내구성과 뛰어난 보온·보냉 성능이 입증됐단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관련 바이럴 마케팅 영상이 틱톡과 X(구 트위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했고, 스탠리는 미국 Z세대(1996~2010년생) 사이의 필수 아이템으로 탈바꿈합니다.
스탠리 2023년 매출 1조원 추정…“韓서 ‘이효리 텀블러’로 불려” 📈
스탠리는 국내에서도 인기몰이 중인 브랜드입니다. 현재는 종영된 JTBC의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유명 배우 이효리가 계속 들고 다니는 모습이 방영됐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스탠리 텀블러는 종종 ‘이효리 텀블러’로 불립니다.
스탠리가 2023년에 판매한 ‘퀜처 텀블러’만 약 1,000만 개에 이릅니다. 작년 회사 총매출은 7억 5,000만 달러(약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0년 스탠리 총매출이 7,000만 달러(약 930억원) 미만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급속하게 성장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지난 4년간 퀜처 텀블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병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며 “(텀블러가) 다양한 색상과 마감재로 판매된 덕에 스탠리가 창립 초기 100년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여성 고객층을 사로잡아 회사 매출을 크게 향상시켰다”고 분석했습니다.
인기가 불러온 텀블러 과소비 “1개만 최대한 오래 쓰는 것이 환경에 도움” 🥤
문제는 스탠리 텀블러가 많은 인기를 끈 나머지, 수십개 혹은 100개 이상의 텀블러를 보유한 사람이 나타나고 있단 것.
극히 일부에 불과하긴 하나, 최근 한정판 텀블러 가격이 정가보다 10배 이상 웃돈에 거래되면서 이같은 과소비는 더 증폭됐습니다.
일반적으로 텀블러는 재사용이 가능한 덕에 일회용컵 보다는 친환경적인 제품으로 인식됩니다.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엇갈립니다. 온실가스 배출량, 생물다양성 손실, 물소비량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기후변화행동연구소(ICCA)가 내놓은 연구를 예로 소개할 수 있습니다. 당시 연구소는 300밀리리터(㎖) 용량 ▲텀블러 ▲플라스틱컵 ▲종이컵에서 나온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했습니다. 텀블러 세척 시 물소비량도 같이 포함해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제조·사용·폐기 단계에서 나온 온실가스 총량은 텀블러가 671g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플라스틱컵 52g, 종이컵은 28g에 그쳤습니다. 텀블러와 일회용컵을 매일 1번씩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온실가스 총량은 반전됩니다.
연구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텀블러 1개를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것이 기후대응과 플라스틱 오염 예방 측면에서는 더 의미가 있단 것입니다.
미 컬럼비아대학 순환경제 전문 교수인 타노스 부르살라스 박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NGC)에 “일회용 플라스틱병 생산에 더 적은 에너지가 소요될 수 있지만 플라스틱 오염 영향은 인간과 해양 환경 모두에 훨씬 더 큰 위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텀블러 회수·수리 서비스 제공 등 선형경제 아닌 순환경제로 나아가야” 🔧
컬럼비아대 기후학교 부학장 겸 디자이너인 산드라 골든마크 교수는 NYT에 “(텀블러 같은) 다회용컵의 요점은 이론적으로 하나만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는 다회용컵 구매의 증가는 그만큼 제조로 인해 온실가스 등 환경적 영향이 늘어난단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환경 컨설팅 기업 WSP의 순환성 프로젝트 담당자인 제시카 헤이게스 또한 비슷한 지적을 내놓았습니다. IT(정보기술) 전문매체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헤이게스 담당자는 스탠리 측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제품을 계속 생산한다면 환경에 되려 해로울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탠리 같은 텀블러 브랜드가 선형경제에서 벗어나 순환경제로 넘어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제조·사용·폐기를 넘어 텀블러를 회수해 수리하거나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단 것이 헤이게스 담당자의 말입니다.
골드만크 교수도 스탠리 같은 텀블러 브랜드들이 “수리나 수리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기존에 고객들이 가지고 있던 다회용의 외형을 바꾸는 등 재미있는 방법이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스탠리 텀블러 열풍, 과소비 관련 논쟁 일으켜 🤔
스탠리도 또한 지속가능성을 핵심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는 2025년까지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의 최소 50%와 포장재 100%를 재활용 소재로 만들겠다고 사측은 약속했습니다. 현재 재활용 철강 소재 사용률은 23%입니다.
다만, 산업계 전반에서 재활용 철강 소재 수요가 늘어난 반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인 만큼 스탠리의 실제 목표 달성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고 NYT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전했습니다.
이 가운데 NBC뉴스는 “스탠리 텀블러 열풍이 과소비에 대한 중요한 논쟁을 촉발시켰다”고 전했습니다. 이 논쟁이 스탠리가 처음도 끝도 아니란 것이 NBC뉴스의 분석입니다. 그러면서 다수의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다회용품의 일회용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