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억 6,000만 개.

지난 5년간(2017~2021년) 국내 주요 카페 14곳와 패스트푸드점 4곳에서 사용된 종이컵 소비량입니다. 지난해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준환 국민의힘 의원은 주요 카패와 패스트푸드점의 일회용컵 사용량 자료를 환경부로부터 받아 공개했습니다.

이는 환경부와 일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체결한 곳에서만 제출한 내역입니다. 즉, 국내 종이컵 소비량은 실제로 이보다 더 많단 것입니다. 환경단체 자원순환사회연대는 환경부 내 공식 통계를 기반으로 국내 연간 종이컵 소비량을 230억 개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종이컵 사용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단 것이 중론입니다. 문제는 종이컵 재활용률은 5%대 수준이란 것.

종이컵은 방수를 위해 컵 내부에 폴리에틸렌(PE) 코팅이 되기 때문에 일반 종이와 함께 재활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이컵만 따로 분리수거하면 되나, 아직 종이컵을 따로 모을만한 기반시설(인프라) 자체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2500억 개 종이컵 중 단 1%만 재활용…굿에디 “컵까지 먹어서 없애자” 🍪

해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연간 2,500억 개 이상의 종이컵이 전 세계에서 사용됩니다. 이 중 단 1%만이 재활용됩니다.

‘종이컵 재활용 및 회복 그룹(PCRRG)’에 따르면, 영국에서만 하루 800만 개의 종이컵이 버려집니다. 그러나 재활용률은 4%에 불과합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자국 내에서만 연간 약 160억 개의 종이컵이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혁신적인 대안은 없는 걸까요? 호주 멜버른에 소재한 포장재 스타트업 굿에디(Good-Edi)가 일회용 종이컵을 대체할 수 있는 식용컵을 개발해 화제입니다.

 

▲ 굿에디 공동설립자인 캐서린 허친스와 애니요 라헤비의 모습 ©Good Edi

귀리 등 곡물로 만든 굿에디 식용컵, 차가운 음료 최대 8시간 담아 🧊

캐서린 허친스와 애니요 라헤비가 설립한 굿에디. 두 사람은 식품 가공 및 포장기업에서 함께 일하며 친해졌습니다.

점심 식사 후 멜버른 시내를 산책하는 동안 도심 곳곳에 버려진 일회용컵 쓰레기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두 사람은 회상했습니다. 사무실 쓰레기통조차 일회용컵으로 꽉 찬 모습에 두 사람은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고자 의기투합했습니다.

재활용률을 높인 일회용컵 설계부터 재사용 컵 시스템 등 여러 아이디어를 고민했다고 두 사람은 회고했습니다.

허친스는 호주 유력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재사용 컵의 경우 사용자의 편의성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고 밝혔습니다.

 

▲ 호주 포장재 스타트업 굿에디가 만든 식용컵은 뜨거운 음료를 최대 45분간 담을 수 있다 ©Good Edi

반납, 수거, 세척 등을 만드는 것이 비용효율적이지 않다고 본 것. 허친스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호주 소비자의 3~5%만이 재사용 컵을 사용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두 사람은 논의 끝에 컵까지 아예 먹어 치우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주방에서 수백 시간 이상을 보내며 식용 컵 개발에 매진합니다.

식품 가공업계에서 20여년의 경력을 가진 허친스에게도 식용컵 개발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식용컵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가 없단 점에서 큰 도전이었다”며 “실험 단계에서 컵에서 음료가 새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고 회상했습니다.

더불어 식용컵의 맛과 향이 음료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어려운 지점이었다고 그는 회상했습니다.

 

▲ 굿에디의 식용컵은 귀리 등 곡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며 전용 기계에서 만들어져 나온다 ©Good Edi

두 사람이 식용컵 개발을 위해 만든 요리법만 250개. 여러 수정 끝에 두 사람은 끝내 식용컵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귀리, 설탕, 코코넛오일 등이 혼합된 이 식용컵은 약 45분간 뜨거운 음료를 담아도 컵에 문제가 없습니다. 차가운 음료의 경우 최대 8시간 동안 담을 수 있습니다. 커피 등 음료의 맛과 풍미에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컵은 와플이나 비스킷과 맛이 비슷할뿐더러, 먹지 않고 버리더라도 최대 6주 안에 100% 생분해된다고 허친스는 덧붙였습니다.

 

▲ 굿에디의 식용컵은 대형 행사 등에서 인기가 많을 뿐더러 소비자 취향에 맞춰 초콜릿이나 크림 등이 컵에 추가될 수 있다 ©Good Edi

굿에디 식용컵 20만여개 판매…빅토리아주 “일회용컵 사용 금지 고려 중” 🇦🇺

허친스와 라헤비, 두 사람은 식용컵 개발 직후인 2021년 굿에디를 공동설립합니다. 같은해 굿에디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식용컵을 세상에 선보입니다.

펀딩을 통해 모인 금액만 14만 8,000호주달러(약 1억 2,700만원). 굿에디는 이 자금을 기반으로 현재 하루 약 500잔의 식용컵을 개발해 판매 중입니다.

굿에디는 설립 이후 올해 5월 말까지 약 20만 개가 넘는 식용컵을 판매했습니다. 이밖에도 호주 내 주요 커피 브랜드 및 음식점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주 식품업계는 굿에디의 식용컵에 주목합니다. 이는 호주 정부의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 정책과 맞물려 있습니다. 2021년 호주는 204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100%를 재활용 또는 재사용할 계획임을 발표했습니다.

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이 위치한 빅토리아주의 경우 올해 2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잉그리드 스티트 빅토리아주 환경부 겸 영유아교육부 장관은 일회용컵 사용 단계적 금지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 굿에디가 만든 식용컵이 사용되는 모습 ©Good Edi

“LCA 없이는 식용컵이 일회용컵보다 나은 선택지인지 알 수 없어” 🤔

멜버른 인근에 위치한 ‘인토커피(Into Coffee)’란 카페는 굿에디의 식용컵을 일찌감치 구매해 사용 중입니다. 카페에 방문한 고객들은 보증금을 내고 재사용컵을 대여하거나, 식용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식용컵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굿에디의 식용컵의 개당 가격은 1.25 호주달러(약 1,000원)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1,000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단 것. 식용컵을 선택한 고객이 컵을 먹지 않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루크 필립스 인투커피 사장은 호주 공영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고객 상당수는 식용컵을 먹지 않고 버린다”고 밝혔습니다.

블룸버그 또한 비슷한 문제제기를 내놓았습니다. 식용컵이 매립지에서 생분해될 경우, 주요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CH4)이 방출될 수 있단 것. 메탄은 이산화탄소(CO2)보다 지구온난화지수(GWP)가 28배 더 강력합니다.

미국 에너지연구기관인 베이커연구소(Baker Institute)는 “LCA(전과정평가) 없이는 식용컵이 일회용컵보다 나은 선택지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소의 레이첼 마인들 에너지·환경 연구원은 블룸버그에 “경제, 최소한의 에너지, 자원집약적인 경로, 수명주기 등이 공급망 전반에 걸쳐 환경 그리고 사회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성”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굿에디 직원이 완성된 컵을 일일히 확인하는 모습 ©Good Edi

굿에디는 식용컵이 종이컵이나 일회용컵 같은 폐기물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대안’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한편, 동유럽 라트비아의 에디블컵(EdibleCup)이란 스타트업 또한 귀리 등 곡물을 활용해 식용컵을 개발했습니다. 불가리아에 있는 컵피(Cupffee)란 스타트업도 2018년부터 마찬가지로 곡물로 만든 식용컵을 개발해 판매 중입니다.

호주 퀸즐랜드주에 본사를 둔 우비팍(Uuvipak)은 감귤껍질과 커피박(커피찌꺼기)로 재사용 가능한 식용컵을 개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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