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도 탈탄소화에 동참해야 한단 압박이 커지고 있으나 정작 업계에서는 노후화된 화물선 교체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피하려고 국적이 불분명한 노후 유조선 이용을 늘린 것도 화물선 노후화를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선박 중개업체 클락슨의 자료를 인용하며 이같이 보도했습니다.
클락슨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5,000톤 이상 전 세계 화물선의 평균 선령*은 13.7년이었습니다. 이는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것입니다.
컨테이너선의 선령은 지난해 말 14.3년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클락슨이 1993년 세계 화물선 평균 선령을 집계한 이래 최고치입니다. 같은기간 유조선의 선령도 20년 만에 가장 높은 12.9년을 기록했습니다.
*선령(船齡): 새로 만든 배를 처음으로 물에 띄운 때로부터 경과한 햇수.
해운업계가 노후 선박 교체 주저하는 이유는? “대체연료 공급·규제 불확실” 🤔
앞서 지난해 7월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경까지 해상 운송 분야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IMO에 따르면, 현재 해상 운송에서 발생한 탄소는 세계 전체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합니다. 이는 전 세계 선박이 사용하는 연료의 99.8%가 화석연료이기 때문입니다.
IMO의 탄소중립 선언 직후 해운업계에서는 탈탄소화 수단으로 노후화된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잔 논의가 오갔습니다. 그린메탄올이나 배터리 등으로 구동돼 배출량 저감 효과가 높은 선박을 뜻합니다.
그러나 정작 해운업계가 탄소배출 규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신규 화물선 주문을 꺼리고 있단 지적이 나옵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그린메탄올이나 암모니아 같은 대체연료의 공급이 불확실한 것도 화물선 교체의 걸림돌입니다. 관련 규제가 아직 불확실하단 점도 투자를 꺼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초 해운업계는 화물선 사용 기간이 15년을 넘기면 교체할 시기가 가까워진 것으로 내다봤으나, 최근에는 15년 된 선박의 시장가치가 크게 올랐습니다.
선박 중개업체 깁슨에 의하면, 선령이 15년 된 한 중형 유조선의 시장가치는 4,000만 달러(약 525억원)에 이릅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시장가치가 129%나 급등한 것입니다. 같은기간 해당 선박을 해체하는 비용은 40%나 올랐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선박 이용료 ↑…“선박 노후화 당분간 계속” 🚢
노후화된 선박의 가치가 오른 이유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선박 이용료가 올랐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 수입을 중단함에 따라 더 먼 지역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며 장거리 수송 수요가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피하려고 ‘회색 선단’으로 불리는 노후 화물선 의존도를 높인 것도 영향을 줬단 분석입니다. 회색 선단은 소유 구조가 불분명하고 운영 회사가 조세 회피처 등 서방 제재의 영향이 잘 미치지 않는 곳에 등록된 선박들을 지칭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일부 기업은 러시아산 원유 운송을 위해 노후화된 유조선을 대거 구매했습니다. FT에 따르면, 인도 해운회사인 가틱선박관리(GATIK)는 지난 2년간(2022~2023년 4월) 러시아산 원유 수송을 위해 58척에 달하는 선박을 구매했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산하 에너지연구소의 트리스탄 스미스 연구원은 이같은 복합적인 영향이 “오염도가 높은 선박이 더 오래 바다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당분간은 노후 화물선의 교체가 빨라지기는 어렵단 것이 업계의 분석입니다. 클락슨에 의하면, 전 세계 조선 능력은 2010년 정점에 이른 뒤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오늘날 조선 능력은 2010년과 비교해 35% 적은 수준입니다.
클락슨의 조사 책임자 겸 분석가인 스티븐 고든은 “현재 컨테이선과 LNG(액화천연가스) 선박에 대한 신규 건조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 선박의 노후 추세는 완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고든 책임자는 “그러나 벌크선과 유조선의 신규 건조는 소규모에 그친다”며 “이들 선박의 노후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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