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독일의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70년 만에 최저치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 기후 싱크탱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이하 아고라)’가 2023년 자국의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관련 결과는 보고서로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각) 공개됐습니다.
독일은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탄소집약적 산업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작년 4월 마지막 원자력발전소 3기의 가동을 중단하며 2011년 약속한 탈(脫)원전을 완수했습니다.
원전 없이 독일이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연구 결과는 독일과 산업구조가 유사한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남깁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서 나타난 배출량 감소 추세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아고라는 단언했습니다.
독일 CO₂ 배출량 1990년 대비 46% 급감, “70년 이래 최저치 기록” 📉
아고라는 독일의 2023년 CO₂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6% 감소한 6억 7,300만 톤*으로 추산했습니다.
전년 대비 7,300만 톤이 감축한 것입니다. 이는 1950년대 이후 최저 배출량입니다.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독일의 연방기후보호법에서 제시한, 2023년 연간 배출량 목표 7억 2,200만 톤과 비교해도 4,900만 톤가량 낮은 수치입니다.
부문별로는 전년 동기 대비(YoY) 🔻에너지 산업(발전) 18% 🔻산업 12% 🔻건물 2.6% 🔻운송 2%🔻농업 1.4% 순으로 감축 추이가 나타났습니다.
*이하 모두 이산화탄소환산톤(tCO₂eq)
독일 CO₂ 배출량 46% 급감이 가능했던 2가지 이유는? 🤔
그중에서도 발전 및 산업 부문의 배출량 급감이 두드러졌습니다. 해당 부문의 배출량이 급감한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독일 내 석탄화력발전이 196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배출량이 4,400만 톤 감축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구체적으로 ▲유럽 전력시장 개선에 석탄 사용 감소 ▲전력수요 감소 ▲주변국으로부터의 에너지 수입 증가 ▲재생에너지 생산량 소폭 증가 등으로 가능했다고 아고라는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독일 내 석탄 소비량은 전년 대비 19% 감소했습니다. 여전히 높은 가격대를 유지 중인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이상고온으로 인한 겨울철 난방 수요 감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와 비교해 2023년 독일 발전원(에너지믹스)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초과했단 대목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난해 독일의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전년 대비 5%가 증가한 268TWh(테라와트시)로 집계됐습니다. 수입 에너지 중 절반가량이 재생에너지였단 점도 반영됐습니다.
둘째, 산업계의 배출량이 전년 대비 12%가량 대폭 감소했습니다.
철강·화학·제지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수요 및 생산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년간(2022년~2023년 10월) 독일 생산지수 추이를 보면 산업 전반 생산지수는 소폭 감소에 그친 반면,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생산지수가 크게 감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렴한 천연가스에서 비교적 고가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으로의 전환이 에너지 집약 산업 내 생산 부진의 주요 원인이라고 사이먼 뮐러 아고라 이사는 분석했습니다.
그간 독일의 제조업은 러시아와 연결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저렴한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허나, 2022년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 직후 천연가스 공급망 다각화에 힘써왔습니다.
그 영향으로 에너지 비용이 상승했고 2023년 산업계의 전력 수요는 전년 대비 12.5TWh 감소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 대비 12% 감소한 수치입니다.
잠정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독일 전체 산업 생산량은 전년 대비 0.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철강·화학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생산량은 전년 대비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3년 감축분 15%만 지속가능 “성장-온실가스 탈동조화로 보긴 어렵” 💬
뮐러 이사는 이번 분석 결과에 대해 “언뜻 보면 긍정적인 메시지”로 보일 수 있다면서도 “배출 감소는 기후정책의 성공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아고라는 2023년 배출량이 전년 대비 7,300만 톤 감축된 요인을 장기·중기·단기로 구분했습니다.
그 결과, 2023년 감축된 배출량의 단 15%만이 영구적인 배출 감축에 해당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성 증가, 축산 개체수 감소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대부분의 배출 감축은 석탄화력발전소 감소와 산업계 배출량 급감 등 단기적 요인에 기인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독일의 경제가 회복되면 배출량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독일 기업이 해외로 이전해 생산량을 회복할 경우 ‘탄소누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지속가능한 감축 방식이 아니란 뜻입니다.
보고서는 산업 구조 면에서도 히트펌프·전기로 등 전기화가 가속화되며 전력 수요는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단 점을 꼬집었습니다.
독일의 2023년 배출 감축을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증가의 고리를 끊은 ‘탈동조화(decoupling)’로 보기는 어렵단 것이 아고라의 지적입니다.
독일 건물·운송 부문 배출량 감축, 수년 연속 기후목표 미달 🏗️
아고라는 건물 및 운송 부문의 CO₂ 배출량 감소세가 수년째 정체됐단 점도 지적했습니다.
2023년 부문별 배출량에서 건물과 운송은 전년 대비 소폭 감소에 그쳤습니다. 연방기후보호법 속 목표량에서도 각각 4년 연속·3년 연속으로 달성에 실패한 것입니다.
먼저 건물 부문의 배출량은 전년 대비 2.6% 감축된 1억 900만 톤이었습니다. 배출량이 소폭 감소했지만 이는 이상고온으로 일시적으로 난방 수요가 감소한 덕분입니다.
단, 작년 하반기에 건물에너지법(GEG)과 열계획법(WPG)이 통과했단 점에서 2024년 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건물에너지법은 2024년 이후 신축건물의 난방 시스템에 최소 65%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의무화합니다. 열계획법은 지방자치단체에게 지역 난방에 대한 계획 제출을 요구합니다. 아고라는 해당 법이 독일 난방 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운송 부문은 상황이 다릅니다.
운송 부문 배출량은 전년 대비 2% 감축된 1억 4,800만 톤이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신차 등록 중 전기자동차 비중이 20% 미만으로 정체됐단 점입니다.
더욱이 지난해 12월 독일 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30년까지 전기차 1,500만 대 보급이란 독일 정부의 목표 달성이 요원한 상황입니다.
산업 경쟁력 확보·기업 해외 이전 막기 위한 독일 정부 역할 강조 💪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단 걸까요?
결론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모멘텀을 유지하고 산업계의 신속한 전기화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아고라는 제언합니다.
아고라는 보고서에서 “화석연료가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화석연료로 인해 증가한 탄소배출량이 유럽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U-ETS)에 따라 그대로 비용에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작년 4월 유럽의회가 EU-ETS에 육상 및 해상 운송, 건물 난방 등을 포함한 ‘ETS 개편안’을 의결했기 때문입니다. EU-ETS의 범위는 앞으로 더 확장될 전망입니다.
고탄소전원으로 인한 배출량 증가가 비용으로 이어진단 뜻은 화석연료의 실질적 비용 부담도 늘어난단 말입니다.
이는 독일의 산업 구조와도 연결됩니다. 5개의 에너지 집약 산업이 독일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분의 3을 차지합니다. 그럼에도 부가가치 창출은 전 산업의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에너지 집약적이나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에 이들 산업의 경쟁력은 에너지 가격에 좌우됩니다. 이에 따라 저렴한 에너지를 찾는 독일 산업계의 해외 이전 움직임도 커졌습니다.
일례로 독일 최대 화학기업 바스프(BASF)는 2022년 중국 광둥성 잔장시에 100억 유로(약 14조 4,3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공장을 신설했습니다. 반면, 본사인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의 생산 규모는 축소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독일 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32%가 자국 확장보다 해외 투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예산 위헌에 재정 공백 닥쳐…“지속가능한 재정 확보가 핵심” 💸
아고라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저탄소 제품의 공공수요 확보 ▲산업계 전기화 전환 기술 개발 등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작년 11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재정 공백 문제가 닥치며 재정 확보가 어렵다는 것.
당시 독일 헌재는 코로나19 위기 대응 예산을 기후변화 대응 예산으로 전용하기로 한 독일 정부의 2023·2024년 예산안을 위헌으로 판결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에만 170억 유로(약 24조 5,000억원)의 예산 공백이 생겼습니다. 위헌 판결 한달 만인 12월, 독일 정부는 대대적인 지출 축소에 잠정 합의했습니다.
기후대응·사회적 결속·우크라이나 지원 등 중요 목표를 위한 예산은 배정됐으나, 친환경 에너지 전환 보조금은 대폭 축소됐습니다. 전기차 보조금 지급 중단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에 아고라는 독일 정부가 탈탄소화를 위한 투자 물결을 촉발하는 한편, 무엇보다 지속가능 재정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