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의 한 디자이너가 가정 내 식품폐기물 발생을 줄일 수 있는 반찬통 뚜껑을 개발했습니다.
키미아 아미르-모아자미란 디자이너가 작년 10월 ‘2023 네덜란드디자인위크(DDW)’에서 공개한 ‘폴코스터(Vorkoster)’ 시스템입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총 식품생산량의 17%가량이 가정과 식당 등 소매 부문에서 폐기됩니다.
해당 연구가 발표된 이후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물부족과 기아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아미르-모아자미 디자이너가 개발한 폴코스터 시스템도 식품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화제를 모은 부분은 그 형태가 일종의 반찬통 뚜껑과 같았단 것.
그는 이 뚜껑이 소비자가 단순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식품의 섭취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는데요.
반찬통 뚜껑만으로 어떻게 식품폐기물을 줄일 수 있단 걸까요?
많은 국가에서 식품의 섭취 가능 일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유통기한을 사용합니다. 이는 소비자에게 식품을 유통 및 판매할 수 있는 날짜를 뜻합니다.
보관 기준을 잘 지킨다면 표기된 유통기한을 조금 초과하더라도 섭취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일부 국가에서는 섭취 가능한 기간인 ‘소비기한’으로 표기를 바꾸는 나라도 등장했는데요.
우리나라도 2023년 소비기한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1년간의 계도기간도 지난해 12월부로 끝나며 소비기한 표시제가 본격 시행된 상황입니다.
문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소비자가 변질 위험을 우려해 먹을 수 있는 식품마저도 폐기하는 일이 빈번하단 것.
여기서 아미르-모아자미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섭취 가능 여부를 손쉽게 알 수 있다면 버려지는 식품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그 결과, 식품의 부패에 반응해 색이 바뀌는 필름을 접목한 반찬통 뚜껑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닭고기와 우유 등 단백질이 포함된 식품의 경우 부패 시 알칼리성을 띤 암모니아(NH3) 가스가 생성됩니다.
과학시간에 배운 것처럼 산과 알칼리는 지시약·검사지를 통해 감별할 수 있습니다.
개발진은 토마토·레몬·양배추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해 암모니아 가스에 민감한 시약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염료로 코팅된 필름을 3D 프린팅한 뚜껑과 결합했습니다.
필름은 반찬통에 담긴 식품이 정상적인 상태일 때는 연한 녹색을 띱니다. 이후 식품이 변질되기 시작하면 암모니아 가스에 닿으며 보라색으로 변합니다.
색상 변화를 통해 직관적으로 식품의 섭취 기한을 알려준다는 점이 특징인데요. 필름이 음식에 직접 닿지 않을 뿐더러, 뚜껑 형태이기 때문에 다양한 용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필름은 중화액을 사용해 색상을 되돌린 다음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아미르-모아자미 디자이너는 사실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디자인 및 시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폴코스터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던 배경에는 유럽 최대 응용과학연구소인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사니 체아 연구원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1년간의 연구 끝에 2021년 이들은 프로토타입(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는데요.
첫 시제품은 식품에 직접 접촉해 여부를 판단하는 띠 모양의 종이 시험지였습니다. 허나, 이 시험지는 식품에 접촉 시 오염돼 재사용이 불가능했는데요.
이에 개발진이 추가 연구 끝에 찾은 해답이 바로 뚜껑 형태의 디자인이었습니다. 나아가 더 순환적인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해조류 기반 필름을 사용했다고 개발진은 덧붙였습니다.
한편, 아미르-모아자미 디자이너는 식품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이미 갖고 있는 여러 감각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촉각, 시각, 후각, 미각을 통해 음식의 품질을 확인하는 능력을 타고 났다”고 말했는데요. 눈으로 바나나 껍질의 색깔 변화를 보고, 냄새로 상한 우유를 감별하는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어 폴코스터 프로젝트 또한 고위험 식품인 단백질 식품에 대해 일종의 ‘바나나 껍질‘을 설계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고위험 식품인 단백질 식품의 변질 정도를 시각적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는 뜻입니다.
개발진은 향후 2년 안에 폴코스터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필름의 색상이 더 짙게 변화할 수 있도록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데요.
식품에 사용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오인 여지가 없도록 신호등처럼 선명한 대비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