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최종합의문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로부터 전환’한다는 표현이 담겼습니다. 기후총회 역사상 ‘화석연료’란 단어가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은 폐막일을 하루 넘긴 13일(이하 현지시각) 마라톤협상 끝에 ‘탈화석연료 에너지 전환’ 문구를 담은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전 세계 198개 당사국을 포함해 국제기구·산업계·시민단체 등 9만여명이 참석한 이번 COP28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을 둘러싼 단어를 합의문에 명시할지 여부를 두고 산유국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며 진통을 겪었습니다.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 COP28 의장은 이번 합의를 ‘UAE 컨센선스(UAE Consensus)’라 선언했습니다. 알자베르 의장은 폐막식 연설에서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먼 길을 함께했다”며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성취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정작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COP28 개막식 첫날부터 ‘손실과 피해’ 기금이 출범했으나 이후 화석연료의 종식으로 모든 이목이 쏠리며 다른 논의가 잦아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요국은 이번 합의문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요?
[편집자주]
폐막일 하루 넘겨 합의된 COP28 최종합의문, 원인은 ‘화석연료 퇴출’ 🛢️
COP28이 폐막일을 넘기지 못하고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화석연료’ 때문이었습니다.
당초 COP28 합의문 초안과 1차 수정안에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이란 문구가 담겼습니다.
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의 거센 반발로 2차 수정안에서 해당 문구는 삭제됐습니다. 그 대신 수정안에서는 화석연료의 “감소(reducing)”란 문구가 등장하며 유럽연합(EU)과 태평양도서국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 COP28 의장단을 포함한 당사국 대표들이 긴급회담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3차 수정안에는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의 전환(transitioning away from fossil fuels in energy systems)”이란 문구가 담겼습니다. 또 10년 안에 화석연료부터 전환을 시작한단 문구도 포함됐습니다.
3차 수정안 공개 직후 모든 당사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하며 COP28은 폐막됐습니다.
“역사적 이정표”…COP28 최종합의문에 ‘환영’ 의사 밝힌 국가는? 🗺️
합의문에는 ▲2030년까지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 3배 증대 ▲연평균 에너지 효율 개선율 2배 증대 ▲원자력·CCUS(탄소포집·활용·저장)·저탄소 수소 등 탈탄소·저탄소 기술 가속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합의문을 둘러싼 각국 정부와 기관들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주요국 정부는 이번 합의문이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도 국제협력이 여전히 가능하단 것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합니다. 동시에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이 합의문에 들어가지 않았단 점을 아쉽게 평가하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 국제기구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폐막식 연설에서 “두바이에서 발표된 모든 계획에 분석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기후총회)는 결승선이 아니라 기후대응을 위한 생명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COP28 합의문 공개 직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본인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좋든 싫든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은 불가피하다”며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자”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도 “이번 합의가 완벽하지 않다”면서도 “세계가 더는 화석연료의 유해한 중독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유럽연합 및 유럽의회
같은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는 화석연료 이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며 “2050년까지 각국이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연료부터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유럽의회 측 대표단 위원장인 피터 리제 의원 또한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이란 문구가 언급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면서도 재생에너지·에너지 효율성·원자력 등이 언급된 것은 긍정적이라고 논평했습니다.
🇩🇪 독일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폐막일 당시 “이번 기후총회는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며 “여러 지정학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다자주의가 작동할 수 있단 희망의 신호”라고 평가했습니다.
🇫🇷 프랑스
프랑스 외교부 또한 성명을 통해 “화석연료의 전환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에 환영한다”며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 3배 확대, 원자력의 핵심 역할 인식 등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밝혔습니다.
🇬🇧🇦🇺🇳🇿🇳🇴🇮🇱🇯🇵🇺🇦 엄브렐러그룹
영국·호주·뉴질랜드·노르웨이·일본 등 10개국이 가입한 엄브렐러그룹은 “이번 합의의 메시지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인류의 미래는 청정에너지에 있으며 화석연료 시대가 끝날 것이란 점을 인정한 것”이란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 미국
같은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1.5℃ 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여전히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역사적인 이정표에 도달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COP28에 참석한 존 케리 미 기후특사는 기자회견에서 “전환을 향한 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정의롭고 질서있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케리 특사는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며 “(각국이) 다음 기후총회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이와 별개로 케리 특사는 미국과 중국 모두 장기기후전략을 업데이트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한국
한국 정부는 별도의 환영 성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김효은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폐막식 연설에서 “이제 중요한 것은 기후대응 이행 속도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라며 “새롭고 중요한 기술 혁신을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COP28 최종합의문, 개도국·산유국·기후취약국 속내는? 👀
합의문 속 핵심 쟁점별로 개발도상국과 기후취약국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이들 모두 기후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개도국을 돕는 ‘손실과 피해’ 기금의 출범을 환영했습니다. 다만, 화석연료의 전환에 대해선 국가별 경제 및 산업구조에 따라 제각기 다른 입장입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은 이번 합의문이 실제 화석연료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입장입니다.
🇨🇳 중국
중국 대표단은 폐막식 연설에서 “기후조치는 야망과 실용주의를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단 것이 중국의 견해”라며 “실용적인 조치와 약속 이행이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날 글로벌타임스(GT)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 3배 달성을 위해선 중국과의 협력이 필수란 점을 보도했습니다.
🇮🇳 인도
COP28에서 대표단을 이끈 브펜더 야다브 인도 환경부 장관은 이번 합의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특히, COP28 개막식 첫날 손실과 피해 기금이 합의된 점에 인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한편, COP28 합의문에서 석탄은 초안의 단계적 퇴출에서 “단계적 감축(Phase-down)”으로 문구가 변경됐습니다. 이에 대해 야다브 장관은 에너지안보 등 인도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표현됐다고 밝혔습니다.
🇷🇺 러시아
파벨 소로킨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은 COP28에서 저렴한 에너지원 상당수가 개도국에서 여전히 이용이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로킨 차관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막심 레셰트니코프 러시아 경제개발부장관은 “1.5℃ 목표 달성을 위해선 기술 혁신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일부 국가만이 이를 감당할 수 있지만 이조차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 사우디아라비아
압둘아지즈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현지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문이 유연한 접근방식을 취한 점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이번 합의문이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의 원유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우디가 리더를 맡고 있는 OPEC 또한 이번 합의문이 원유 판매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대표단은 개도국의 화석연료 전환에 선진국이 지원해야 한단 점을 피력했습니다. OPEC 회원국이자 전체 외환 수입의 95%를 석유에 의존하는 나이지리아는 화석연료 전환에 대해 “공정성, 정의, 형평성이 없는 것”이라고 피력했습니다. 개도국이 성장하기 위해선 화석연료가 필요하다고 나이지리아 대표단은 강조했습니다.
🇧🇷 브라질
브라질 정부는 성명을 통해 합의문이 통과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마리나 실바 브라질 환경부 장관은 폐막식 연설에서 “다음 과제는 정의로운 전환을 기본 전제로 보장하면서 필요한 이행 수단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선진국들이 화석연료의 전환을 주도하고 개도국의 완화 및 적응 조치 이행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 앤티가바부다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의 다이앤 블랙레인 대사는 합의문에 “과도기 연료(transitional fuels)”란 단어가 들어간 것을 지적했습니다. 과도기 연료는 일반적으로 천연가스를 일컫습니다. 블랙레인 대사는 COP28 폐막식 연설에서 “석탄·석유·천연가스 모두 화석연료”라며 “국제사회는 이 모든 화석연료로부터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
39개국으로 구성된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은 합의문에 대해 “혼란스러웠다”고 밝혔습니다. 사모아 출신 수석협상가이자 AOSIS 의장인 앤 라스무센은 “합의문 속 문구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회의장에 들어갔다”며 “(그러나) 이미 회의장에선 합의문이 채택돼 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합의문 속 문구를 놓고 긴 토론을 예상했으나 대표단이 빠진 상황에서 이미 합의가 통과됐단 것. 이에 대해 주최 측은 최종합의문 전달이 늦어져 상호조율이 늦어졌다고 해명했습니다.
AOSIS는 합의문 속 과도기 연료와 기후재원 조달 방식에 불만을 표했습니다.
라스무센 의장은 또 합의문에 “과학이 우리에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무시하는 합의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AOSIS는 COP28 합의문에 반대하거나 절차상 이의는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美·UAE, COP28 폐막 이틀뒤 화석연료 생산 확대·투자 방침 발표 📢
이번 합의문이 되려 화석연료 업계에 면죄부를 줬단 주장도 나옵니다.
당장 COP28 폐막 이틀 뒤인 지난 15일 미국 정부는 화석연료 생산 확대 방침을 분명히 했습니다. 알리 자이디 미 백악관 기후고문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앞으로도 화석연료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단기적으로 미국이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는 것이 COP28 합의문의 배신이 아니냔 질문에 자이디 기후고문은 “당장 우리 앞에 닥친 수요를 충당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단, 그는 미국 내 에너지 수요 상당수가 청정에너지로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같은날 UAE 또한 화석연료 생산에 강한 투자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UAE 국영석유기업 애드독(ADNOC) 최고경영자(CEO)이자 COP28 의장이었던 알자베르는 향후 7년간 1,500억 달러(약 196조원)를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석유·가스 생산량을 늘리기보단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알자베르 의장은 덧붙였습니다.
과학저널 네이처 COP28 합의문 “파리협정 역행”…“BNEF는 3.8점 부여” 🤔
이 때문에 주요 싱크탱크와 시민단체(NGO)에서는 최종안이 여전히 미흡하단 지적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화석연료 업계의 입김이 작용했단 주장도 내놓고 있습니다.
합의문 발표 전날인 12일 과학저널 네이처는 사설을 통해 이번 합의가 “파리협정 핵심 목표인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는 것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이 가능한 빨리 거의 모든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것 뿐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지구과학센터장 겸 대기과학과 교수인 마이클 만 박사 또한 “COP28에서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치명적”이라며 “당뇨병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의사에게 도넛을 먹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습니다.
국제환경법센터(EIB)는 “COP28이 의심할 여지 없이 화석연료 COP였다”고 논평했습니다. 단, 합의문에 “2030년까지 전 세계 삼림벌채 제로(0)를 달성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다들 환영한단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한편,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는 이번 합의문에 10점 만점에 3.8점이란 점수를 줬습니다. COP28 합의문이 기존 기후목표와 비교해 얼마만큼 개선이 이루어졌는지를 1점부터 10점까지 평가한 결과입니다.
이번 총회에서 나온 합의만으로는 1.5℃ 제한 목표 달성이 어렵단 것이 BNEF의 분석입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각국 지도자와 기후협상가들이 향후 수개월 내 이번 합의문 내용을 실제 정책으로 바꿔 29차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만나야 한다”며 “지금부터 더 어려운 부분이 온다”고 평가했습니다.
[COP28 최종합의문 모아보기]
① 역사적 합의 이룬 COP28 “화석연료 종식 시작 vs 빅오일 선방, 평가 엇갈려”
② COP28 합의문 진통 끝 극적 합의…선진국·개도국·산유국 등 주요 반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