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 자본의 지분율이 25%를 넘는 합작법인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 혜택, 즉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국내 배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나 지분율 조정에 따른 추가 부담 등 후폭풍이 불가피하단 전망이 나옵니다.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IRA에 따른 ‘친환경차 세액공제조항(30D)’ 요건 중 ‘해외우려기업(FEOC) 세부규정안(이하 FEOC 세부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미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자동차에 최대 7,500달러(약 974만원)의 보조금을 줍니다. 지난 3월 미 정부는 30D 가이던스를 발표하고, FEOC에서 배터리 부품(2024년)과 핵심광물(2025년)을 조달받은 전기차는 단계적으로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FEOC의 범위와 기준 등 세부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그간 여러 기업이 혼란을 겪어왔습니다.
특히, 국내 배터리·전기차 업계는 IRA FEOC 세부 규정을 앞두고 그 범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워 왔습니다.
미국 수출 우회로를 찾으려는 중국 기업과 안정적인 원료 공급처가 필요한 한국 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최근 한중 합작회사 설립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입니다.
美 정부, 中 겨냥한 ‘해외우려기업’ 세부규정안 발표 🤔
이번에 미 정부가 발표한 FEOC 세부규정안은 해외우려기업의 정의 및 이행방식 등을 상세히 규정했습니다.
미 정부가 정한 해외우려국, 즉 FEOC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 4개국입니다.
이번 FEOC 세부규정안이 중국을 겨냥했단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실제로 존 포데스타 백악관 국가기후보좌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자리와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는 수십년 간의 추세를 뒤집을 것을 결심하고 취임했다”며 “(FEOC 세부 규정안을 통해) 전기차 산업의 미래가 미국에서 만들어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 복잡합니다.
1️⃣ 해외우려국 정부, 광범위하게 정의해
미 정부가 정한 해외우려국은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를 비롯해 산하 기관·기구가 모두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정치적 지배·집권정당과 함께 전·현직 고위정치인과 직계가족도 포함됩니다.
해외우려국 정부를 광범위하게 정의해 견제 강도를 높였단 평가가 나옵니다.
2️⃣ 해외우려국 정부나 기업 지분 25% 이상 보유한 곳도 FEOC로 분류
미 정부가 정한 해외우려국가에 설립, 본사를 두거나 관련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도 FEOC로 분류됩니다. 또한 해당 FEOC 기업들이 기업 이사회 의석수, 의결권 그리고 지분의 25% 이상을 누적·보유한 기업들도 FEOC로 분류됩니다.
3️⃣ 기술제휴, 기타 합의 해놓고 실질적 통제 없으면 FEOC로 분류
기술제휴 또는 기타 합의로 배터리 핵심광물 및 배터리 부품 소재의 생산량·시기 결정이나 판매 자율권 확보 등에서 제약이 있다면 실질적 통제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FEOC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과 기술제휴를 체결해 배터리를 만들 경우 우리 기업이 생산량과 생산기간을 직접 결정하고, 생산에 필요한 지적재산권과 정보 등 생산 전반을 통제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4️⃣ 2026년까지 핵심광물 추적 시스템 구축
FEOC의 이행방식도 규정됐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배터리 여권 같은 핵심광물 추적을 위한 시스템을 2026년까지 구축해야 합니다.
해당 기간까지 조달선을 추적하기 어렵고 부가가치가 적은 미소광물*에 대한 추적 인증이 제외됩니다. 미소광물 목록은 추후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광물 가치 대비 최대 2% 미만
中 지분 25% 넘는 합작사,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못 받아 💰
이번에 발표된 FEOC 세부 규정안은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이번 세부 규정안은 초안으로 2024년 1월 18일까지 의견수렴을 할 예정입니다.
국내 배터리·전기차 업계의 초유의 관심사였던 FEOC 세부 규정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FEOC 정의와 이행방식 등이 나옴에 따라 업계 부담이 더 커졌단 평가와 함께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빠르게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단 주문도 나옵니다.
FEOC 세부 규정안에 의하면, 배터리 합작사의 중국계 지분 허용률은 25% 미만입니다.
예컨대 중국 정부가 A기업의 지분 절반을 가지고 있고, A기업이 B기업의 지분을 25% 가지고 있다면 두 기업 모두 FEOC에 해당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중국은 우리나라 등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에서 양극재·전구체 같은 핵심소재를 만들어 북미에 공급하면 IRA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때문에 합작법인·공동투자 등의 형태로 중국 기업과 추진한 배터리 분야 공동 프로젝트만 20개 이상이 넘고, 투자 금액만 수십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은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LG화학, SK온, 에코프로, 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등입니다. 이들 기업은 미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중국 합작법인에 대한 지분율 제한 범위를 맞추는 절차에 돌입해야 합니다.
LG엔솔+야화· 화유코발트|FEOC 확정 고려해 세부 규정 확정 📊
LG엔솔은 지난 4월 중국 리튬화합물 제조업체인 야화(Yahua)와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수산화리튬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또 올해 8월 화유코발트와 함께 폐배터리 재활용 합작법인을 설립했습니다.
화유코발트와의 합작법인에서 생산되는 물량은 중국 내에서 소화되나, 야화의 경우 MOU 단계로 이번 발표에 따라 세부 규정을 확정한단 것이 LG엔솔의 입장입니다.
LG화학+화유코발트|화유코발트 지분 전량 인수 방안 고려 💰
LG화학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 2,000억 원을 투자해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 5,000억 원을 투자해 경북 구미에 양극재 공장을 지을 예정입니다.
중국 우시와 취저우에도 각각 전구체·양극재 공장이 예정돼 있습니다. 또 모로코에 2026년을 목표로 양극재 합작공장을 설립한단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현재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새만금에 건설 중인 양극재 공장의 중국 지분율은 49%가 넘습니다.
이와 관련해 LG화학은 지난 4월 1분기(Q1) 실적 발표에서 “만약 중국회사 지분이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FEOC 규정이 확실해진다면 화유코발트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SK온·에코프로+GEM|합작법인 지분율 합계 75% 이상으로 조정 💸
SK온과 에코프로의 경우 중국 거린메이(GEM)와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생산을 위한 3자 합작법인을 설립할 계획입니다. 3사는 협약에 따라 최대 1조 2,100억 원을 투자한단 내용을 지난 3월 발표했습니다.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 합작법인 역시 SK온과 에코프로의 지분율 합계가 75%이상 되도록 조정해야 합니다.
포스코홀딩스·포스코퓨처엠+CNGR|유럽 시장 공략 방침 🚘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 또한 지난 6월 중국 중위그룹(CNGR)과 경북 포항에 니켈과 전구체 생산공장을 짓기로 하고 합작투자계약(JVA)을 체결했습니다.
CNGR의 니켈 법인 지분율은 40%, 전구체 생산 법인 지분율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양사는 미국이 아닌 유럽에 물량을 공급하는 방침을 세웠으나, 필요할 경우 협의를 통해 지분 조정 등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韓·中 합작법인 지분율 조정 불가피…공급망 다각화 필수 🗺️
중국 측 지분율을 25%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선 국내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단 우려가 나옵니다. FEOC 규정 중 배터리 부품은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핵심광물은 2025년 1월 1일부터 적용됩니다.
여기에 흑연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핵심광물 요건 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단 분위기도 만연합니다. 중국 정부는 이달 1일부터 흑연 수출통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FEOC 관련 민관 합동 대응 회의를 열었습니다. 국내 배터리 업계 의견을 수렴해 의견서를 제출하고 미국 측과 협의한단 것이 산자부의 설명입니다.
우리 정부는 일단 ‘해외우려국 지분 25%’ 규정에 대해 해외우려국 정부와 무관한 민간 기업과 국내 기업이 합작할 경우 지분율 25%를 넘어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를 미국에 묻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의견수렴 기간 중 대중 강경파 정치권 및 미국 이해관계자 입장이 반영될 가능성에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조 실장은 “배터리 공급망의 현실적인 한계가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도 의견을 전달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별개로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美 완성차 업체 FEOC 세부 규정안 검토 나서 🚗
주미중국대사관은 이번 FEOC 세부 규정안에 대해 “미국의 일방주의와 경제적 위협의 또 다른 예”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번 규제가 중국을 견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연일 나옵니다.
한편,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이번 FEOC 세부 규정안을 검토 중입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성명을 통해 “세부 규정안을 검토 중”이라며 “2024년 이후에도 보조금을 받을 좋은 위치에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포드(Ford)는 상황이 다릅니다. 포드는 중국 배터리 기업 닝더스다이(CATL)와 파트너십을 맺고 미 미시간주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었으나, 지난 9월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각) 공장 건설이 재개됐으나 그 규모는 3분의 1로 축소됐습니다.
해당 공장 지분은 100% 포드가 소유했고, CATL로부터 기술제휴를 받는 구조입니다. 양사는 문제가 없단 입장이나 미 의회에서는 IRA 보조금을 우회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미 정부 관계자들은 포드와 CATL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자동차, 토요타자동차 등 미국에 진출한 해외자동차 제조업체를 대변하는 ‘오토스드라이브아메리카(ADA)’는 FEOC 세부규정안에 대해 IRA 정책의 명확성이 드러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어 ADA는 미국 정부가 더 많은 나라와 FTA를 통해 핵심광물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미 완성차업계도 흑연 같이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핵심광물 공급망 다각화를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