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우유에 대해 고민한 적 있으신가요? 낙농업계에선 매년 수백만 톤의 우유가 폐기됩니다.
원인은 다양합니다. 우유 자체의 신선도가 떨어져 폐기되는 일도 있으나, 유제품 가격이 폭락해 낙농업계가 갓 짜낸 신선한 우유를 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일례로 올해 6월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는 농가가 남은 우유를 밭에 버리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와 논란이 됐습니다. 논란 직후 해당 영상 원본은 삭제됐습니다.
위스콘신주 등 미 중서부를 중심으로 낙농업계가 우유를 버리는 실정에 처했다고 당시 블룸버그통신은 전했습니다. 우유 소비량에 비해 공급량이 많아서 발생한 일입니다.
이는 영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이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젖소는 매일 일정량의 젖을 짜주어야 건강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즉, 수요에 상관없이 매일 우유를 생산해야 한단 것.
버려지는 우유가 많을 수록 그만큼 하수 처리에 더 많은 물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우유 150㎖(미리리터)를 정화하기 위해선 3,000리터의 깨끗한 물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간 1억 2800만 톤 우유 그대로 폐기”…우유 섬유로 해결할 수 없나? 🤔
영국 에든버러대학교가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2018년 기준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우유의 양은 약 1억 2,800만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인도에서 연간 생산되는 우유와 맞먹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생산된 우유가 그대로 폐기되지 않도록 막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과잉생산이나 안전성을 이유로 폐기될 위기에 처한 우유를 활용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우유 섬유(Milk fiber)’ 개발에 나선 기업들이 있습니다.
2018년 설립된 미테로(Mi Terro)란 미국 스타트업은 버려질 위기에 처한 우유를 옷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명 ‘밀크 셔츠’는 회사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로버트 루오가 내놓은 해결책입니다.
루오 CEO는 “중국에서 친척이 경영하는 목장에서 출하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대량의 우유를 보고 충격 받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이에 ‘친환경 패션을 통해 세계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미테로를 설립하게 된 것. 미테로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나의 지구’를 뜻합니다.
“美 스타트업 미테로가 우유를 실로 만든 방법은?” 🥛
그렇다면 미테로는 우유를 어떻게 옷으로 만들까요?
먼저 사측은 제휴를 맺은 여러 목장으로부터 남아도는 우유를 조달합니다. 이후 우유를 발효시켜 지방을 제거합니다. 이때 우유는 단백질의 일종인 ‘카제인’만 남아 분말 형태가 됩니다.
그다음 이 분말을 다시 물에 녹여 남아 있는 불필요한 단백질 등을 추가로 제거합니다. 그리고 용액을 실이 나오는 노즐에 통과시켜 섬유질로 만든 후 이를 꼬아 실로 만드는 것. 여기에 필요한 기술들은 모두 특허 출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유 1잔으로 셔츠 5벌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사측은 밝혔습니다.
다만, 셔츠를 오로지 우유로만 만들면 생산원가가 너무 높아져 밤나무에서 추출한 식물성 섬유를 결합한다고 미테로는 덧붙였습니다.
과정이 복잡해 보이나 이 방식은 1930년대에도 있었다고 미테로는 설명합니다. 과거 선조들이 해오던 방식에 현대 기술을 적용한 것이라고 루오 CEO는 밝혔습니다.
우유 섬유 제품 개발 포기…“합성섬유 대비 생산·가격 측면서 경제성 ↓” 💰
미테로는 우유 섬유가 기존 유기농 면보다 물소비량이 60% 적을뿐더러, 100% 생분해될 수 있단 점을 강조합니다. 현재도 우유 섬유로 만든 옷을 판매 중입니다.
미테로가 2022년까지 판매한 우유 섬유만 약 10만 달러(약 1억 2,990만원) 상당에 이릅니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미테로는 우유 섬유보다는 생분해성 포장재 필름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맥주 양조장에서 버려진 맥주박(맥주찌꺼기) 같은 농업폐기물로 플라스틱 포장재를 대체하는 것이 미테로의 다음 목표입니다. 기술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유에서 단백질을 추출한 것처럼 버려진 곡물이나 농업폐기물에서 단백질과 섬유질을 추출하는 것.
이를 위해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기후변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현재는 유니레버 등 여러 기업과 협업해 세탁세제에 사용할 수 있는 수용성 필름을 개발 중입니다.
우유 섬유가 아닌 생분해성 포장재 필름 개발에 주력하게 된 배경에 대해 루오 CEO는 경제성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루오 CEO는 “합성섬유를 우유 섬유로 대체하는 개념은 혁신적이었다”면서도 “생산 과정과 가격 경쟁 면에서 합당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설립 초기 공개된 우유 섬유의 생산 단가는 ㎏당 최대 45달러(약 5만 8,000원)로 비싼 축에 속했습니다. 반면, 대표적인 합성섬유인 나일론의 생산단가는 ㎏당 3달러(약 3,800원) 미만입니다.
그는 “우유 섬유를 찾는 일부 소비자들이 여전히 있다”면서도 “(우유 섬유로 만든 제품이) B2C 모델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루오 CEO는 그러면서 “감자껍질에서 나온 다당류와 종이 부산물에서 나온 셀룰로오스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더 저렴한 접근 방식인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獨 스타트업 큐밀크, 경제성 문제로 우유 섬유 → 우유 화장품 💄
미테로보다 일찍이 우유 섬유를 개발한 기업도 경제성을 문제로 사업 방향을 전환한 상태입니다.
2011년 독일 기업가이자 화학자인 안케 도마스케가 우유 섬유를 개발한 바 있습니다.
도마스케가 개발한 우유 섬유는 여러 패션쇼에서 사용됐고, 같은해 그는 큐밀크(QMilk)란 기업을 설립합니다.
큐밀크 CEO인 도마스케는 자사의 우유 섬유가 “㎏당 2ℓ의 물만 필요하다”며 “자원과 에너지가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도마스케가 개발한 우유 섬유는 독일 직물연구협회로부터 혁신상도 수여 받았으나, 경제성을 문제로 이후에는 별도의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우유로 화장품이나 향수 등을 개발하는 사업에 주력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우유 섬유, 버섯가죽 등 대체소재 경제성 향상 위해선 지원 필수 💸
이같은 경제성 문제는 비단 미테로와 큐밀크만 겪은 것은 아닙니다. 대체소재나 제품 개발을 주력 중인 기업 상당수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예컨대 버섯가죽 사용화에 앞장서 온 볼트스레드(Bolt Threads)는 지난 7월 시간과 투자 자본 부족 등을 이유로 사업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볼트스레드는 기존에 진행하던 실크 대체품 개발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파인애플이나 해조류 등 식물성 기반 대체소재를 개발 중인 기업들 또한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소재라 해도 비용경쟁력 측면에서 기존 소재와 경쟁할 수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단 뜻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나 기업들의 연구개발(R&D)나 사업화 지원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옵니다.
일례로 해조류로 포장재를 개발한 낫플라(Notpla)의 경우 영국 정부로부터 1년간 R&D 지원을 받았습니다.
해조류 포장재를 개발 중인 스웨이(Sway)는 지난 10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으로부터 중소기업혁신연구(SBIR)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약 27만 달러(약 3억원) 규모의 보조금은 차세대 생분해성 포장재 개발 및 상업화에 투입될 계획이라고 스웨이는 밝혔습니다.
에르윈 지안찬다니 NSF 기술혁신협력 담당 부국장은 신흥 소재나 혁신 기술이 상업화되기 위해선 딥테크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더 많은 자금이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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