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줄줄이 전기자동차 생산·투자 계획을 취소한 가운데 전기차 전환 후발주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세계 3대 완성차업체로 꼽히는 토요타자동차(이하 토요타)와 스텔란티스가 최근 전기차 관련 투자 계획을 밝히고 나선 것.
이들 기업이 그간 순전기차(BEV) 전환에 소극적 행보를 보여왔단 점에서 더욱 주목됩니다.
그간 전기차 전환 선도기업들이 주춤한 상황 속에서 후발주자들이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키플레이어(핵심주자)로 변모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토요타, 북미 배터리 공장 80억 추가 투자 발표 배경은? 💰
토요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에 80억 달러(약 10조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밝혔습니다.
토요타는 2021년 당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12억 9,000만 달러(약 1조 5,00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번 추가 투자는 초기 투자액의 6배가 넘는 규모로, 토요타가 전기차 전환 가속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무엇보다 해당 공장은 토요타의 세계 최초 배터리 공장이란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토요타는 2025년 공장이 완공될 경우 10개 라인을 갖출 것이며, 2030년까지 연간 총 생산능력은 30GWh(기가와트시)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생산 라인은 배터리 생산 라인 6개와 하이브리드차 생산 라인 4개, 순전기차 생산 라인 2개로 구성됩니다.
테슬라의 네바다주 기가팩토리 생산능력이 35GWh인 것과 비교할 때, 토요타로서는 충분한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이란 평이 나옵니다.
한편, 이번 투자는 2025년까지 모든 차종에 전기차 모델을 추가하기 위해 139억 달러(약 18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의 일환입니다.
+ 토요타, 전기차 전환 위해 韓 기업과도 손잡아 🤝
토요타는 배터리 확보를 위한 기업 간 협력도 모색 중입니다. 지난달 5일 토요타는 전기차 생산 역량을 갖추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과 대규모 전기차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핵심부품의 공급망은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구축하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입니다.
이에 따르면 토요타는 LG엔솔로부터 2025년부터 연간 20GWh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받습니다. 배터리 공급을 위해 LG엔솔은 2025년까지 미국 미시간주 공장에 4조 원을 투자해 토요타 전용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데츠오 오가와 토요타 북미법인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토요타는 최대한 빨리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기 위해 북미 전기차 판매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스텔란티스, 중국 전기차 2조 투자…“작년 손실만 0.9조 달해” 🤔
한편, 북미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의 선택은 조금 달랐습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스텔란티스는 15억 유로(약 2조원)를 투자해 중국 전기차 제조기업 립모터(Leapmotor)의 지분 약 20% 인수했습니다.
2015년 설립된 립모터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전기차 스타트업 중 한 곳입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가 전기차 기업 지원을 축소하면서 생존 경쟁이 격화되며 타격을 입었습니다.
립모터의 2022년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150% 증가했으나, 당기순이익 적자는 51억 위안(약 9,200억원)에 달합니다. 2023년 예상 연간 적자도 45억 위안(8,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스텔란티스가 립모터를 인수한 목적은 분명합니다. 중국 전기차 기업이 내수 경쟁에서 쌓아온 저가형 전기차 생산기술을 가져오겠다는 것입니다.
스텔란티스는 투자와 함께 립모터와의 합작투자사인 ‘립모터 인터내셔널’ 설립을 발표했습니다. 립모터 인터내셔널을 통해 립모터 전기차를 2년 이내 유럽 등 다른 시장에 출시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사측은 밝혔습니다.
또 대중국 무역규제를 피해야 할 경우, 스텔란티스의 유럽 공장에서 립모터와 공동 제조를 추구할 계획이 있다고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CEO는 밝혔습니다.
타바레스 CEO는 이어 “우리는 세계 시장에 대한 중국의 공격에서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시장을) 주도하고 통제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 북미 시장 진출 가속화 위해, 삼성SDI와의 추가 공장 건설도 추진 중
글로벌 완성차 양대 기업, 전기차 ‘후발주자’ 꼬리붙은 까닭 🏷️
앞서 언급했듯 토요타와 스텔란티스는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 중에서 전기차 전환에 뒤늦게 나선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간 토요타는 “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지 않는다”는 속담을 강조해왔습니다. 순전기차가 탈탄소화의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란 기조 아래 하이브리드 및 수소연료전지차 투자에 더 집중한 것.
전기차의 높은 비용과 핵심광물의 탄소배출 문제, 충전소 부족 등도 토요타가 순전기차 전환을 늦춰온 이유로 꼽힙니다.
그 결과, 토요타가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한 자동차 1,048만 대 중 전기차는 2만 4,000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등에서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들 시장을 선점해 온 토요타 또한 전기차 전환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지난 4월 사토 고지 CEO가 사장 겸 CEO로 취임하면서 ‘BEV퍼스트(순전기차 우선)’ 전략을 선언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시 사토 CEO는 2026년까지 전기차 10종을 신규 출시해 연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50만 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스텔란티스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스텔란티스는 2021년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푸조시트로엥(PSA)가 합병해 탄생한 기업입니다. 현재 크라이슬러·지프·피아트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텔란티스는 여타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전환에 가속화를 붙이던 시기에 기업 합병이 진행됐습니다. 이에 다른 경쟁사에 비해 전기화 전략 수립이 다소 늦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2021년 스텔란티스는 2025년 신차의 100% 전기차 출시를 목표로 선언하는 등 공격적인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해왔습니다. 또 전동화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300억 유로(약 42조원) 이상을 투자한단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이번 립모터 투자 또한 스텔란티스에 부족한 기술과 사업 모델의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기차 후발주자, 오히려 좋다? “패스트팔로워 전략 먹힐까” 💨
일각에서는 현재 상황이 오히려 전기차 후발기업들에게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미국의 정부 보조금에 더불어 선발주자들이 전기차 전환을 밀어부치면서 전기차 기반시설(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됐기 때문입니다. 배터리 생산설비, 배터리 재활용 시스템, 충전소 등이 이에 속합니다.
순전기차 전환의 불합리함을 외쳤던 토요타는 전기차 기업들이 주춤한 상황을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입니다.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나 여전히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기차 전환 선두기업의 실패를 영감으로 삼아 새로운 틈새를 공략한다는 것.
이는 스텔란티스가 최근에 내놓은 신개념 전기트럭에서도 드러납니다. 지난 7일(현지시각) 스텔란티스는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적재한 ‘RAM(램) 1500 램차저’를 공개했습니다
스텔란티스는 가솔린 엔진을 달고 있지만 플러그인하이브리드(PEV)가 아닌 전기트럭이라고 강조합니다. 가솔린 엔진으로 차를 구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발전해 배터리 충전에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측은 가솔린 엔진이 자동차 바퀴와 아예 연결되지 않았단 점을 피력했습니다.
스텔란티스는 신개념 전기트럭이 배터리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주행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