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환경위서 자연복원법 부결…“재생에너지 축소 우려 등으로 법안 폐기되나”

좌초 위기에 놓였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자연복원법(Nature restoration law)’이 결국 입법 과정에서 폐기될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유럽의회 산하 환경위원회(ENVI) 홈페이지를 통해 “투표 결과, 찬성 44대 반대 44표로 자연복원법안은 찬성표가 과반을 넘지 못해 법안이 부결됐다”고 밝혔습니다.

찬성이 과반에 이르지 못함에 따라 환경위는 자연복원법안 반대 안건을 오는 7월 11일(현지시각) 유럽의회 본회의에 상정됩니다.

유럽의회가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기존 자연복원법과 다른 새 법안을 마련을 위한 논의에 들어갈 전망입니다.

EU 규정에 따르면,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가 발의한 법안 초안이 제정되려면 유럽의회와 27개국 회원국을 대표하는 EU이사회가 각각 입장을 채택해야 합니다. 이후 각자 채택한 입장을 바탕으로 3자 협상을 거쳐 최종 법안 내용이 확정됩니다.

 

EU 자연복원법 초안 핵심 “2030년까지 역내 육지·바다 20% 복원” 🌲

지난해 6월 EU 집행위가 공개한 자연복원법은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회복을 목표로 2030년까지 육지 및 바다의 최소 20%를 복원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또 2030년까지 EU 내 농지의 10%를 초지 등으로 전환한다는 법적 구속력 있는 조치도 초안에 담겼습니다.

이밖에도 법안 초안에는 2030년까지 ▲꽃가루 매개체 개체수 회복 ▲살충제 사용 절반 감소 등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는 세부목표가 포함됐습니다.

자연복원법은 신성장 동력인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 일환으로, 지난해 6월 채택된 ‘2030 EU 생물다양성 전략(EU Biodiversity Strategy for 2030)’의 핵심요소입니다.

특히, 법안은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EU가 발표한 정책 실현의 일환으로 발의됐습니다. 당시 총회에서 국제사회는 2030년까지 지구의 30%를 자연 상태로 보호하자는 것에 합의했습니다.

EU 집행위는 법안 추진 배경에 대해 유럽환경청(EEA) 자료를 인용해 설명했습니다. EEA에 따르면, EU 역내 생태계의 81%가 복원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 덴마크에 본사를 둔 오스테드가 북해 일대에 해상풍력단지를 건설 중인 모습. ©Ørsted

EU 회원국·산업체·EPP “자연복원법, 재생에너지 투자 축소할 것” 📉

한편, EU는 해당 법안이 발효되면 생태계 복원에 약 1,000억 유로(약 141조 원)를 투입할 예정입니다. EU 집행위는 자연복원을 위해 1유로(약 1,400원)를 투자하면 최대 38유로(약 5만 원)의 이익을 얻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초안 공개 직후 유럽의회 의원 및 산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일부 EU 회원국은 자연복원법이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고 반발합니다.

특히, 북해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조성 중인 영국과 덴마크가 자연복원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탈원전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는 독일도 마찬가지로 반대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풍력 발전망 사업 지역과 자연복원에 해당하는 지역이 충돌하는 사태는 피할 것을 꼬집었습니다.

유럽 내 풍력발전 산업체들도 반발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EU 풍력발전협회인 ‘윈드유럽(WindEurope)’은 성명을 통해 “자원을 복원하려는 EU 집행위의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자연복원과 풍력에너지 확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줄곧 자연복원법을 비판해온 크리스틴 슈나이더 유럽인민당그룹 의원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유럽의회 환경위원회에서 자연복원법 추진에 반대표를 던졌다. ©유럽의

유럽의회 다수당인 유럽인민당그룹(EPP)과 농어업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가장 거셉니다. 지난 5월 법안 협상을 담당한 크리스틴 슈나이더 EPP 의원은 “(자연복원법은) 처음부터 부실하게 작성됐고 유럽 내 농어업을 공격할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에스터르 더랑어 EPP 환경정책조정관도 “자연복원법이 관철되면 재생에너지 사업과 관련 기반 시설이 극도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그는 “기후와 산업정책은 함께 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역내 노동력이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비판에 합세했습니다.

반면, 비리기니우스 신케비시우스 EU 집행위 환경해양수산위원은 “현재 EU는 생물다양성 붕괴에 있어 벼랑 끝에 놓여있다”며 “자연복원법 거부는 EU와 그 회원국이 환경복원이란 전 세계에 대한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 반박했습니다.

 

“재생에너지 우선 추진 수정안에도 반발 지속돼” 🗑️

법안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자, 지난달 7일(현지시각) 유럽의회 사회당·민주당·녹색당그룹은 초안 수정에 나섰습니다.

수정안은 EU 회원국이 재생에너지 시설 구축 시 자연복원법보다 사업을 먼저 추진하도록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덕분에 해상풍력발전을 조성하는 덴마크, 네덜란드 등 국가는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

또, 당초 초안에 포함된 EU 농지 면적의 10% 초지 전환 등의 목표도 삭제됐습니다. 그간 EPP는 농지의 10%를 생물다양성 복원을 위한 시설에 할애하면 경작 면적이 줄어 농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EPP는 위 내용이 담긴 수정안으론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국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복원법은 유럽의회 환경위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오는 11일(현지시각) 예정된 유럽의회 본회의 표결에서 환경위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으나 그런 전례는 드물어, 현재로선 법안이 폐기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지난 12일 자연복원법 통과를 위해 ‘우리의 사업, 우리의 미래(Our business, Our future)’ 공동성명을 낸 유럽 기업의 일부 로고. ©our nature our business

자연복원법 의회 제동 걸리자 유럽 63개 기업, 법안 통과 촉구 🙆

한편, 자연복원법 제정을 두고 유럽의회에서 속도가 나지 않자 유럽 내 63개 기업들은 법안 통과를 촉구했습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원자재 수급에 막대한 타격이 생겨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12일(현지시각) 코카콜라유럽(Coca Cola Europe), 이케아(IKEA), H&M 그룹 등은 ‘우리의 사업, 우리의 미래(Our business, Our future)’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기업들은 성명에서 “자연복원법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처하고자 우리 세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라며 “유럽 경제와 사회에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도구가 될 것”이라고 지지했습니다.

자연복원법과 같은 자연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식량시스템과 경제안보 보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단 것이 이들 기업의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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