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제로(0)를 목표로 하는 기후법이 스위스에서 통과됐습니다. 우리나라·캐나다·프랑스·독일 등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국민투표를 통해 탄소중립이 법제화가 된 국가는 스위스가 처음입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의하면, 스위스 정부의 ‘기후보호, 혁신 및 에너지보안에 관한 연방법(이하 기후법)’이 이날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59.1% 지지를 얻어 통과됐습니다.
스위스는 1년에 평균 4차례 국민직접투표를 통해 정책 법안을 제정합니다. 투표율은 대개 50%를 넘지 않습니다. 이번 기후법 전체 투표율은 약 42%였습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단계별 이정표가 될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세우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더욱 끌어올려 화석연료 사용 비중으로 혁신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입니다.
2050 탄소중립 선언한 스위스 정부…“2021년 탄소세 법안은 부결” ⚖️
앞서 2019년 8월, 스위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후 스위스 정부는 구체적인 탄소중립 실행 정책이 담긴 ‘이산화탄소 법안(CO2 Law)’을 추진합니다. 이 법안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분야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주체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쉽게 말해 ‘탄소세’를 추진하려던 것. 그러나 2021년 4월 해당 법안은 전체 유권자의 51.6%가 반대해 부결됩니다. 탄소세로 인해 기업과 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진단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스위스인포(Swissinfo) 등 현지매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침체된 경기를 회복해야 할 때 법안이 되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국민들이 우려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2년만에 반전된 여론…알프스 빙하 보호 위한 국민적 열망 반영돼 🗻
이산화탄소 법안이 부결된 이후 기후목표 추진을 위한 스위스 정부의 정책 동력이 약화됐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기후행동추적(CAT)은 스위스 기후정책이 ‘부족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스위스 정부는 법안 재추진 의사를 밝힙니다.
2년 뒤인, 현재 스위스 정부가 부결된 이산화탄소 법안을 일부 수정한 기후법안의 국민투표를 추진한 것. 앞서 언급한대로 기후법 59.1%의 지지를 얻어 가결됐습니다.
우익정당인 스위스 인민당(SVP)은 이번 투표에서 기후법 도입이 전기 요금 폭등을 야기하고 에너지안보를 위협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SVP를 제외한 스위스 거의 모든 주요 정당이 이 법안을 지지했습니다.
여론 또한 기후법을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주요 외신은 해가 다르게 줄고 있는 알프스 산맥 내 빙하를 지키자는 국민적 열망이 법안 통과를 낳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급격한 기후변화와 기온상승으로 인해 지난 22년간(2001~2022년) 알프스 내 빙하 면적의 3분의 1이 소실됐습니다.
CDR 등 혁신 기후테크에 2.8조 투자·히트펌프 보조금 4.5조 지원 💰
이번에 통과된 기후법은 탄소제거(CDR) 등 혁신 기후테크 투자에 약 20억 스위스프랑(약 2조 8,200억원)을 투입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DAC 대표 스타트업인 클라임웍스(Climeworks)도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도 기후법에 담겼습니다. 2022년 스위스 연방에너지청(SFOE)에 의하면, 스위스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전체 전력 생산의 80%에 달합니다.
이중 수력(68%)과 태양광(11%) 발전이 재생에너지 발전의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원자력발전(18.5%) 비율까지 고려하면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비율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다만, 난방의 경우 여전히 화석연료에 많이 의존하는 편입니다. 2021년 기준, 주택·상업용 건물 등 스위스 전체 건물 가운데 화석연료로 난방하는 비율은 59%에 이릅니다.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방안에 의견 엇갈려…“건설 허가 느리단 지적” ⛅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정부는 태양광 패널을 알프스 산지 곳곳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이 사업이 알프스 환경을 훼손할뿐더러 경제성도 기대에 못 미친단 반발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스위스 남부 발레주에서 산지에 대규모 태양광 시설을 세우는 사업을 추진하던 중 반대 여론으로 인해 사업 규모를 5분의 1 이하로 축소한 상황입니다.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스위스 미디어그룹인 타메디아(Tamedia)가 유권자 1만 3,66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알프스 산지 내 태양광 시설 확대 방안에 찬성한 응답자는 전체에 38%에 그쳤습니다.
스위스 국영 에너지 기업 악스포(AXPO)의 최고경영자(CEO)인 크리스토프 브랜드는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스위스 내에 추가 수력발전소가 세워질 가능성은 제로(0)”라며 “역내 태양광과 풍력 발전 용량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낮다”고 꼬집었습니다.
브랜드 CEO는 스위스 내 에너지 설비 설치가 느린 점도 지적했습니다. FT는 사람이 살지 않는 스위스 고트하르트(Gotthard) 일대에 육상 풍력터빈 5개 건설 허가만 8년이 걸렸다고 전했습니다.
스위스 법인세율 11% → 15% 인상 💸
한편, 같은날 국민투표에서 스위스는 법인세율을 현행 11%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기준인 15%로 인상했습니다. 해당 세법은 국민투표에서 78.5%의 찬성률로 통과됐습니다.
OECD는 지난 2021년 130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지구촌 최저 법인세율을 15% 설정에 합의했습니다. 스위스도 해당 합의에 동참해 세법을 개정한 것입니다.
로이터통신은 그럼에도 스위스의 법인세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향후 매년 25억 스위스프랑(약 3조 5,000억원)의 추가 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현재 스위스에는 2,000여개 외국 기업과 200여개 스위스 기반 다국적기업이 활동 중입니다. 이들 역시 세율이 인상되더라도 법적 확실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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