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의 ‘국토교통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건물 난방 등 건물 부문의 직간접 탄소배출량은 총 1억 8,000만 톤입니다. 이는 국내 총 탄소배출량의 24.7%가량을 차지합니다.

이에 국토부에서는 신축 건물의 제로에너지건축물화(ZEB)와 함께, 노후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탈탄소화를 촉진하는 ‘그린리모델링’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린리모델링은 노후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과 주거환경을 모두 개선하며, 동시에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사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단열보강공사, 고성능 창호교체, 고효율 보일러 교체 등이 주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그린리모델링 사업에서는 건물부문 탄소중립의 핵심이 ‘이것’이 빠져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건물 부문의 탈탄소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양이원영 민주당 국회의원, 페이스북

히트펌프 홀대받는 한국! “공공건물·이자 지원 중심의 그린리모델링 때문” 🏗️

전문가들은 국내 그린리모델링 사업에 히트펌프(Heat Pump)가 빠져 있단 점을 지적합니다.

히트펌프란 특정 장소의 열에너지(Heat)를 흡수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Pump)시키는 장치를 말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지난해 11월, 지속가능한 난방으로의 전환에 있어 히트펌프가 주요 축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에서는 이미 히트펌프가 확산 중인데요.

전문가들은 국내 그린리모델링 사업에서 히트펌프 확산이 필요하나 복합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중이라고 한목소리로 꼬집었습니다.

먼저, 정부 지원 상당수가 공공건축물에 편중돼 있고 난방부문의 탈탄소 정책이 부재하단 점이 주요 문제로 꼽혔습니다.

최준영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수석연구원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그린히트펌프가 활발히 보급돼 에너지 절감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열과 수열뿐만 아니라 공기열과 폐열 등 다양한 열원을 사용해 히트펌프 기반을 확대하고 있는데요.

반면, 우리나라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하 신재생에너지법)’에서 지열·해수열·하천수열만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합니다. 이에 최 수석연구원은 “이외의 열원을 사용한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미국 탈탄소화 솔루션 스타트업인 블록파워(BlocPower)에서 히트펌프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 블록파워는 저소득 지역의 탈탄소화를 돕기 위해 히트펌프와 태양광 패널 등 고비용의 장비들을 장기간 저렴하게 임대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BlocPower

임현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그린리모델링 예산이 이자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단 점을 지적합니다. 히트펌프는 고가의 장비인 만큼 민간참여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전적인 유인책, 즉 인센티브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임대주택 비중이 높기 때문에 건축물 사용자와 의사결정자(건물주)가 분리돼 있고, 건물에너지성능에 대한 시장 가치평가 또한 부재한 상황인데요. 때문에 대부분의 그린리모델링 사업이 고효율 보일러 교체, 고성능 조명 교체, 기밀(단열)창호 교체, 옥외 태양광 설치 정도에 그칩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민간건물로의 지원 확대와 히트펌프 보조금 예산 편성 등이 필요하다고 임 위원은 제언했습니다.

 

▲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5월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상향한 내용을 담은 정책패키지, 리파워EU(REPowerEU)를 발표했다. ©EU Commissions, Facebook

유럽·미국 “REPowerEU·IRA로 히트펌프 전환 가속화” ⚡

이와 반대로 유럽과 미국은 지난해에 이미 히트펌프 확산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EU가 좀 더 빨랐는데요.

EU는 지난해 5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40%에서 45%로 높이는 리파워EU(REPowerEU)를 발표했습니다. 이를 위한 이행 계획 중 하나로 히트펌프 설치가 언급됐습니다.

EU 집행위원회는 히트펌프 보급속도를 2배까지 높이려 합니다. 이를 통해 현재 1,700만 대인 히트펌프 수를 오는 2030년까지 5,000만 대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같은해 11월, EU 27개 회원국의 에너지 장관들은 한데 모여 히트펌프를 비롯한 재생에너지 설비 허가절차 기간을 줄이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통해 EU 내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요.

2년 사이(2021~2022년) EU 내 히트펌프 판매량이 독일에서는 25%, 핀란드에서는 80% 급증했다고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습니다.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 소비자들은 최대 8,000달러의 리베이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HVAC

미국에서도 히트펌프가 빠르게 설치 중입니다. 미 에너지·환경 싱크탱크 록키마운틴연구소(RMI)는 2020년 기준 약 1,800만 가구가 히트펌프를 사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15년에 비해 50% 증가한 수치라고 RMI는 설명했습니다.

미 정부도 히트펌프 확대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8월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미국 소비자는 주택을 고효율·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할 경우 세액공제와 리베이트(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태양광 패널, 전기온수기를 비롯해 히트펌프 설치도 포함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는 기존의 천연가스 난방을 히트펌프로 전환할 경우 최대 8,000달러(한화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득분위에 따라 금액은 차등 적용됩니다. 구입가격에서 자동 차감됨으로 히트펌프 설치 비용이 직접적으로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보조금 제공 시점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미 에너지부(DOE)는 IRA 법안에 책정된 투자 금액 중 2억 5,000만 달러(약 3,173억원)를 히트펌프 생산량 증대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히트펌프 전환으로 미국 소비자들은 연간 약 500~1,000 달러(약 60~120만원)의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DOE는 추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