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해 세계 최초로 ‘탄소포집 비누(carbon capture soap)’를 만든 기업이 있습니다.
2013년 캐나다에 설립된 기후테크 스타트업 클린오투(Clean O2)입니다.
클린오투가 개발한 탄소포집 비누는 작년 3월 독일에서 열린 CCU(탄소포집·활용) 관련 콘퍼런스에서 ‘최고의 CO2 활용 혁신상(Best CO2 Utilisation 2022 Innovation Award)’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같은해 9월에는 캐나다 현지매체가 주관하는 ‘메이드 인 앨버타 어워드(Made In Alberta Awards)’에서 최고 신제품 뷰티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기업이 만든 탄소포집 비누는 북미 지역에서 지난해까지 매달 약 10만 개씩 판매됐습니다.
클린오투 “탄소포집 후 나온 탄산칼륨으로 ‘비누’ 만들어” 🧼
클린오투는 대기 중에서 포집한 CO2를 탄산칼륨(K2CO3)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클린오투는 이 탄산칼륨을 ‘비누’로 만듭니다. 탄산칼륨은 비누·세제 등의 주요 성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클린오투는 비누의 주요 재료인 탄산칼륨·수산화나트륨 용액, 물, 오일 등을 가열하지 않고 비누를 만듭니다. 이른바 ‘저온 가공(cold processing)’으로 재료를 혼합합니다. 별도의 가열 과정이 포함되지 않아 ‘저온’이란 단어가 붙었습니다.
제이슨 카디프 클린오투 최고경영자(CEO)는 “저온 가공은 재료들이 섞이며 자체적으로 나타나는 자체 발열 반응 외 추가로 발생하는 열은 없다”며 “혼합물에서 생성되는 열을 통해 ‘비누화’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저온 가공 방식으로 비누를 만들기 때문에 제작에 6~8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클린오투는 “탄소배출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탄소포집 비누는 사용 후에도 탄산칼륨 형태로 남아있어 다시 CO2로 배출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클린오투는 고체 형태의 탄소포집 비누와 함께 샴푸·바디·빨래·면도용 탄소포집 비누도 개발했습니다. 이와 함께 탄소포집 액체비누도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클린오투는 왜 하필 탄소포집 비누를 만든 것일까요?
탄소포집 기기 직접 개발한 클린오투…제이슨 CEO “비누는 마케팅 수단” 🤖
클린오투를 그저 비누 제조 회사라고 일컫는 것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비누 제조의 근간이 되는 탄소포집 기기를 직접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클린오투는 건물의 난방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CO2를 포집하고 탄산칼륨을 생성하는 장치인 ‘카빈엑스(CarbinX)’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애초 클린오투의 사업 모델은 카빈엑스로 생성된 탄산칼륨을 생활용품(비누·샴푸·비료 등) 제조사 등 제3자에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이슨 CEO 역시 클린오투는 탄소를 포집하는 기후테크 스타트업이지 생활용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란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랬던 그가 돌연 탄소포집 비누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유, 바로 ‘마케팅’ 때문입니다.
제이슨 CEO는 “카빈엑스에서 생성된 화학물질을 시장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보여줘야 했다”며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비누를 만들어 탄소포집 기술을 수시로 상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순환경제 전환에 대한 회사 측의 비전도 탄소포집 비누 제작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클린오투는 “단순히 탄소를 포집하는 것을 넘어 이를 업사이클링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기 원했다”고 밝혔습니다.
“포집 기기 ‘카빈엑스’ CO2 감축? 나무 100그루 연간 흡수량과 맞먹어!” 🌲
앞서 언급한대로 클린오투는 건물 난방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CO2를 포집하는 기기, 카빈엑스를 개발했습니다.
사실 건물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대표적인 부문 중 하나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건물·건축 부문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합니다.
냉난방 유지 등 건물 운영에서도 CO2가 배출됩니다. IEA는 건물 냉난방이 전 세계 전체 탄소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배출원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반구 중에서도 추운 지역에 속한 캐나다는 난방 산업이 발달한 만큼 이에 따른 배출량도 상당합니다. 건물 상당수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연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캐나다 천연자원부(NRCan)에 의하면, 2021년 기준 건물 난방에서 발생한 온실가스(GHG) 배출량이 캐나다 전체 배출량의 13%를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제이슨 CEO가 클린오투를 창립하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20여년간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한 제이슨 CEO도 건물 난방 부문 내 탄소배출량을 줄일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보일러 배관 청소에 쓰이는 수산화칼륨(KOH)이 CO2 포집에 활용할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산화칼륨은 대기 중 CO2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화학물질 중 하나입니다.
이에 그는 2005년부터 연구팀을 꾸려 10여년간 CO2 포집기기인 카빈엑스 개발에 나섭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2013년 클린오투를 설립한 것. 클린오투는 설립 2년 뒤인 2015년 카빈엑스 개발에 성공합니다.
탄소포집 기기인 카빈엑스에는 수산화칼륨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를 건물 내 난방 시스템과 결합하면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탄소를 포집할 수 있습니다.
이때 포집한 탄소가 카빈엑스 내 수산화칼륨과 반응하며 탄산칼륨이 형성됩니다. 기기 작동 후 약 2주 뒤면 해당 탄산칼륨을 수거할 수 있습니다.
회사 측은 “탄소포집 과정에서 탄산칼륨과 물만 생성되며 별도의 유해 물질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클린오투는 카빈엑스 1대로 연간 6~8톤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나무 100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CO2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클린오투는 밝혔습니다.
배우 디카프리오가 선택한 ‘카빈엑스’…“세계 각지에 42대 판매” 🌏
한편, 클린오투는 2017년부터 카빈엑스를 판매 중입니다. 기존에는 상업용·다세대 주택 건물 개인 소유자를 대상으로 거래 했으나, 최근 일반 기업에도 카빈엑스를 판매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일례로 올해 3월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 있는 ‘래디슨 블루 몰 아메리카 호텔’은 카빈엑스를 설치했습니다.
호텔은 약 2만 달러(약 2,500만원)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카빈엑스를 설치했습니다. 그 이유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용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클린오투의 카빈엑스는 호텔 내 온수 보일러에서 배출되는 CO2를 포집하여 탄산칼륨을 생성합니다. 카빈엑스에서 나온 탄산칼륨은 클린오투에 전달됩니다.
뿐만 아니라, 카빈엑스 내부에서 수산화칼륨과 CO2가 반응하며 생성된 열은 호텔 측이 보조 열원으로 활용 중입니다. 호텔 측은 해당 열원을 온수 생산에 보조 열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에너지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은 절감한단 것이 호텔 측의 설명입니다.
보일러 연소사용량의 20%가 줄어든 덕에 비용절감이 가능하다고 클린오투 측은 밝혔습니다.
이처럼 클린오투는 캐나다를 넘어 미국과 일본에서도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부턴 영국과 호주에도 카빈엑스를 수출했습니다. 클린오투는 “2017년 첫 판매 이후 지금까지 42대의 카빈엑스를 판매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세에는 여러 투자사의 지원이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난해 10월 클린오투는 기후테크 및 순환경제 전문 밴처캐피털(VC)인 ‘리제너레이션.VC(Regeneration.VC)’로부터 275만 캐나다 달러(약 26억원)의 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이 VC는 미국 유명 영화배우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가 투자자로 참여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제이슨 CEO는 “(여러 지원으로) 향후 카빈엑스 설치량은 더 확대될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카빈엑스를 확산해 소비자가 탄소포집 비누를 구매한 지역에서 CO2 를 포집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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