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에너지안보와 비용 문제에 더불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천연가스를 대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건물 냉난방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주요 온실가스 배출분야입니다. 지난해 공간과 물을 데우기 위한 에너지 소비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CO2)만 2.5기가톤(Gt)에 달하는데요.

그중에서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난방 에너지 수요에서 천연가스는 45%를 차지합니다.

때문에 천연가스를 대체할 난방 솔루션을 시급한 가운데,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공개한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 5억 톤까지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소개됐는데요.

IEA가 주목한 ‘지속가능한 난방 솔루션’은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지속가능한 난방 위해, IEA가 선택한 기술 ‘히트펌프’란? 🔥

지난 11월 30일, IEA가 지속가능한 난방으로 전환하는데 ‘히트펌프’가 주요 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담긴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IEA는 특별 보고서 ‘히트펌프의 미래’에서 매우 효율적이고 기후친화적일뿐만 아니라 수입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에너지안보를 증진하는 기술로 히트펌프를 소개했는데요.

넓은 의미에서 히트펌프(Heat Pump)란 특정 장소의 열에너지(Heat)를 흡수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Pump)시키는 장치를 말합니다. 현재 에어컨과 냉장고 등 가전제품에 사용되고 있는데요. 에어컨과 냉장고처럼 내부의 열을 흡수해 외부로 보내서 냉방할 수도 있고, 거꾸로 난방을 위해 외부의 열을 내부로 끌어올 수도 있습니다.

 

▲ 히트펌프는 냉매를 사용해 열을 전달하는 장치로 에너지 효율이 높고 냉방과 난방 모두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innergie

히트펌프의 장점은 가스나 전기를 사용해 직접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방식(발열)과 달리 열전달에만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효율이 높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현재 상용화된 히트펌프의 경우 가스보일러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3~5배 높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지구 평균온도 상승에 따른 폭염 위험에 대응하는 측면에서도 히트펌프의 잠재력이 더욱 높다고 덧붙였는데요. 앞서 설명한 대로 히트펌프는 난방과 냉방을 모두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트펌프의 종류는 열에너지를 어디에서 가져오느냐에 따라 공기열, 지열, 수열 등으로 나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열병합 발전소의 폐열을 회수해 난방수로 이용하는 지역난방, 한강의 물온도차를 활용해 수열 히트펌프로 냉난방 시설을 갖춘 롯데타워 등에 사용된 바 있습니다.

 

▲ 2021년과 2030년 기후공약 충족 시나리오APS시 난방으로 인한 탄소배출량 변화왼와 배출량 감축 수단오을 나타낸 그래프 IEA는 에너지 효율성 증대53와 히트펌프 전환39이 난방의 배출량 감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IEA

IEA,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배출 5억톤 이상 줄일 수 있어!” 📉

보고서에서 IEA는 전 세계 정부가 발표한 모든 에너지 및 기후공약을 제때에 충족한다는 가정(Announced Pledges Scenario·APS)하에 히트펌프 비중을 20%로 증가시키는 시나리오를 분석했습니다.

이 경우 2021년 1,000기가와트에서 2030년까지 2,600기가와트로 증가하게 되는데요. 천연가스 수요는 800억 입방미터(80bcm)*, 석유는 하루 100만 배럴, 석탄은 5,500만 톤이 감소했습니다. 이것은 히트펌프가 2030년 건물 난방을 위해 사용되는 화석연료의 39%가량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트펌프는 건물뿐만 아니라 산업용 난방 수요도 일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기술 혁신과 디자인 개선 덕분에 대형 히트펌프의 경우 현재 최대 150℃ 가량의 온도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때문에 생물 배양, 표백, 저온 살균 등 100℃ 미만의 저온 공정에 주로 사용됩니다.

특히 최근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타격을 입은 제지·식품·화학산업의 경우, 히트펌프 대체가 적합한 산업에 해당되는데요. 보고서는 유럽에서만 3,000개 시설에 15기가와트(GW)만큼의 열에너지를 공급할 잠재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10억 입방미터(bcm·billion cubic meters): 천연가스에 주로 사용되는 단위로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km만큼인 부피를 뜻한다.

 

▲히트펌프에 사용되는 냉매인 F가스는 강력한 온실가스다 ©EIA 유튜브 캡처

히트펌프의 온실가스 저감 극대화 위해, ‘F가스’ 해결 필요해 💭

그렇다면 히트펌프 전환은 온실가스 저감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요?

이를 알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히트펌프에서 열 운반에 사용되는 가스인 냉매인데요. 냉매에 주로 사용되는 F가스(F-Gas)*는 지구온난화지수(GWP)가 강력한 온실가스로, 누출될 경우 지구온난화가 더욱 가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F가스 중 하나인 수소불화탄소(HFCs)는 GWP가 이산화탄소(CO2)의 1만 4,600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F가스 냉매 누출과 (화석연료 발전 등)배출집약적 전기로 작동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고효율 가스보일러보다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 20%는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캐나다, 독일, 한국, 중국의 4개국의 사례로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분석한 결과인데요.

 

▲가스보일러 및 냉매 옵션별 히트펌프의 MWh당 온실가스GHG 배출량 ©IEA

위 그래프에서 IEA는 가스보일러 사용 시(주황) 탄소배출량을 추산했습니다. 또 히트펌프의 경우 ▲F가스 냉매 사용 및 누출을 상정한 경우(청록) ▲냉매 재활용 및 저감 옵션 등 ‘좋은 관행’을 채택한 경우(연파랑) ▲탄화수소 등 대체냉매를 사용한 경우(연녹)로 세부화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국가에서 히트펌프로 전환 시 냉매 옵션과 상관없이 탄소배출량이 크게 줄어든 결과를 보였는데요.

이에 IEA는 히트펌프 전환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GWP가 낮은 대체 냉매를 개발할 수 있도록 기술혁신 또한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F가스: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 등 플루오르화(불소화)가스가 포함된 온실가스 종류를 한데 일컫는 말. 프레온가스로 잘 알려진 염화플루오린화가스도 여기에 속한다.

 

▲ IEA는 EU의 리파워EU 정책이 히트펌프 확장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했다 © EU Commissions Facebook

에너지 위기로 급증한 히트펌프 시장, “세계 각국의 적극적 지원 필요해!” 💰

IEA는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히트펌프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히프펌프의 2021년 판매 매출은 전 세계적으로는 전년 대비 13%, 유럽연합(EU)에서는 35%가량 증가했습니다. 2022년에는 글로벌 에너지위기로 인해 ‘기록적인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2022년 5월 EU 집행위원회가 2030년 이전에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기 위해 리파워EU(RePowerEU) 정책을 발표한 것도 히트펌프의 확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빠른 성장세에도 전 세계 난방 수요에서 히트펌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그칩니다.

IEA는 보고서에서 히트펌프 사용을 가속화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나서서 높은 초기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가스보일러와 비교할 때 2~4배가량의 높은 설치비가 들기 때문인데요.

보고서는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30개국에서 히트펌프 설치 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여러 비용 장벽이 히트펌프 확대를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IEA는 복잡한 승인 절차와 정보 부족, 소유주와 임차인 간의 인센티브 분할 지급 등을 사례로 들었는데요.

이에 IEA는 히트펌프 설치 확대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설치 비용 지원뿐만 아니라 ▲승인절차 완화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 ▲숙련된 전문 인력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 한국에서 히트펌프 확대 어려운 이유, ‘누진세’ 때문이라고? 💸
전 세계적으로 히트펌프 설치가 확대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히트펌프 확대가 더딥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한국의 전기요금 누진제를 꼽고 있는데요. 구간별로 높은 요금이 부과되는 누진세의 특성상, 전기만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히트펌프가 전기료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에서는 “가스가 전기보다 유리한 세금 혜택을 받는 일부 국가에서는 연료세 개혁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세금 개혁을 통해 전기세율을 낮추고 가스 세금을 인상해 히트펌프 도입을 촉진한 네덜란드의 사례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