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까지 지속가능해야 진짜 순환 패션이지!

“간헐천 속 박테리아로 옷을 염색”

패션업계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소재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식물성 원료로 만든 비건 가죽,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한 대체 양털 등 지속가능한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해외 기업들도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폐페트병을 원료로 만든 재생 섬유가 화제가 되고 있지만 미세플라스틱 배출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죠. 지속가능한 섬유를 위해 단순히 ‘재생’을 넘어서 ‘순환 가능’한 소재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소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패션 전체를 보면 소재는 첫 단추에 해당하죠. 패션업체 대부분이 사용하는 합성염료는 석유를 증류할 때 나오는 벤젠이 주원료이기 때문입니다. 염색 과정에서는 표백하고 염색하고 헹구는 과정을 반복하며 다량의 에너지가 사용되고 폐수와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되죠.

지속가능한 패션에 진심인 그리니엄은 이번 콘텐츠에서 소재의 다음 단계, 염색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술을 혁신하는 기업들을 다뤄봅니다.

 

▲ 컬러리픽스는 박테리아의 DNA를 디자인해 바이오 염료를 생산한다. ©Colorifix

간헐천 박테리아로 옷을 염색한다고? 🦠

글로벌 의류 브랜드 판가이아(Pangaia)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노력해온 기업입니다. 지난 5월에는 소비자가 원산지, 생산, 유통 등 상품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도록 ‘디지털 여권’을 제작했단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최근에는 박테리아를 활용해 지속가능한 바이오 염료를 만드는 컬러리픽스(Colorifix)란 스타트업체와 협력해 만든 한정판 운동복을 선보였습니다.

이 한정판 운동복은 연분홍색인데요. 놀랍게도 이 색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간헐천에서 나왔습니다. 컬러리픽스가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뜨거운 간헐천에 사는 연분홍색 박테리아에서 DNA를 빌렸기 때문이죠.

이처럼 컬러리픽스는 바이오 염료를 만들기 위해 우선 자연의 유기체에서 원하는 색을 찾습니다. 그다음 온라인 DNA 시퀀싱을 이용해 해당 색을 내는 박테리아를 만듭니다.

실제가 아닌 온라인상에서 미생물의 DNA 코드를 디자인한다는 건데요. 그런 뒤 연구개발(R&D)를 거쳐 원하는 색을 내는 실제 미생물을 만들죠.

 

▲ 컬러리픽스의 바이오 염료를 사용한 판가이아의 한정판 운동복. ©Pangaia

공장에서는 생성된 미생물을 받아서 마치 맥주를 양조하는 것처럼 설탕, 효모, 식물 부산물 등 재생 가능 원료를 넣어 배양합니다. 배양된 다량의 박테리아를 별도의 전문 장비나 화학물질 없이 실 또는 원단을 염료액과 함께 염색 기계에 넣으면 끝입니다.

컬러리픽스는 이를 통해 물 소비량은 49%, 전기는 35%,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31%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외에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바이오디자인 프로젝트인 리빙컬러(Living Color), 바이오 염료로 청바지 염료인 인디고를 개발한 패션 생명공학 스타트업 휴(Huue) 등 다양한 기업들이 바이오 염료를 개발하고 있다고!

 

▲ 다이쿠의 ‘워터 프리’ 공정은 고온 고압으로 물 없이 섬유를 염색합니다. ©Dyecoo, 유튜브

물 오염? 나는 공기로 염색한다! 🍃

물을 오염시키는 화학 염료를 대체하기 위해 바이오 염료로 바꾼 기업이 있다면, 염료 과정에서 물 자체를 없앤 기업도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염색 회사인 다이쿠(Dyecoo)입니다.

다이쿠는 세계 최초의 100% ‘워터 프리 섬유 가공 기술(Water Free Dyeing)’을 자랑하는데요. 염색(Dye)과 이산화탄소(CO2)의 합성어인 사명처럼, 다이쿠의 워터프리 염색 공정은 물 대신 CO2를 사용합니다.

다이쿠의 기술은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해 CO2를 초임계 상태로 만들어서 염료를 용해하는 것인데요. 초임계 상태가 된 CO2는 용매력이 높아서 덕분에 염료가 물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섬유 속에 잘 녹아들 수 있다는 겁니다. CO2를 사용하는 만큼 염색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걱정될 수 있는데요.

폐쇄 공정을 통해서 사용한 CO2의 95%를 회수해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염료가 더 잘 녹아들기 때문에 색상도 더 생생하고 과정이 단축돼 공정비용을 절감하는 등의 장점도 있다고! 다만, 다이쿠의 염색 공정도 한계는 있다는데요. 물을 절약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기술의 특성상 폴리에스터 등 특정 소재에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짐 피터링 도우 CEO. ©Dow

자투리는 염색하지 않겠어요 ✂️

사실 염색에서 낭비되는 자원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덜 염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이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이기도 하죠. 이런 딜레마를 글로벌 패션브랜드 랄프 로렌이 고객 맞춤형 마케팅으로 승화시킨다고 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바로 ‘컬러 온 디맨드(Color on Demand)’ 프로젝트입니다.

랄프 로렌의 새로운 염색 기술 파트너인 도우(Dow)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짐 피터링은 지난 10월, 미국 경제매체 CNBC에 출연했는데요.

그는 인터뷰에서 내년 뉴욕의 랄프 로렌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소비자들이 폴로 셔츠를 직접 염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옷 제작이 완성된 후에도 품질의 이상 없이 염색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덕분인데요.

이 덕분에 랄프 로렌은 버려질 자투리, 팔리지 않은 재고를 염색하는데 들어가는 자원을 아낄 수 있을 겁니다. 소비자들은 맞춤형 염색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더 잘 반영할 수 있겠죠.

랄프 로렌의 컬러 온 디맨드 프로젝트가 순환 패션을 체험형 소비와 연결하는 비즈니스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인데요. 이처럼 순환 패션을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으로 삼아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패션 기업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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