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의회가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지속가능한 금융 분류 체계(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6일(현지시각) 유럽의회는 본회의를 열어, 지난 2월 EU 집행위가 확정한 원전·천연가스 발전이 포함된 택소노미 최종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앞서 지난달 유럽의회 산하 경제통화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위원회는 원전·천연가스 발전을 EU 택소노미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는데요.

본회의에 참석한 유럽의회 의원 639명 중 328명이 반대표, 찬성 278표, 기권 33표를 던져 해당 결의안은 부결됐습니다. 이에 따라 원전과 천연가스 발전은 EU 택소노미에 따라 ‘친환경’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단, 유럽의회는 원전과 천연가스 모두 2050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을 위한 과도기적 활동이란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두 에너지 모두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친환경으로 인정받는데요.

EU 택소노미가 담긴 기후위임법(CDA·Complementary Climate Delegated Act)은 EU 각료이사회를 거쳐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됩니다. 의회 결정을 뒤집기 위해선 EU 27개 회원국 중 20개 회원국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

한편, 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덴마크 등 일부 회원국은 이번 결정을 놓고 법정 공방을 예고했는데요. 이번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니엄이 정리했습니다.

 

▲ 7월 6일 유럽의회는 원전 천연가스가 포함된 택소노미 집행위 최종안에 이의를 제기한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Frédéric Simon Twitter 캡처

EU 집행위, 의회 결정 환영 의사 밝혀…유럽 청정에너지 전환 도움될 것 🇪🇺

친환경 산업을 분류하는 기준이자 친환경 관련 투자를 촉진하는 택소노미. EU는 지난 1년간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를 넣을지 말지를 놓고 찬반 논쟁을 벌였습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12개국은 원전을 친환경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독일을 중심으로 5개국은 반대 입장을 고수했는데요. 치열한 논의 끝에 올해 2월 EU 집행위는 원전 및 천연가스를 EU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기후위임법을 내놓았습니다.

EU 집행위가 내놓은 택소노미 최종안을 놓고 의회 산하 위원회별로도 의견이 엇갈렸는데요. EU 집행위는 원전·천연가스 발전이 담긴 택소노미 최종안이 의회를 통과한 것을 두고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EU 집행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정당하지 않은 군사적 침략은 EU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시켰다”고 밝혔는데요. EU 집행위는 이어 “이번에 통과한 보완위임법은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EU 집행위에서 금융서비스를 총괄하는 메리어드 맥기네스 위원은 “(EU 택소노미는)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가스와 원자력에 대한 민간 투자가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기 위한 실용적인 제안”임을 강조했는데요.

그는 또한 “택소노미 안에서는 우선순위가 매겨져 있다”며 “(EU 택소노미는) 투자자들이 무엇에 투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투명성을 보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2020년 EU 원전 현황과 프랑스 쇼 원전의 전경 ©Eurostat

원전·천연가스 모두 탄소중립 위한 ‘과도기적 활동’ 📝

앞서 설명한 대로 이번 결과는 EU가 원전과 천연가스 발전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과도기적 활동으로 공식 인정했단 것인데요.

다만, 두 에너지 모두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합니다. EU 집행위 또한 택소노미 최종안을 발표하던 당시 원전과 천연가스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중간 과정에서 디딤돌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는데요. 두 에너지가 각각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을 핵심만 설명한다면.

 

1️⃣ 원자력 발전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의하면, 2022년 4월 기준 서유럽과 중앙·동유럽에서 총 174기의 원전이 운영 중인데요. 기후위임법에 제시된 조건은 현존하는 원전과 신규 건설된 원전을 나눠 세부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방사성 폐기물 처분을 위한 운영 가능 시설도 명시됐는데요.

  • 기존 원전 ⚡: 먼저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은 수명 연장을 위한 시설 개선 작업은 2040년까지 가능한데요. ▲합리적으로 실행가능한 수준에서 안전 개선,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 사용 등의 조건이 달렸습니다. 사고저항성핵연료는 연료 및 원자로 부품의 구조적 손상으로 인한 사고로부터 추가적인 보호 기능을 하는 연료를 뜻합니다.
  • 신규 원전 💡: 신규 원전의 경우 이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습니다. 신규 원전 건설은 ▲2045년까지 건설 허가를 받아야 하며, ▲현존 최고 기술(3세대 플러스)을 적용해 건설해야 합니다. 폐기물 최소화를 위한 폐쇄형 연료주기(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풀루토늄을 추출해 재사용) 기술 개발도 포함됐는데요. 명시한 기한 이후에는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탄소배출량이 적은 반면 발전 효율이 높고 안전성이 뛰어난 4세대 원전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항을 두지 않았습니다.
  • 방사성 폐기물 ☢️: 모든 원전은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을 위한 운영 가능 시설을 갖춰야 하고, 2050년까지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마련할 계획도 제시해야 합니다. 현재 고준위폐기물처리장은 EU 회원국 중 스웨덴과 핀란드만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 천연가스 발전

신규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허가는 2030년까지만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천연가스 발전소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발전소를 대체하기 위해 사용돼야 하는데요.

설계 시 천연가스 발전소의 생애주기 이산화탄소 발전량이 킬로와트(kWh)당 100g 미만이어야 합니다. 이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선 탄소포집 및 저장기술 등이 활용돼야 하는데요.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kWh당 270g 미만이어야 합니다.

 

👉 원전, 천연가스 발전에 붙은 상세한 조건들이 궁금하다면?

 

▲ 레오노어 게베슬러 오스트리아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해 원전이 포함된 EU 택소노미와 관련해 유럽사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할 준비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Thomas Jantzen Parlamentsdirektion

4개국 유럽사법재판소에 이의 신청…독일은 빠져 ⚖️

EU 택소노미에 원전과 천연가스가 포함된 가운데 회원국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프랑스와 체코는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데요. 반면,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스웨덴, 덴마크 등 4개국은 이번 결정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앞서 오스트리아는 지난해 11월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레오노어 게베슬러 오스트리아 에너지부 장관은 성명에서 “최근 몇 달간 이 사안을 집중적으로 준비했으며, 정해진 기간 내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룩셈부르크 또한 오스트리아의 압박을 지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클로드 투르메스 룩셈부르크 에너지 장관은 트위터에 유럽사법재판소 제소 방침을 분명히 했는데요. 그는 트위터에 “룩셈부르크와 덴마크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올려 덴마크도 제소에 함께할 계획임을 공개했습니다.

스웨덴도 투표에 앞서 소송 참여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독일의 경우 초기에 소송을 고려했으나 현재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6월 30일 폴란드 바르샤바 기후환경부에서 안나 모스크바 장관과 만나 원전 등에서 양국간 포괄적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EU 택소노미, 한국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 🇰🇷

EU가 원전을 친환경으로 공식 분류함에 따라 새정부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개정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EU 사례를 참고해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한다고 110대 국정과제에 명시한 바 있는데요.

산업통상자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유럽의회가 원자력을 EU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것을 의결했다”며 “이는 EU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원전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산업부는 이어 “이번 EU 택소노미의 의회 통과로 체코, 폴란드 등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EU 국가들의 자금 조달이 용이해져 원전 사업 추진에 우호적인 환경이 형성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기자간담회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이나 사고저항성핵연료 등의 전제조건을 우리도 적용할 것”이라며 “안전을 담보해야만 원전이 녹색에너지로 (분류)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환경부는 이르면 이달 말 원전이 추가된 K-택소노미 초안을 발표하고 오는 9월 중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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