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는 패스트패션이 유행에서 뒤떨어지길 원합니다.”

버지니유스 싱크에비셔스 EU 환경위원

 

유럽연합(EU)이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을 종식하기 위한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3월 30일(현지시각), EU 집행위원회는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를 위한 EU 전략(EU Strategy for Sustainable and Circular Textiles)’을 공개했습니다.

전략 공개와 함께 ‘EU가 패스트패션의 종식을 선언했다’는 국내외 언론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전략안은 패스트패션과 화석연료의 연관성을 서술합니다. EU 공동연구센터(JRC)에 따르면, 1996년에서 2018년 사이 EU의 의류가격이 30% 이상 하락했는데요.

반면, 가계 평균 의류 지출은 14%, 실질 평균 지출은 17%나 증가했습니다. 이에 EU 집행위는 패스트패션 유행이 합성섬유의 원료인 화석연료 수요로 이어졌다고 지적한 것.

그러나 이번 전략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패스트패션만이 아닙니다. 이번 전략은 EU의 2050 기후중립(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정책 이니셔티브인 유럽 ‘그린딜(Green Deal)’의 일환인데요. 이번에 공개된 전략은 2050 기후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섬유생태계에서 EU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안하고 있죠. 즉, 패스트패션은 미세플라스틱과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단속과 함께하는 구체적인 이슈 중 하나란 것.

그렇다면 EU가 꿈꾸는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는 어떤 것일까요? 오늘 그리니엄에서는 섬유 생태계를 바꿔놓을, EU의 방대하고 야심 찬 전략을 4가지 핵심으로 알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 PolyCE Project 제공

1️⃣ 지속가능한 옷, 설계부터 바뀌어야 가능해! 📐

섬유의 환경 영향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의류의 수명을 늘리는 것입니다. EU 집행위가 첫 번째 핵심 행동으로 제품 설계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의류의 내구성이 높아지면 소비자는 옷을 더 오래 입을 수 있습니다. 이는 나아가 수선, 재사용, 중고 판매 등 순환 비즈니스로 이어져 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데요.

이런 이유로 EU 집행위는 냉장고, 세탁기, 조명 등 에너지 제품에만 적용되던 에코디자인 프레임워크(Ecodesign Framework)를 섬유로 확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울러 EU 집행위는 의류의 재활용성을 높이기 위해선 디자인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디자인 개선이 분류 및 고급 재활용 기술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가령 폴리에스터(PET) 80%와 면 20%가 혼합된 의류폐기물은 재활용이 어려운데요. 이를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일보다 의류 디자인에서부터 단일 섬유를 사용하는 것이 재활용성을 더욱 높이기 때문이죠.

 

+ 에코디자인, 미세플라스틱 오염도 해결할 수 있다! 👕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 화석연료로 만든 합성섬유는 미세플라스틱 배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연간 최대 4,000만 톤의 합성섬유가 세탁기에서 배출되고 있죠. 특히, 초반 5~10회 세탁에서 가장 많은 양의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됨으로, 신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패스트패션은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는데요. 이에 EU 집행위는 에코디자인 프레임워크 도입을 통해 합성섬유의 수명주기 단계에서부터 미세플라스틱 배출 문제를 해결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한편, 올해 하반기에는 미세플라스틱 해결을 위한 별도의 이니셔티브가 발표될 예정인데요. 세탁기 필터, 관리 및 세척 지침, 폐수 및 하수 슬러지(찌꺼기) 처리 개선을 위한 규정이 다수 포함된다고.

 

👉 폐페트병으로 만든 패딩과 플리스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고?

 

© CMA 제공

2️⃣ 그린워싱 막을 ‘녹색 주장(Green Claim)’ 두둥등장! 🐧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섬유를 구매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도 개정될 계획입니다. EU 집행위는 불공정 상업 관행 지침(2005)과 소비자 권리 지침(2011)을 개정할 예정임을 예고했는데요.

예고안에 따르면 ▲녹색(Green), ▲친환경(Eco-friendly), ▲환경에 좋은(Good for environment) 등의 문구는 EU의 에코 라벨 혹은 특정 법률에 근거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올해 하반기에 발표될 녹색 주장 이니셔티브(Green Claim Initiative)에 담길 예정입니다.

녹색 주장 이니셔티브는 소비자에게 신뢰 가능한 정보를 제공을 통한 녹색 전환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EU 집행위는 해당 이니셔티브를 통해 기업·투자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더 친환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밝혔죠. 결과적으로는 EU 섬유 제품의 환경발자국을 크게 줄임으로써 2050 기후중립 달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 EU, 페트병 재활용 섬유에도 경고장 날렸다! 🥤
한편, EU 집행위는 ‘녹색 주장’의 필요성을 설명함과 동시에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섬유로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폐페트병 재활용 섬유가 친환경이란 주장은 소비자를 오인하게 할뿐더러, 애초에 페트병은 순환모델을 만드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한 것인데요. EU 집행위는 폐페트병으로 만든 섬유는 재활용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섬유로 쓰일 경우 또다른 미세플라스틱 배출로 이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EU 집행위는 향후 폐페트병으로 섬유를 만드는 일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는데요. 동시에 기업들에게 섬유 대 섬유 재활용을 우선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 섬유 대 섬유 재활용이 궁금하다면? 낡은 청바지로 새 청바지를 만드는 리뉴셀을 주목해!

 

© 2021년, 패션브랜드 판가이아와 연결성 구현 기업인 EON이 협력해 출시한 자체 디지털 여권_Pangaia

3️⃣ 투명한 정보 제공, 디지털과 함께라면 가능해! 🌐

앞선 조치들이 가능하기 위해선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체 밸류체인(가치사슬)의 행위자 간 정보 교환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은 지속가능한 옷을 선택할 수 있고, 재활용업체 또한 적절한 수선 및 재활용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제품 크기, 제조 국가 등 지속가능성 및 순환성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섬유 라벨링 규정 검토가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인데요.

하지만 소비자·생산자·재활용업체가 모든 정보를 공유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EU 집행위는 디지털 도구를 강조합니다. 디지털화를 통해 순환성 전환을 촉진하는 것을 일컬어 쌍둥이전환(이중전환)이라 부르는데요.

우선 섬유를 위한 디지털 제품 여권(DPP)이 도입됩니다. 디지털 제품 여권이란 해당 제품의 부품 원산지, 수리 및 해체 가능 여부, 수명 정보 등이 종합적으로 담긴 일종의 디지털 인증서인데요. 제품 정보를 알 수 있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재사용·재활용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자제품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제품 여권 초안이 공개될 예정이죠.

EU 집행위는 디지털 도구가 옷을 설계·생산·제공하는 방식을 바꿔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평했는데요. 이에 신기술이 온라인 구매 의류의 반품률을 줄이거나 맞춤형 주문 생산을 도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의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지도 평가할 예정임을 밝혔습니다.

 

+ 명품 브랜드, 재고·반품 상품 파괴도 이제는 금지돼! 🔥
상당수의 명품 브랜드가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를 소각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는 자원의 낭비이자 환경 파괴로 이어지는데요. 이를 막기 위해 EU 집행위가 칼을 빼 들었습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은 ▲폐기 및 파괴하는 제품의 수량, ▲재사용·재활용·소각·매립 과정에서의 추가처리 정보 등을 공개해야 하는데요. EU 집행위는 이어 미판매 및 재고 제품의 폐기 금지 조치를 도입할 예정임을 밝혔습니다.

 

© ECOMMERCE-EUROPE 제공, greenium 편집

4️⃣ 폐기물을 줄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 EPR! 🗑️

EU 시장의 섬유 중에서 62%는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되고 있습니다. 섬유 시장이 성장할수록 폐기물 양은 증가하죠. 집행위는 이러한 정비례 관계를 끊어내려면(탈동조화) 생산자의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섬유 산업에 생산자 책임 재활용(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 도입을 제안하는데요. EPR은 생산자에게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기업은 생산량에 비례해 재활용 부담금을 내야 합니다. 환경에 관한 생산자의 책임이 생산과 소비 단계를 넘어서,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확대된다는 의미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종이팩, 휴대폰을 포함해 일부 포장재와 전자폐기물 등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EPR은 기업이 제품 설계에서부터 재활용·재사용 등 순환성을 고려하도록 장려합니다. 또한 EPR 부담금을 사용해 폐기물 예방과 수거, 후속관리를 개선할 수 있죠. 이미 프랑스 등 일부 EU 회원국에서는 섬유 산업에 EPR을 도입했거나 고려 중인 상황입니다. EU 집행위는 2023년 폐기물 프레임워크 지침 개정 전에 EU 회원국 모두에게 EPR 도입을 제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greenium

오늘날 EU는 전체 섬유의 75%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EU는 중국, 방글라데시, 터키로부터 800억 유로(한화 108조 760억 원) 이상의 의류를 수입했는데요. EU가 공개한 야심 찬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일부 국가와 지역을 넘어 세계 섬유 산업 모두가 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에 EU 집행위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환경 및 사회적 공정성을 실사할 계획임을 밝혔는데요.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뿐만 아니라 아동 노동, 강제노동, 불공정 임금 등 인권 및 노동권 침해 여부도 포함됩니다. 유럽 섬유 밸류체인에 관련된 제3국 기업에도 해당 의무가 부여되는데요. 즉, 유럽에 섬유를 판매하거나 유럽 섬유를 구입하려는 기업 또한 환경 및 사회적 공정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번 전략으로 EU 집행위는 2030년까지 EU 시장의 모든 섬유 제품이 지속가능하고 순환적이며 사회적 권리와 환경을 고려해 생산될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EU 집행위는 또 소비자들은 안전하고 고품질의 저렴한 직물로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생산자는 패러다임 전환의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죠.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섬유 밸류체인을 만들겠다는 EU의 야심 찬 계획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섬유 산업은 또 어떤 영향을 받을지 그리니엄이 계속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