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농가에서 월동 과정 중 꿀벌들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꿀벌 실종’ 사건이 올해에도 반복됐습니다.

지난 14일 한국양봉협회에 의하면, 올해 3월 기준 협회 소속 1만 3,019개 농가 봉군(벌통) 153만 7,270개 중 94만 4,040개에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양봉업계의 약 61.4%가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실종된 꿀벌은 최소 183억 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꿀벌 실종으로 인한 피해 금액은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꿀벌 실종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살충제 사용, 질병,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꿀벌이 전 세계적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꿀벌 군집 붕괴 현상(CCD)’으로 정의되는 이 현상은 2006년 11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보고된 이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니엄이 오는 5월 20일, 세계 꿀벌의 날을 맞아 꿀벌을 지키기 위한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정밀양봉(Precision beekeeping)’ 기술을 살펴봤습니다.

 

▲ 2006년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살충제 사용과 질병 기후변화 등으로 꿀벌이 사라지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CCD이 나타나고 있다 ©Mann Lake LTD

꿀벌 실종 원인 ‘추정’뿐…“‘정밀양봉’ 기술로 알 때까지 관리해!” 💬

꿀벌 실종은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 있단 점에서 심각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식량의 90%를 제공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에서 71종이 꿀벌에 의해 수분된다고 추산합니다.

CCD는 생물다양성도 위협합니다. 꿀벌은 주요 작물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주요 수분 매개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CCD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선 미국부저병 등의 질병을, 유럽에선 제초제 사용 등을 원인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지난달 2월 22일 농림축산식품부는 꿀벌 실종 원인에 대해 꿀벌 기생충인 ‘응애’ 방제 실패를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환경단체 및 양봉농가에서는 농식품부의 발표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등 이견이 분분한 상황입니다.

 

▲ 정밀양봉이란 첨단 기술을 사용해 개별 꿀벌 군집을 모니터링하고 데이터에 기반에 관리하는 전략을 말한다 ©entity magBeewise

다양한 요인으로 사라지고 있는 꿀벌을 돕기 위해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정밀양봉입니다.

컴퓨터 비전* 같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의 첨단 기술을 사용해 개별 꿀벌 군집을 모니터링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관리하는 전략인데요.

이와 유사한 접근 방식인 정밀농업은 이미 여러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물인터넷(IoT), AI, 드론, 빅데이터 기술 등의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스마트팜, 수직농장이 그 사례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CCD 피해를 겪은 미국을 선두로, 해외에서는 이러한 정밀양봉 기술이 현장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의 한 분야로, 동영상과 사진 등 시각적 정보에서 정보를 추출해 처리하는 기술.

 

▲ 이스라엘 애그테크 스타트업 비와이즈의 자율관리벌통 비홈 모습 카메라와 인공지능AI 로봇 팔이 탑재돼 데이터에 기반한 자율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Beewise

로봇·AI로 CDD 사전 차단하는 스마트벌통! 🐝

2018년 설립된 이스라엘 애그테크 스타트업 비와이즈(Beewise)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자율관리벌통통 ‘비홈(Beehome)’이 대표적입니다.

이동이 가능한 금속 상자로 만들어진 비홈은 여러 꿀벌 군체(봉군·bee colony)를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비홈의 가장 큰 특징은 카메라 및 AI이 적용된 소프트웨어 시스템, 로봇 팔이 탑재된 점입니다. 컴퓨터 비전 기술을 사용해 시각데이터를 수집하고 온도, 습도, 질병 등을 모니터링합니다.

벌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꿀벌 개체 수를 파악하기에 좋은 자료입니다. 비와이즈는 벌통의 음향 데이터를 머신러닝(ML) 및 클라우드 기술을 통해 수집·분석합니다. 세계 2위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및 세계꿀벌프로젝트(WBPHNetwork)와의 파트너십 덕분에 가능합니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로봇 팔은 먹이나 물을 제공하는 등 벌통을 자동으로 관리합니다.

관리 내역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양봉가에게 전달됩니다. 덕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앱을 통해 원격으로 수동 관리도 가능한데요. 비홈에는 태양광 패널이 결합된 덕에 관리에 있어 별도의 에너지도 필요가 없습니다.

 

▲ 자율관리벌통 비홈의 내부 모습 로봇 팔이 설치돼 있어 데이터에 따라 자동으로 관리한다 ©Beewise

비홈은 사전 관리뿐만 아니라 문제 발생 즉시 이를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주변 지역의 작물 등에 살충제·제초제가 살포될 경우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이를 감지합니다. 그 후 프로그래밍에 따라 벌통의 모든 출입구를 폐쇄해 벌통 내 살충제 유입을 방지합니다.

해충이 발생할 경우에는 살충제 대신 가열 메커니즘을 사용합니다. 꿀벌은 견디지만, 해충은 버티지 못하는 온도로 벌통 내 온도를 적절하게 올려 해충을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자동으로 꿀 수확시기를 파악하고 로봇 팔이 수확하는 기능도 탑재됐습니다. 다만, 비와이즈는 꿀 수확·판매는 부수적이라고 덧붙였는데요. 꿀벌의 가치가 꿀이 아닌 수분 활동에 있단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한편, 비와이즈는 벌의 행동과 스트레스 요인 등 방대한 데이터 저장소를 축적해 추후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과수농장에 설치된 비홈의 모습 비와이즈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및 오리건 지역에 1000여개의 비홈이 설치돼있다고 설명했다 ©Beewise

비와이즈, 설립 5년만에 1600억 조달…“꿀벌 실종 위기 심각성 반증” 🚨

비와이즈는 정밀양봉 기술을 통해 벌통의 붕괴율을 35%에서 8% 미만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또 향후 붕괴율을 2%까지 낮출 예정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비와이즈는 미국 내 주요 농업 지역인 캘리포니아주와 오리건주 일대에 비홈 1,000여개를 설치했습니다. 비홈은 아몬드 등 과수농장을 이동하며 농작물의 수분을 돕습니다. 비와이즈는 2024년 말까지 비홈을 1만여개 이상까지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비와이즈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사르 사프라는 꿀벌 보호의 시급성을 피력합니다.

사프라 CEO는 “꿀벌이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보카도나 토마토를 먹지 못할 것”이라면서 “서두르지 않으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실제로 비와이즈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높습니다. 2018년 비와이즈 설립 이후, 지난 5년간 무려 1억 1,900만 달러(약 1,6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줍니다.

비와이즈는 현재 기존 양봉 산업에 적합할 수 있도록 비홈을 소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2018년 선보였던 40개 군체가 담긴 1세대에서 소형화해, 지난 2월에는 10개 군체용 비홈을 선보였습니다.

 

이스라엘·미국·유럽…세계는 ‘정밀양봉’ 중! 🌐

이밖에도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유럽 내 애그테크 스타트업들도 잇따라 정밀양봉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요플레, 하겐다즈 등으로 유명한 미국 식품대기업 제너럴밀스가 4,200만 달러(약 560억원)를 투자한 수분 모니터링 스타트업 ‘비히어로(BeeHERO)’가 지난해 12월에 주목받았습니다. 미 캘리포니아주와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은AI와 데이터분석을 사용해 벌과 주변 작물을 추적, 모니터링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외에도 미 애그테크 스타트업 ‘유비(Ubees)’, 아일랜드 ‘아피스프로텍트(ApisProtect)’, 라트비아 ‘비세이지(Beesage)’ 등이 센서 및 모니터링을 통한 정밀양봉 기술을 개발·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주도해 꿀벌 활동 생체정보 등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벌통’을 개발해왔습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8개 시군에서 200여개의 벌통을 시범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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