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클레임 지침 철회, EU 환경 규제 흔드나

EPP 압박에 굴복한 EU 집행위…30만 소기업 규제 가능성에 철회 검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20일(현지시간) 기업의 환경 마케팅 주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2023년 3월 제안했던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을 철회할 뜻을 밝혔다.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인민당(EPP)이 법안의 복잡성과 기업에 가해질 행정 부담을 이유로 철회를 요구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 결정은 집행위원단(College of Commissioners)의 공식 승인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집행위원회 대변인 마치에이 베레스테키는 이날 브뤼셀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현재 상황에서 집행위는 그린 클레임 제안을 철회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나오자 유럽의회와 EU 회원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혼란이 일었다. 집행위가 해당 법안에 대한 삼자협의(trilogue)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발표된 서면 성명에서 집행위는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이 집행위의 간소화 의제에 반한다”며 철회 의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EU 이사회 의장국인 폴란드는 “집행위의 명확한 결정이 있기 전까지 의장국은 삼자협의에 건설적으로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으며, 다음 협상 라운드는 6월 23일 월요일로 예정돼 있다.

 

정치적 압력과 행정 부담 우려 속에 흔들리는 EU의 환경 규제

그린 클레임 지침은 기업들이 ‘친환경적’, ‘지구를 위한’ 등 일반적인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안된 새로운 EU 법안이다.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환경적 주장을 펼칠 경우, 과학적 근거와 독립적 검증을 통해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아울러 규제되지 않은 환경 라벨 사용을 제한하고, 제품 마케팅의 투명성을 높이는 조항도 포함돼 있었다.

유럽인민당(EPP)는 6월 19일, 환경 담당 집행위원 예시카 로스월에게 보낸 공식 서한에서 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협상 결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당 법안을 주도해온 EPP 소속 의원 다누셰 네루도바는 “집행위가 EPP의 우려를 경청한 것을 환영하며, 이것이 더 균형 있고 효과적인 접근의 문을 열기를 바란다”고 밝히며, 해당 제안이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집행위는 이 법안이 특히 소규모 기업에게 과도한 행정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소기업은 원래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지만, 협상 과정에서 약 3천만 개에 달하는 소규모 기업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집행위는 “기업, 특히 소규모 기업의 행정적 부담과 복잡성을 줄이는 법안 합의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럽의회 중도 진영인 리뉴 그룹 소속 산드로 고지 의원은 “EU 의회는 협상 중단을 요청한 바 없다”며, 협상 지속 여부는 정당이 아닌 법안 담당 의원들(rapporteurs)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녹색당 소속이자 과거 환경 담당 집행위원을 지낸 비르기니우스 신케비치우스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EPP가 극우와 손잡고 그린 클레임 지침을 막음으로써 선의로 녹색 전환에 투자한 모든 기업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린 클레임 지침이 철회될 경우, 환경 마케팅에 관한 EU 차원의 규제는 각 회원국의 국내법에 따라 분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회원국 간 규제 일관성을 해치고, 여러 국가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들에게 상이한 규정 준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EU 그린딜의 통합성과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EU 집행위의 법안 철회는 극히 이례적인 조치이다. 일반적으로는 유럽의회와 이사회 간 합의가 불가능하거나, 타협안이 법안의 본래 취지를 훼손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철회가 이뤄진다. 집행위는 조만간 유럽의회와 이사회에 철회 통지를 공식 전달할 예정이며, 양측이 이를 반대하지 않는 한 철회는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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