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국제 유가가 최근 한 달 사이 약 25% 급등했다. 갈등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테헤란 인근 샤흐란 석유 저장소를 공습하며 본격화됐고, 21일에는 미국이 이란의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에 위치한 세 곳의 핵 시설을 타격하며 분쟁에 개입했다.
이란은 하루 약 4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주요 산유국으로,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뿐 아니라 탈탄소화와 에너지 전환 전략 전반에 걸쳐 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가 촉발시킨 화석연료와 탈탄소화 사이의 균형
이란은 OPEC 내 세 번째로 큰 산유국이며, 이스라엘은 8일 연속 이란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이란 정권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자 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원유 선물과 브렌트유는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약 10% 상승했지만, 여전히 배럴당 80달러(약 10만 8,000원) 미만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 분석가들은 거래 재개 이후 유가가 배럴당 3~5달러(약 4,050~6,750원) 추가 상승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 환경은 에너지 시장과 탈탄소화 노력에 서로 상반된 영향을 미친다. 즉, 리스크 회피 전략이다. 전기차 등 대체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가 가속화하는 한편, 소비자들은 연료비 절감을 위해 전기차나 고효율 소형차로 눈을 돌릴 수 있다. 기업들 또한 중공업 부문에서 경유 등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전략을 재검토 중이다. 이와 동시에 고유가는 석유 기업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추에 나서게 만들고, 저유가 시기에는 경제성이 낮았던 프로젝트들이 다시 수익성을 갖춘 사업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은 이번 군사 작전이 이란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정권 교체가 공식 목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스라엘 카츠 국방장관은 “정권을 불안정화하기 위해” 군사 공격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JP모건은 1979년 이후 주요 산유국에서 발생한 8건의 정권 붕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석유 가격은 위기 최고점에서 평균 76% 급등한 뒤에도 위기 이전 대비 약 30% 높은 수준에서 안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우려는 이란이 실존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판단할 경우다. 이란이 페르시아만 내 에너지 인프라나 유조선을 직접 타격하거나,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란은 선박의 자동식별장치(AIS) 방해를 강화하고 있으며, 카타르에너지와 그리스 해운부는 자국 선박에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피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에너지 시장이 겪었던 충격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당시 청정 에너지 지지자들은 재생 에너지 확대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인식은 유럽연합의 RePowerEU 이니셔티브와 같은 청정 에너지 확산 정책을 견인했고, 미국에서도 에너지 안보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의 주요 논거로 작용했다.
그러나 당시 석유 기업들은 고유가 상황에도 생산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고유가가 얼마나 지속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영진들은 높은 수익성을 누리면서도 대규모 신규 투자에 따르는 위험은 피하려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발표한 연례 석유 시장 보고서를 통해, 미국, 캐나다, 브라질, 가이아나, 아르헨티나의 생산량 증가 계획 덕분에 수요가 늘더라도 중기적으로 시장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지정학적 급변 상황은 재생 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낮은 민감도와 장기 고정 가격 구조”를 다시금 부각시키고 있다.
라피단 에너지 그룹의 창립자 밥 맥널리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운항을 방해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약 135,000원)를 돌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은 바레인에 주둔 중인 미 해군 제5함대가 수시간 내지 수일 안에 상황을 통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맥널리는 선박 운항 중단이 최대 수개월간 이어질 수 있다며,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심각한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