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조 원 잠재시장, 외면받는 탄소 제거 크레딧 시장의 역설

거래량은 필요치의 0.2%에 불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 지탱

올해 봄, 런던 왕립연구소에서 세계 유수 기업의 은행가와 투자자들이 모여 탄소 제거 기술의 미래를 논의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연간 2,500억 달러(약 352조 원) 규모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탄소 제거 시장이 아직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나타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기업들은 초기 기술에 대한 신뢰 부족과 기대 미달에 대한 비판 가능성을 우려해 시장 참여를 꺼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자체 감축 노력을 회피하고 외부 제거에 의존했다는 오해까지 더해져, 기업들의 시장 진입은 더욱 위축되고 있습니다.

탄소 시장 평가기관 실베라(Sylvera)의 사이먼 맨리(Simon Manley) 디렉터는 “기업들은 초기 참여자로서 시장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도 칭찬보다 비난을 받을까 우려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시장 참여에 대한 평판 리스크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구매자 풀이 제한적이고 유동성이 부족해 투자 결정은 더욱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후위기 대응 수단, 성장 정체된 현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1.5°C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50년까지 연간 100억 톤 규모의 탄소 제거가 필요하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현재 기술 기반 및 자연 기반 제거량은 이 목표에 턱없이 못 미칩니다.

2024년 블룸버그NEF 보고서에 따르면, 직접공기포집(DAC),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BECCS)과 같은 기술 기반 제거 크레딧의 거래량은 연간 약 50만 톤 이하에 불과합니다. 재조림 등 자연 기반 제거도 연간 약 1,500~2,000만 톤으로, 전체 필요량의 0.2%도 채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구매자 부족은 기술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이로 인해 자금 유입도 정체돼, 많은 탄소 제거 기술이 대규모 배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장은 일부 테크기업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요 구매자입니다.

실제로 CDR.fyi에 따르면, 자연 기반 제거를 제외한 기술 기반 구매계약 총 2,430만 톤 중 무려 76%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트라이프, 구글, 맥킨지 등이 참여한 프론티어 컨소시엄이 약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술별 가격차 최대 12배, 기술…시장 신뢰성 확보 필요

시장의 또 다른 문제는 탄소제거 기술 간 상호 대체성이 낮고 유동성이 매우 낮다는 점입니다. 이는 곧, 다른 상품시장처럼 동일 단위가 동일 가치로 거래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상품 시장에서는 구리 1톤, 원유 1배럴과 같이 동일한 상품 단위로 거래합니다. 그러나 탄소 시장에서는 1톤의 탄소가 다음 1톤과 동등하게 간주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제거 크레딧에는 감축기술 유형 등 다른 가치가 부여됩니다.

예컨대, 산림조성 프로젝트의 크레딧은 톤당 약 80달러(약 11만 원)인 반면, 직접 공기 포집(DAC) 기술의 크레딧은 톤당 1,000달러(약 140만 원)까지 치솟습니다.

프론티어의 한나 베빙턴은 “탄소 제거가 본격 논의된 건 2018년 IPCC 보고서부터이며, 시장 자체가 이제 1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직접 공기 포집이나 향상된 암석 풍화 기술은 수백 년간 저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장기 실증 데이터가 부족해 신뢰를 얻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규제 미비와 보험 부재… 시장 성장의 제약 요인

현재 기업들이 탄소 제거 크레딧 구매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법적 강제력과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지역에 규제시장인 배출권 거래제(ETS)가 도입돼 있지만, 탄소 제거 크레딧 구매를 기업에 직접 요구하지 않아 실효성이 낮습니다.

항공업계의 CORSIA(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 유엔의 파리협정 제6조 메커니즘 등이 있으나, 기업들은 주로 자체 감축과 공급망 배출 감축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탄소 제거 투자는 ‘불확실한 보험’처럼 여겨집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크레딧 기반 프로젝트가 산불이나 기술 결함 등으로 손실을 입더라도 투자금을 보호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오카(Oka), 키타(Kita) 같은 스타트업이 탄소 크레딧 보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 중 하나인 키타(Kita)의 CEO 나탈리아 도르프만은 “보험 없이는 초기 시장을 확장하기 어렵습니다”라며 “신뢰성을 확보해야만 금융이 시장에 흘러들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일부 기업들의 대응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탄소제거 시장과 거버넌스의 구조적 제약이 여전히 큰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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