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테크 산업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협정 탈퇴와 IRA 기후 예산 중단 등 정책 후퇴로, 기후테크 산업이 외부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2025년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후테크 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털(VC) 투자는 총 200억 달러(약 28조 원)를 기록했습니다.
투자 증가와 함께, 시리즈 B 단계 기업의 사전 밸류에이션도 2023년 대비 약 57% 상승했습니다. 2020~2024년 기간동안 기후테크 펀드의 내부수익률(IRR)은 전체 VC보다 평균 9%포인트 높았습니다.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도 생존한 기업들은 자본 효율성과 기술 실현력을 앞세워 기후 산업의 새로운 판을 짜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기반 산업 재편과 맞물려, 현실화된 기후 리스크도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예컨대, 2025년 1월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은 2,500억 달러(약 354조 원)의 피해를 입히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자연재해로 기록되었습니다.
정책 불확실성과 기후 재난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미국의 기후테크는 보조금 의존을 넘어 자생적 생존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정책 후퇴에도 꺼지지 않는 기후테크 생존 본능
2024년 미국 대선 이후, 기후 정책의 방향은 급속히 반전되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기후협약에서 공식 탈퇴했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기후 대응 예산 집행도 전면 중단했습니다.
이 같은 정책 후퇴는 연방 환경기관의 기반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EPA 과학자 해고, NOAA 예산 삭감 등 규제 기능이 약화되면서,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은 정부 지원의 축소로 인해 자금 조달과 사업 확장에 실질적인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현장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습니다. 2025년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후테크 기업의 CFO들은 ‘정부 규제의 불확실성’을 공급망 문제나 금리보다 더 큰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기후테크 산업이 여전히 정책에 대한 민감도를 크게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이 같은 정책 후퇴는 민간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실제 시장의 반응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정부의 공백은 오히려 민간 생태계의 자생력을 자극하며, 새로운 투자 흐름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역설적으로 형성된 투자 에너지는 특정 지역에서 더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텍사스입니다. 공화당 텃밭이자 화석연료 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진 이 지역은, 지난 2년간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1,800억 달러(약 255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며 미국 내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중 72%는 아직 집행되지 않은 ‘약속된 투자’로, 향후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의 본격 추진이 예고됩니다.
이처럼 전통적인 보수 지역에서도 청정에너지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기후테크는 더 이상 정당이나 이념에 좌우되는 산업이 아닙니다. 정치적 색깔을 넘어, 이제는 ‘레드 vs 블루’가 아닌 ‘경제성 vs 비경제성’의 구도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SVB는 이를 두고 “돈은 정당보다 강하다(Money speaks louder than sentiment)”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시드는 활황, 이후 자금은 실종… 양극화된 투자 흐름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환경은 뚜렷한 양극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초기 단계인 시드 및 시리즈 A 투자 활동은 여전히 활발한 반면, 후기 단계에서는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2024년 전체 벤처캐피털(VC) 라운드 중 시드 투자 비중은 57%로, 2021년 대비 6%포인트 증가했습니다.
반면 시리즈 C 이후 라운드에서는 투자자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며, 시장의 온도 차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후기 단계로 갈수록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과 밸류에이션 조정 압력이 커지면서, 성장 가능성이 입증된 일부 기업에만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많은 스타트업들은 정규 시리즈 라운드 대신 ‘연장 라운드(extension round)’를 선택하며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다운라운드를 피하고 기존 밸류에이션을 방어하려는 전략으로, 연장 라운드 비중은 2021년 22%에서 2024년 33%로 급증했습니다.
밸류에이션 방어 전략은 점차 회복 신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급락했던 기업가치는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시리즈 B 단계 기업의 중간 사전 밸류에이션은 3,500만 달러에서 2024년 5,500만 달러 이상으로 57% 상승했습니다. 이는 기술 검증과 매출 기반이 입증된 기업에 ‘대형 투자금’이 다시 유입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다만, 이러한 회복세는 전체 시장에 고르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력이나 매출 실현력이 부족한 기업은 투자시장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으며, 성장 정체나 구조조정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성장성 ▲수익성 ▲자본 효율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다음 라운드로의 생존 자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구조입니다.
전력 수요 16% 폭증… AI와 그리드가 결합 중
미국의 전력 수요는 향후 5년간 약 1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요 원인은 데이터센터, 전기차 충전 인프라, 산업·건물의 전기화 수요 확대로, 특히 AI 확산으로 인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가 전체 수요의 최대 12%를 차지할 수 있다는 예측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요 확대 속에서도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는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입니다.
2025년 3월 7일, 캘리포니아 전력망 운영기관(CAISO)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전체 전력의 85%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했지만, 해가 진 이후 급격한 수요 상승으로 화석연료 발전이 긴급 투입되며 전력 가격과 탄소 배출이 동시에 급등했습니다. 이것은 전력 수요와 공급 간 시간차가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시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테크 솔루션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수요 반응 기술(DR), ▲장주기 에너지 저장장치(LDES), ▲고속 송전망, ▲융합·지열·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같은 차세대 발전원 등에 대한 투자와 기술 개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전력 수요의 성격 자체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채굴, 전기차 충전 등은 전력 사용 시점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그리드 유연성 자산’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전력망 운영의 회복탄력성과 안정성 확보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리드테크 변화의 중심에는 AI가 있습니다. AI는 ▲수요 예측 소프트웨어, ▲에너지 자산 최적화 플랫폼, ▲가상 발전소(VPP), ▲차량-그리드 연계(V2G)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생에너지 확산의 병목을 해소하는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전력 수요의 변화는 전력망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하는 ‘인프라 전환’의 과정으로 성장의 기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기후테크 엑시트 전략이 M&A 중심으로 전환
태양광과 풍력 등 1세대 재생에너지원은 생산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만으로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완전한 탈탄소 전환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의 시선은 ‘지속 가능한 전력 공급’과 ‘탄소 저감 기술’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주요 차세대 기술군으로는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고온 지열(Enhanced Geothermal), ▲소형 모듈 원자로(SMR), ▲핵융합(Fusion)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 기술은 높은 초기 투자비와 긴 사업주기라는 제약이 있으나, 상용화 시 대규모 무탄소 전력 생산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로 평가됩니다. 예컨대 커먼웰스 퓨전(Commonwealth Fusion)은 80억 달러(약 11조 원)의 기업가치를 기록하며, 민간 VC 투자 선호의 대표적 사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반면, 정책 의존도가 높은 기술군은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수소 기반 기술, 지속가능 항공 연료(SAF), 합성연료 등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지원 지속 여부에 따라 성장성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이들 기술을 ‘보조금 의존형’으로 분류하며, 민간 주도 투자가 가능한 ‘시장 기반 기술군’과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같은 기술군별 구도 변화는 엑시트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20~2021년 우회상장(de-SPAC)으로 공개시장에 진입한 다수 기후테크 기업들은 수익성 부진과 낮은 실적으로 주가 급락을 경험했습니다.
2024년 기준, 상장된 기후테크 기업의 연매출 중앙값은 약 8억 달러(약 1조 원), EBITDA 마진은 5%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스타트업들은 IPO 대신 M&A를 보다 현실적인 출구 전략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 M&A 시장의 20%는 사모펀드(PE) 또는 금융 투자자가 주도했으며, 에너지·전력 대기업들은 기후테크를 ‘미래 리스크 헷지 수단’으로 간주하며 적극적인 인수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업결합 규제 완화 기대감과 맞물려, 2025년에는 전략적 피봇 또는 소프트랜딩형 M&A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