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에너지 해방’의 일환으로 가전제품 효율성 규제완화를 예고한 가운데, 시장 흐름과는 배치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31일 확인한 결과, 미국 시장에서는 이미 에너지효율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는 모습이 관측됐습니다.
일례로 작년 11월 기준 2024년 히트펌프 판매량은 가스난방기를 37% 앞섰습니다. 히트펌프는 가스난방기 대비 에너지효율이 3~5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전제품 제조사들도 이미 고효율 제품 생산라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상태입니다. 이번 규제 완화가 실제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가전제품 규제 완화 시도가 이미 효율화 방향으로 재편된 시장 현실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는 모양새입니다.
트럼프 “가전제품 에너지 효율도 ‘규제 해방’”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 직후, 에너지 생산 확대와 에너지 접근성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가전제품 효율성 규제 역시 ‘해방’해야 할 규제 대상으로 지적됐습니다. “다양한 상품과 가전제품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보호하고 제조업·가전제품 산업 내 시장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설명입니다.
가전제품의 에너지·물 사용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그 대상에는 전구·식기세척기·세탁기·가스레인지·변기·샤워기 등이 포함됩니다.
백악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불필요한 규제로 인한 비용 상승을 막고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에너지부 장관 지명자 크리스 라이트 역시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제안을 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에 힘을 실은 바 있습니다.
이는 지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지난 4년간 바이든 행정부는 에너지효율성 강화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해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와 달리 법적 과제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가전제품 효율성 관련법에 따르면, 롤백(Roll-back)이 금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존 기준보다 완화된 기준을 도입하지 못한단 뜻입니다.
고효율 생산설비 대규모 투자 완료, 업계 호응 의문
법적 과제와 별개로 효율성 규제완화 흐름에 업계가 호응할지도 의문입니다. 시장은 이미 고효율 제품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작년, 히트펌프 판매량은 가스난방기를 37% 앞서며 시장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세는 기술 발전, 정부 지원 정책, 소비자 인식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특히 히트펌프의 에너지효율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초기 설치비용이 다소 높더라도 장기적으로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제조사들은 이미 효율화된 생산체계를 구축한 상태에서 규제 완화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제조협회(AHAM)의 질 노티니 대변인은 “제조사들은 이미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으며 효율성 기준 완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조명업계도 이미 발광다이오드(LED)로 전환을 마친 상태여서 규제 완화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규제완화 조치가 도입됐으나 당시 제조사들의 외면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전문가 “선택권 보장 명분, 오히려 비용 부담↑”
한편, 전문가들은 소비자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분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뉴욕타임스(NYT) 산하 소비자전문매체 와이어커터의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에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앤드류 델라스키 가전제품기준인식프로젝트 사무총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효율성 기준을 적용하면 가구당 연간 107달러(약 15만 원)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에너지효율화는 소비자 비용 절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환경단체 역시 에너지 절약과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비영리단체 리와이어링아메리카의 아리 마투시악 CEO는 “효율적인 가전제품을 통해 절약된 에너지는 데이터센터나 인공지능(AI) 발전에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가전제품은 전력 절약의 가장 쉬운 출발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에 소비자 선택권과 에너지효율성이라는 두 가치의 조화가 트럼프 새로운 과제로 대두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