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는) 대중들의 행동 변화를 불러오는 위험을 ‘통제 불가능한 자동차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처럼 구체적이고 두드러진 위험으로 설명한다. 기후변화는 이와 다르다.”
임인재 성균관대 글로벌융복합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10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 정치와 언론의 역할’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익숙하면서도 거시적 문제란 기후변화의 특성으로 인해 기후대응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기후대응에서 구체적 행동과 정책 지지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임 선임연구원은 피력했습니다.
일반 대중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언론이 ‘우리의 문제’로 대중에게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한국 기후대응 인식-행동 격차 극명 “언론보도 영향” 📰
임 선임연구원은 먼저 한국인의 기후대응 인식과 대응이 불일치하는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은 높지만 기후대응 성과는 낮다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올해 8월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2024년 기후변화 관련 인식을 조사한 결과, 지구온난화 원인을 인간의 행동으로 꼽은 비율은 세계 39개국 중 한국이 2번째로 높았습니다.
반면, 비영리단체 기후행동네트워크(CAT)가 올해 11월 공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에서 67개국 중 한국이 63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꼴찌 수준입니다.
임 연구원은 이같은 격차의 원인으로 한국 언론보도의 경향성을 지적합니다. 한국 기후저널리즘이 그간 이상기후 등 극단적 기상현상과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 등 현상 전달에 치중했단 것입니다.
또 한국 언론들이 해외 피해사례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 발간 등 해외 기후변화 소식만 전달하는 것에 중점을 둔 점도 짚었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대중들이 기후변화를 단기적 피해 관점으로 인식하거나 기후변화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위험하다고 생각할 뿐이지 한국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에 따라 행동의 동인이 되는 감정 유발이 어려워지며 기후대응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전담 조직·기자 양성 필요…메시지·공중 다각화 노력도 💪
이어 임 선임연구원은 이같은 한국 기후저널리즘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우선 그는 언론사 차원에서 기후 전담조직과 전문기자 양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기자가 여러 부서를 이동하는 현재의 부서이동식 체제에서는 기후변화 심층보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메시지 측면에서도 기후문제에 적합한 내러티브 개발의 필요성도 강조됐습니다.
기후변화가 복잡한 과학 이슈인 만큼 단순 수치 전달식이 아닌 이야기식의 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용자 측면에서는 공중을 세분화해 메시지를 전달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예컨대 기후변화 인식은 높지만 집단 효능감이 낮아 관여도도 낮은 집단에게 시각적 이미지와 매력적인 정보원을 활용하는 식입니다.
이 경우 각 그룹에 더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기후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임 연구원은 설명했습니다.
현직 언론인 “기후기자 양성만큼 편집국 변화 중요” 🖊️
한편, 이날 패널로 참석한 현직 언론인들은 한국 기후저널리즘의 해결 과제로 보도국 문화를 꼽았습니다.
황덕현 뉴스1 기후환경 전문기자는 “기후기자는 있지만 기후데스크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데스크는 언론사 편집국을 일컫는 관용어입니다.
기자들은 대개 2~3년마다 부서를 이동해 전문성을 쌓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편집국 역시 마찬가지로 순환하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기후환경 분야 전담 보도도 필요하지만, 모든 부서가 기후환경 보도를 중심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신혜정 한국일보 미래기술탐사부 기자 역시 보도국 안에서 정치·경제·사회 의제가 중점이 된다는 부분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최근 플라스틱 국제협약 관련 국제회의 취재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무려 부산에서 열린 (국제)회의임에도 많은 기자가 출장 허락을 전 기간 받지 못해 중간에 복귀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기후보도 위해 정부 ‘기후 거버넌스’ 변화 선행 주문 🌐
정부부처의 기후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기후 문제는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기상청 등 다양한 정부 기관에 걸쳐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출입처 제도에서는 제대로 된 기후저널리즘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취지입니다.
출입처 제도란 기자가 특정 기관을 담당으로 맡아 기사를 쓰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언론계에서도 폐쇄적·일방적 보도의 원인이란 비판과 정부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필요악이란 입장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에 장세만 SBS 기후환경 전문기자는 현재의 보도국 체계를 고려할 때 정부부처의 구조 변화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례로 전기요금 인상 문제를 들었습니다.
현재는 산자부가 전기요금을 담당하고 산자부 출입처 기자가 해당 의제를 담당합니다. 서민부담·수출경제 프레임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우려하는 논조가 주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후대응 측면에서 전력수요 조절과 재생에너지 도입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단 보도가 나오기 어렵단 것이 장 기자의 진단입니다.
한편, 이날 콘퍼런스는 국회기후변화포럼·우리들의미래·기후기자클럽이 공동 주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