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쓰레기가 길거리에 널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이 (플라스틱 폐기물이) 어디선가는 굉장히 잘 처리되고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최근 공개한 ‘2024 한강하구 플라스틱 조사’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18일 그리니엄은 화상 인터뷰로 김 캠페이너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는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차 회의)’를 앞두고 마련됐습니다.
이 회의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협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김 캠페이너는 한강하구의 실태를 보여줌으로써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다’는 것 이상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습니다. 폐기물 관리를 넘어 플라스틱 생산감축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 “204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 75% 이상 감축”
김 캠페이너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최우선 쟁점으로 생산감축을 짚었습니다.
현재 많은 환경단체가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최우선 쟁점으로 생산감축 합의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그린피스는 ‘2040년까지 2019년 대비 플라스틱 생산 75% 감축’이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야심찬 목표를 내건 곳입니다.
그간의 여러 연구 결과를 고려할 때, 이 정도의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린피스의 입장입니다. 비영리단체 유노미아·퍼시픽인바이런먼트 등의 모델링에 따르면, 파리협정 1.5℃ 억제 목표 달성을 위해 205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을 75%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쓰레기 문제, 미세플라스틱 위험 등을 다각도로 고려하면 그보다 이른 204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의 최소 75%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캠페이너의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실현 불가능한 수치라며 난색을 표합니다.
해당 목표가 정말로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 김 캠페이너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75% 감축이 필요한 상황을 인지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목표치는 합의해 나갈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무조건 75% 감축해야 해’가 아니라 서로 정돈을 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캠페이너의 말입니다.
김 캠페이너는 산업계도 생산감축을 요구받고 있단 점도 강조했습니다. 한국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중국발 플라스틱 과잉공급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화두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는 “(업계도) 생산감축을 요구받는 만큼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글로벌 ‘규제 우산’ 아래 환경부 정책 일관성 기대”
강력한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제정될 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김 캠페이너는 가장 큰 변화로 국내 플라스틱 정책의 일관성을 꼽았습니다. “현 정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정책들이 조금은 정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국제협약이란 큰 우산이 있으면 환경부도 국내 정책을 만드는데 강력한 추진력이 생길 수 있겠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입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가 대거 후퇴·철회된 것을 말합니다. 일회용품 규제·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철폐 등이 대표적입니다.
김 캠페이너는 “할까말까 식의 행정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책 급변으로 인한 피해를 소상공인이 입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작년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철회 직후 라벨지 생산 중소기업이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정책 수립 대신 캠페인에 나서고 있는 점도 꼬집었습니다. 규제 대신 ‘넛지(자유주의적 개입)’형 감축수단을 적극 활용한다는 환경부의 방침을 비판한 것입니다.
김 캠페이너는 비공식 간담회에서 정부 측에 “캠페인은 잘하는 우리가 하겠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기업 자발적 선언, 2025년 목표 달성 요원 드러나”
그는 이어 플라스틱 관련 기업들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많은 기업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 선언에 나섰으나, 실제로 이행이 제대로 되는지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란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김 캠페이너는 이니셔티브 자체적으로도 목표 달성이 어렵단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순환경제 싱크탱크 엘렌맥아더재단이 운영하는 ‘글로벌 커미트먼트’ 이니셔티브가 대표적입니다.
이 이니셔티브는 2025년까지 2018년 대비 플라스틱 생산량 20% 감축을 목표로 합니다. 2018년 시작해 코카콜라·유니레버 등 기업과 정부를 모두 합쳐 1,000여 곳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각)에는 재단은 ‘2024년 연례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재단은 이니셔티브 참가자들이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서 다른 기업·국가에 비해 더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기업의 경우 2018년 대비 2023년 1차 플라스틱 사용량을 3% 줄였습니다. 같은기간 플라스틱 포장재 시장은 8% 성장한 것과 비교됩니다.
이런 성과에도 2025년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재단은 참여자들의 2025년 플라스틱 생산량이 2018년 대비 18% 감소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김 캠페이너는 “기업이 선언 당시에는 홍보를 많이 하지만 그 뒤로는 사람들이 다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자발적 선언의 효과성에 실망이 국제협약의 필요성을 높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 “산업계·노동자 피해 방지 위해 정의로운 전환 필요”
“협약이 체결될 경우 (업계나 지역에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전환이 필요하지만 충분하게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김 캠페이너는 강력한 협약이 체결될 경우 산업계의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누구도 피해받는 이가 남아있지 않도록 하자는 개념”이라는 것을 짚은 겁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앞서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산업·노동자 등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을 뜻합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 역시 전환이 불가피한 만큼, 정의로운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는지입니다.
김 캠페이너는 그동안 협약에 대한 정부의 입장문·의견문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주요 의제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각 부문별로 비공식 간담회를 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어떤 준비도 드러나지 않는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 “5차 회의서 안 끝날 수도…끝까지 포기 말아야”
한편, 김 캠페이너는 5차 회의의 전망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5차 회의가 마지막 회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사실 지금은 이 회의가 열려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우려는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한몫합니다. 이미 미국 백악관은 강력한 생산감축 지지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미국은 플라스틱 생산 1위 국가이자 주요국으로, 협약 성안과 이행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 캠페이너는 그럼에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미국의 국가적 힘이 강력하긴 하지만 그 외 (강력한 협약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국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플라스틱 오염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어쩌면 우리 삶에서 유일한 기회를 놓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 대표단이 현재의 정치적 변화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