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한해에만 6,200만 톤의 전자폐기물이 발생했습니다.
전자폐기물은 금속과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가 혼합돼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그중 재활용된 비율은 25% 미만입니다.
이에 영국의 한 스타트업이 최근 물에 녹는 전자제품 시제품을 공개했습니다.
2019년 친환경 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설립된 ‘펜타폼(Pentaform)’입니다.
펜타폼은 소형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 재활용 어려운 인쇄회로기판(PCB)에 주목했습니다. 중금속이 함유돼 환경영향이 클뿐더러, 재활용 과정에서 금·은·구리 등 유가금속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회로기판에 고정된 소형 부품이 쉽게 분리되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에 펜타폼은 수용성 회로기판인 ‘아쿠아페이드(Aquafade)’를 개발했습니다.
사측은 물에 녹는 캡슐세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수용성 캡슐세제, ‘물에 녹는 회로기판’으로 💽
아쿠아페이드의 핵심은 수용성 소재인 ‘폴리비닐알코올(PVOH)’입니다.
이 소재는 주로 식기세척기나 세탁기용 액상세제 캡슐 포장재로 사용됩니다. 기기에 넣으면 세제와 함께 물에 녹는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펜타폼은 이 소재를 회로기판에 접목했습니다. 전자제품에 사용될 때는 일반적인 회로기판으로 기능합니다. 사용 후 물에 담그면 회로기판이 물에 녹아 부품들이 손쉽게 분해됩니다. 물에 완전히 담그면 6~8시간 만에 녹습니다.
펜타폼은 여기에 습기를 막는 코팅을 더했습니다.
원하는 지속 시간만큼 코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 핵심 기술입니다. 덕분에 복잡한 공정 없이도 재활용 용이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아쿠아페이드는 그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지난 4월 ’테라 카르타 디자인 랩 2024’ 최종후보로 선정됐습니다. 2022년 시작된 기후문제 해결 디자인 대회입니다. 당시 왕세자였던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애플 출신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가 개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英 초소형 PC 스타트업, 수용성 PCB 개발 나선 까닭? 🤔
펜타폼이 처음부터 수용성 전자제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설립 당시 펜타폼의 주력 제품은 재생플라스틱 기반 초소형 컴퓨터 ‘아바쿠스(Abacus)’였습니다. 키보드 크기의 컴퓨터에 메인보드·키보드·트랙패드 등 화면을 제외한 모든 구성 요소가 내장됩니다.
저전력에 재생플라스틱을 사용해 지속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저소득 가정·국가에 저렴하고 지속가능한 컴퓨터 접근성을 높이고 싶었다는 것이 사뮤엘 왕사푸트라 펜타폼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설명입니다.
그 과정에서 전자폐기물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고 왕사푸트라 CEO는 말했습니다. 특히, 그는생분해플라스틱에 많은 실망을 느꼈다고 회상했습니다.
상당수 생분해플라스틱이 생분해 시설 대신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생분해플라스틱은 적절한 온도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생분해되지 않습니다. 현재 생분해플라스틱만 별도로 분리·수거하는 시스템이나 생분해 시설을 갖춘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왕사푸트라 CEO가 수용성 소재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수용성 소재는 별도의 조건이나 시설 없이도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전자폐기물을 별도로 분리·수거할 필요도 없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할 탄소배출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수용성 소재는) 전자폐기물을 해결하는 최고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물 퇴비화’ 아이디어 환경영향은? “안전성 지적도”💧
왕사푸트라 CEO는 2023년부터 수용성 소재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이어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물 퇴비화 시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물 퇴비화 시설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전자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첫째, 매립되는 전자폐기물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과 유해물질 유출 모두 줄어듭니다.
둘째, 전자폐기물로 폐기될 소재를 손쉽게 회수함으로써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단, 폴리비닐알코올 소재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합니다.
폴리비닐알코올이 물에 녹은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조각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지난 2월에는 미국 뉴욕시에서 폴리비닐알코올 캡슐세제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사측은 용해된 폴리비닐알코올이 박테리아를 통해 결국에는 자연적으로 생분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생분해 과정을 보완하기 위해 생명공학 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가장 지속가능한 PC, ‘아쿠아페이드 아바쿠사’ 목표 💻
펜타폼의 다음 목표는 아쿠아페이드의 성능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엔리코 만프레디 공동설립자는 “습기에 더 강하고 단단한 코팅을 개발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자사 초소형 컴퓨터 아바쿠스 소재를 재생플라스틱에서 아쿠아페이드로 바꿔 지속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계획입니다.
더불어 사측은 향후 많은 가전제품에 아쿠아페이드 소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기업들이 아쿠아페이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싱 사업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왕사푸트라 CEO는 전자폐기물의 1%만 아쿠아페이드로 대체할 수 있다면 연간 14만 톤의 유해물질 배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