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 유럽연합(EU)의 ‘삼림벌채규정(EUDR)’ 발효를 앞둔 가운데 관련 산업계와 주요국의 반발이 거센 상황입니다. 시행 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커졌습니다.
EUDR은 EU가 정한 실사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7개 제품이 유럽 역내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①코코아 ②커피 ③팜유 ④고무 ⑤대두 ⑥목재 ⑦소고기가 대상입니다.
삼림파괴를 방지함으로써 생물다양성 보존과 온실가스 흡수원 증가라는 2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이들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삼림파괴에 연루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실사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또 생산국·생산지의 지리적 위치, 인권·주민권리 보호 여부 등을 담은 실사 보고서를 관련 당국에 제출해야 합니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EU에서의 판매가 불가능할뿐더러, 규정 위반 시 연매출의 최소 4% 수준인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EUDR은 작년 6월 EU 이사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해 발효를 앞뒀습니다.
그런데 유럽 코코아 수입업자들로 구성된 유럽코코아협회는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앞으로 EUDR 시행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지난 20일 알려졌습니다.
폴 데이비스 협회 회장은 서한에서 “EUDR은 규정 준수와 관련된 핵심사항이 명확하지 않다”며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쏟기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에 협회는 해당 규제의 시행일자를 최소 6개월 이상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인니·미국, EUDR 시행 연기 요구…“중국은 아예 불참” 🗺️
다른 국가들 역시도 EUDR 시행 연기를 요청한 상황입니다.
팜유 최대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국가는 소규모 농가가 EUDR 속 요건을 준수하기에는 너무 엄격하다고 주장합니다. 소규모 영세 업체들은 내년 6월 30일부터 적용 대상입니다.
이에 두 국가는 EUDR을 ‘매우 해로운 차별적 조치’로 정의하고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소고기·커피 대량 수출국인 브라질 역시 비슷한 입장입니다.
앞서 브라질은 EU 집행위에 EUDR 시행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각) 브라질 외무부는 서한을 통해 “브라질 전체 수출 가운데 약 30%가 EU로 향하고 있다”며 “양국 무역관계에 충격을 주는 것을 피하고자 EU가 올해 말까지 EUDR을 시행하지 말 것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역시도 올해 5월 EUDR 시행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 농무부·상무부 등은 EU 집행위에 서한을 통해 “명확한 이행 지침이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7월 중국은 아예 보안을 문제로 EUDR 이행을 거부한 상황입니다. 법안에 따르면, 목재 등 7개 제품을 EU로 판매하려는 업체는 생산 지역 내 정보를 EU에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특별 승인을 받은 역내 기관에만 지리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해 두었습니다.
호주·뉴질랜드 역시 EUDR 시행을 두고 우려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체코·독일 등 EU 내에서도 EUDR 연기 목소리에 힘실려 🌲
EU 내부에서조차 EUDR 시행을 두고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올해 8월 체코 농업부는 EUDR의 기술적 문제와 과도한 행정부담을 근거로 집행위에 법안 시행 연기를 요청했습니다.
마렉 비보르니 체코 농업부 장관은 집행위가 규정 시행에 필요한 분류체계 시스템을 완전히 구축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데이터 관리에 필요한 정보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가운데 규정 시행 시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독일 역시 여기에 가세했습니다.
이달초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한 언론 행사에 참석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 EUDR 시행 연기를 촉구했습니다. 관련 지침이 아직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시스템 구축 역시 미흡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EU 회원국 27개국 중 20개국의 농업부 역시 비슷한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스트리아·핀란드·이탈리아·폴란드·슬로바키아·스웨덴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EU 집행위원장, 시행 연기 또는 임시 해결책 예고 ⚖️
집행위는 당초 올해 3월 기업들을 돕기 위해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수출기업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국가별 위험도 평가 시스템’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집행위 역시 고심이 깊어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도우파 성향이자 유럽의회 다수당인 유럽국민당(EPP)의 농업정책 담당 대변인은 지난 20일 유럽 전문매체 유랙티브에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당 관계자들을 만나 며칠 내에 시행을 연기하거나 다른 임시 해결책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규정 개정 추진 가능성 역시 제기됐습니다. 단, EUDR이 집행위가 추진하는 ‘유럽 그린딜’의 핵심 법안 중 하나인만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럽의회 제2당인 사회민주당(S&D)은 법안을 예정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EUDR 시행은 일부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8월 금융서비스 기업인 제프리파이낸셜그룹(이하 JEF그룹)은 EUDR에 영향을 받을 기업 목록에 한국타이어와 넥센타이어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타이어의 주재료인 고무 역시 EUDR의 규제 품목이기 때문입니다.
루크 서섬스 JEF그룹 분석가는 “EUDR이 글로벌 공급망과 관련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며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당시 그는 “시행을 연기하거나 수정해달라는 생산국과 산업 이해관계자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음에도 법안이 계획대로 발효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