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오는 2029년까지 EU 정책을 책임질 차기 집행위원회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집행위원은 행정부로 치면 국무위원에 해당합니다. 정책·법안을 제정할뿐더러, EU 재정관리나 긴급조치조항 운영권 역시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집행위원은 지역·성별·담당 업무를 고려해 EU 27개 회원국에 1자리씩 할당됩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행위원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수석 부집행위원장 6명과 집행위원 20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수석 부집행위원장 6자리는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에스토니아·핀란드·루마니아에 할당됐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차기 집행위 구성 시 성비 균형을 약속했으나 이는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그는 최고위직 6명 중 4명을 여성에게 맡기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EU 2인자에 해당하는 녹색전환·경쟁 분야 총괄 수석 부집행위원장에는 테레사 리베라 스페인 부총리 겸 친환경전환부 장관이 내정됐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그를 가리켜 “유럽이 그린딜에 명시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도록 하는 작업을 이끌 것”이라며 “경제와 산업계의 탈탄소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폴리티코, 녹색전환·경쟁 분야 총괄 사실상 EU 2인자 🗳️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리베라 지명자가 임명된 녹색전환·경쟁 분야 총괄 수석 부집행위원장이란 직책이 EU 집행위에서 집행위원장 다음으로 강력한 권한을 지닌 점을 언급했습니다.
EU 역내 산업 보호, 탄소중립 달성, 경제 혁신 등 3가지 역할을 요구받는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집행위 내 고위 관계자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EU의 2030년 기후목표를 염두에 두고 리베라를 지명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U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단, 2030 기후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EU의 자체적인 평가입니다. 2030년까지 목표 대비 51% 감축에 그칠 것으로 집행위는 전망한 바 있습니다.
관계자는 “리베라는 녹색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달성하려는 EU의 계획에 있어 충분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행정가로서도 명성이 자자하다”고 덧붙였습니다.
EU 녹색전환 주도할 리베라 지명자 “기후외교 베테랑” 🤔
리베라 지명자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기후 전문가입니다.
그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기후총회에서 스페인 협상을 대표했던 외교관입니다. 파리협정 협상에도 참여했으며, 2020년 친환경전환부 장관으로서는 스페인 기후법 제정 등 여러 굵직한 기후정책을 발의했습니다.
석탄과 원자력의 단계적 폐지를 위한 협상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업적 덕에 리베라 지명자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로부터 전적으로 신뢰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의 협상력은 특히 연례 기후총회에서 빛을 발휘했습니다. 폴리티코는 리베라 지명자가 “기후총회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유럽 싱크탱크 ‘스트레티직 퍼스펙티브스’의 린다 컬쳐 이사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리베라 지명자는 스페인 석탄 노동자와 석유 생산국으로부터 각각 정의로운 전환과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에 관한 거래를 주도할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리베라 지명자 “원자력 에너지 확대 반대하지 않을 것” ⚡
모두가 이번 인선에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가 대표적입니다. 원자력에 대한 리베라 지명자의 견해 때문입니다. 리베라 지명자는 공개적으로 원자력에 반대한 적은 없습니다. 단, EU의 녹색분류체계(EU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한 결정이 거대한 실수였다고 논평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리베라 지명자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각 회원국의 전력 시스템과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원자력 에너지 확대에 있어 반대하지 않을 것이란 뜻도 일부 내비쳤습니다.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인민당(EPP)은 리베라 지명자가 EU의 핵심 경제 정책을 책임 지기에는 너무 좌익적이고 반(反) 산업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피터 리제 EPP 수석 기후 책임자는 “리베라 지명자는 너무 도전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PP는 차기 집행위에 다른 인물들이 이같은 우려를 일부 해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일례로 EU 기후담당 집행위원으로는 붑커 훅스트라(네덜란드)가 연임합니다. 한 외교관은 “훅스트라 집행위원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과 친하다”며 “리베라 지명자의 녹색의제가 너무 과감하게 추진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환경·수자원·순환경제 담당 집행위원에 EPP 소속의 제시카 로스웰(스웨덴)이 임명된 점도 고려된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그간 집행위의 환경정책은 녹색당 소속의 버지니주스 싱케비치우스(리투아니아)가 담당해 왔습니다.
리베라 지명자를 제외하면 차기 EU 집행위의 기후·환경정책을 담당할 인원 상당수가 중도우파 성향에 가깝습니다.
‘청정산업협정’ 설계·2040 기후목표 법제화 추진 담당 🏛️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리베라 지명자에게 EU 탈탄소화와 관련된 정책 상당 부분을 맡긴다는 구상입니다.
차기 집행위 정책의 핵심인 ‘청정산업협정’ 설계도 포함됩니다. 산업계 온실가스 배출량 억제 노력을 지원하는 동시에 EU 역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철강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의 탈탄소화 가속화를 위해 행정절차 간소화와 투자 확대에 초점을 맞춘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40년까지 1990년 대비 90% 감축을 목표로 하는 ‘2040 기후목표’ 법안 제정과 역내 기후테크 산업 경쟁력 확보와 관련된 정책 역시 리베라 지명자가 설계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직책 지명 후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EU 역내 녹색산업을 중심으로 인센티브 제공 같은 투자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기후목표는 EU가 달성해야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며 “인센티브 제공과 투자 조성 등 자본에 달려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차기 집행위 인선을 마친 만큼 유럽의회의 청문회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청문회는 오는 10월 중 순차적으로 시작할 전망입니다.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인선을 거부당할 경우 회원국들은 다른 후보를 내세우도록 압박할 수 있습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 대선 등을 고려해 자신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는 11월 1일 새 집행부 출범을 목표로 합니다.
단, 회원국 중 슬로베니아가 국내 정치권 다툼 여파로 후보를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유럽의회에서 일부 후보자 교체를 요구할 경우 12월로 연기될 가능성도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