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이 칠로 만든 운동화가 2024년 프랑스 파리 하계올림픽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파리 올림픽은 오는 26일(현지시각)부터 8월 11일까지 개최됩니다. 총 32개 종목에 206개국 1만 5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합니다.
이 가운데 스위스 스포츠웨어 브랜드 온(On)은 헬렌 오비리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서 자사의 새로운 신발을 신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케냐 마라톤 종목 국가대표인 오비리 선수가 신을 신발은 ‘클라우드붐 스트라이크 LS(이하 클라우드붐 운동화)’입니다.
이 신발은 실을 직조하는 대신 스프레이로 분사해 제작됐습니다. 덕분에 성능뿐만 아니라, 경제성과 순환성 모두 향상시켰다고 사측은 강조합니다.
이에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세상에서) 가장 미친 운동화”라며 “운동화 업계의 테슬라가 나타났다”고 평가했습니다.
끈도 없는 ‘이상한’ 운동화, 보스턴 마라톤 우승 도왔다? 🥇
클라우드붐 운동화가 처음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은 건 지난 4월 열린 ‘보스턴 마라톤’입니다. 매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리는 권위 있는 대회입니다.
올해 대회에서 오비리 선수는 이 운동화를 신고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2023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로, 올해 대회에서도 유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전년도와 차이점은 최초로 스프레이로 만든 운동화를 신었다는 것입니다.
“이 신발을 신고는 달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오비리 선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신발을 받았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클라우드붐 운동화는 보통의 운동화와 달리 끈도 없고 뒤축도 없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조차 “장난 같다”며 “마라톤에는 못 신을 거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러나 운동화를 실제로 신어보고 나서, 그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에서 그는 클라우드붐 운동화를 신었고 결국 우승했습니다.
그는 오는 26일 개최될 파리 올림픽에서도 같은 운동화를 신을 계획입니다.
닐스 알트로게 온 기술개발 책임자는 성능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설계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가장 지속가능한 갑피 제작 기술은 운동선수를 위한 가장 높은 성능의 기술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운동화 몸체, ‘스프레이’로 단 3분 만에 제작 🤖
2010년 설립된 온은 이전부터 지속가능한 운동화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2022년에는 단일 소재로 만들어 신발 대 신발 재활용이 가능한 운동화를 출시한 바 있습니다. 순환성을 높이기 위해 해당 운동화는 구독 서비스로만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공개된 클라우드붐 운동화는 어떤 특징을 지녔을까요?
클라우드붐 운동화의 차별점은 갑피를 만드는 방식에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운동화의 몸체인 갑피는 30~40가지의 요소로 구성됩니다. 가죽, 직물,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를 봉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와 달리 클라우드붐 운동화는 온이 개발한 ’라이트 스프레이’ 기술로 제작됐습니다.
로봇팔이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녹인 실을 나선형 모양으로 분사해 운동화의 몸체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총 1.5㎞ 길이의 실이 복잡한 패턴으로 분사돼 마치 직조한 듯한 느낌을 냅니다.
모든 공정은 사전설계에 따라 자동화로 이뤄집니다. 일종의 3D 프린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단 3분만에 몸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밑창과 연결할 때도 별도의 접착제 없이 열을 사용해 직접 부착됩니다. 7개의 구성요소만으로 운동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소재 종류와 제작기간, 비용 모두 줄일 수 있습니다.
일반 운동화의 구성요소가 최대 200개에 이르는 것과 대비됩니다.
가장 지속가능한 운동화? “제조업의 근본적 혁신” 👟
단일 소재로 자동화된 공정은 환경적인 이점도 제공합니다. 사측은 클라우드붐 운동화가 자사의 다른 운동화보다 탄소배출량이 75% 더 적다고 말합니다.
우선 자동화로 빠른 생산이 가능해 맞춤형 사모델을 접목할 수 있습니다.
생산과정에서 스크랩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열가소성이 높아 사용 후에는 가열해 새 제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생산 공정이 대폭 줄어든 만큼, 수요지 근처에서 생산이 가능합니다. 덕분에 운송으로 인한 배출량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이 기술이 단순히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운동화 산업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디자인 관행을 넘어 운동화 비즈니스 모델 전체를 뒤집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카스파 코페티 온 이사회 공동의장은 “라이트 스프레이 기술을 사용하면 베트남이나 한국에서와 같은 가격으로 스위스와 미국 뉴욕 도심에서도 신발을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곧 ‘제조업의 도약’이라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글루건에서 로봇으로, 재정적·철학적 도박 결과 🎲
실을 스프레이처럼 칠해서 운동화를 만든다는 개념은 2018년 한 디자인과 학생에게서 시작됐습니다.
현재 온의 혁신디자인 수석 책임자를 맡고 있는 요하네스 펠처트입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 밀라노디자인박람회에서 일종의 플라스틱 3D 펜으로 신발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했습니다.
의자에 앉은 고객의 발에 대고 직접 한층씩 쌓아 올리는 방식입니다. 초기 장비는 실제 글루건에 필라멘트를 케이블타이로 연결해 제작했습니다.
당시 시연에 참석했던 일마린 하이츠 온 혁신디자인 수석 이사는 “혁명적이라고 느꼈다”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바로 펠처트 책임자를 팀에 합류시켰습니다.
아이디어를 실제 산업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신발은 일반적인 3D 프린팅 작업과 다릅니다. 부위별로 발의 생체역학에 맞게 설계돼야 했습니다. 지지력이 필요한 부분은 빽빽하게, 통기성이 필요한 부분은 성기게 구성되는 식입니다.
열역학과 공기 흐름, 탄력성 등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단 뜻입니다. 또 그러한 지식이 로봇의 노즐이 움직이는 방식에 반영되도록 섬세하게 프로그래밍해야 했습니다.
사측이 이 모든 과정이 “엄청난 재정적, 철학적 도박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파리 올림픽서 첫 대중 공개…과제는 기술개발 🇫🇷
온은 이번 올림픽 개막식 전날인 25일 파리 시내에서 라이트 스프레이 기술을 시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측은 오비리 선수 이외에 또 다른 선수가 경기 중에 클라우드붐 운동화를 신을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개발 과정에서 시착에 참여했던 선수들이 “이번 여름에도 자사의 운동화를 선택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입니다.
1,500m 달리기 종목의 호주 국가대표 올리버 호어 선수를 비롯해 여러 파리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클라우드붐 운동화 시착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식 공개에 이어 사측은 오는 11월 열리는 뉴욕 마라톤에서 한정 판매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사측은 일반 소비자 대상 제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추가로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4세대 기술로는 자동화 로봇 한 대가 1년에 1,000켤레만 생산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코페티 공동의장은 향후 6세대나 7세대 로봇으로 발전한다면 진정한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