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극지방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며 지구 자전 속도가 바뀌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현 온실가스 배출량 추세라면 금세기말 하루 길이가 지금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캐나다 앨버타대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이러한 내용의 연구 결과를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했습니다. 해당 연구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습니다.
24시간(8만 6,400초·1,440분). 하루는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이 길이는 달의 인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구와 달의 중력에 의해 바닷물 높이가 달라지는 조수가 일어나면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영향은 매우 미비합니다.
지난 수십억 년 동안 하루의 길이는 달의 중력에 의해 세기당 2.4ms(밀리초·1,000분의 1초) 정도 길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온실가스 배출 계속될 경우 지구 자전 속도 더 느려 🌏
문제는 기후변화로 극지방의 얼음이 급속하게 녹아그 물이 저위도로 이동하고 있단 것.
연구진은 최근 20년간 그린란드와 남극 등 극지방의 얼음(빙상·빙하가)이 녹으며 지구의 부피 분포가 전례 없는 속도로 변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녹아버린 물이 적도 지방으로 몰리며 지구 부피가 크게 변화하여 자전 속도까지 늦추고 있단 것이 연구진의 말입니다.
빙판 위를 회전하는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팔을 양옆으로 펼칠 때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해당 연구는 새로 개발된 인공지능(AI) 모델링을 통해 수행됐습니다.
이로 인해 지구 자전 속도가 20세기(1900~2000년) 들어 하루 0.3~1.0ms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0년 이후 들어선 자전 속도가 100년당 1.33ms만큼 더 느려졌습니다.
연구진은 현 온실가스 배출량 추세가 계속 유지될 시 2100년까지 100년당 자전 속도가 2.62ms만큼 느려질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달의 중력이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큰 것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억제돼도 향후 수십년 간 100년당 1ms만큼 자전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찰나의 순간? GPS·금융업·항공우주산업 타격 불가피” 🚀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면 하루의 길이도 미미하게 길어집니다. 물론 하루 길이의 변화는 1,000분의 1초 단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찰나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 연구진의 지적입니다. 이 변화가 기술에도 곧장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자전 속도가 변함에 따라 위성항법장치(GPS)의 정확성이 흔들립니다. 또 정확한 시간에 근거해 체결되는 금융거래에도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취리히연방공과대 토목환경공학과의 베네딕트 소야 교수는 항공우주 산업 역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공위성이나 탐사선을 쏘아 올릴 때 정확한 위치 계산이 어려워진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지구 자전 속도 변화로) 1㎝의 오차가 (발사 후) 추후에는 수백m로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정확한 궤도 안착이나 탐사가 어려워진단 뜻입니다.
취리히공대 교수 “기후변화, 지구 근본 기능까지 영향” 🤔
기후변화가 지구 자전 속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UCSD) 연구진은 지난 3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이번과 비슷한 연구 결과를 게재했습니다.
던컨 애그뉴 UCSD 교수는 “극지방에 있던 (두꺼운) 얼음이 녹아서 생성된 물이 적도로 이동하며 지구가 더 타원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적도 부근이 무거워짐에 따라, 추후에는 시간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지구의 하루 길이 변화에 따라 ‘윤초’ 적용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윤초는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협정시(UTC)와 지구 자전 그리고 공전에 따른 태양시 사이의 오차를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협정시에서 더하거나 빼는 1초를 말합니다. 1972년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총 27차례 1초를 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초가 적용된 시점은 2016년입니다.
2016년 이후 윤초가 추가되지 않은 이유는 지구 자전 속도가 내부 핵의 변화 탓에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과학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음의 윤초’, 즉 1초를 뺄지 말지를 두고 논의를 이어왔습니다.
당초 내부핵 변화로 자전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2026년에는 1초를 빼야할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란 변수가 등장한 것. 이로 인해 2029년에 다시 윤초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소야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온도 상승 등 지역적인 현상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전이라는 지구의 근본적인 기능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