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극지방 빙하가 빠르게 소실되는 가운데 지구의 자전 속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단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극지방에 있던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적도로 이동하면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진단 것입니다.
그 결과, 2029년에는 전 세계 시간이 ‘1초’ 빨라지면서 인류의 시간 측정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뜻입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UCSD) 연구진은 이같은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했습니다.
정확한 시간 예측 위한 ‘윤초’…“1초로 인해 발생한 ICT 업계 사건사고는?” 🤔
UCSD 연구진이 내놓은 연구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윤초(閏秒)’를 이해해야 합니다.
인류는 지구의 자전주기를 24시간으로 보는 ‘태양시’를 사용합니다. 다만, 지구의 자전 속도는 조석마찰과 달과 태양의 움직임 등 복합적인 자연 현상으로 인해 조금씩 변화합니다.
더 정확한 시간 예측을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윤초’입니다.
윤초는 세계협정시(UTC)로 쓰이는 ‘원자시’와 지구의 자전 속도를 기준으로 한 ‘천문시’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더하거나 빼는 시간입니다.
‘1초’는 찰나의 시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초가 어긋나면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합니다. 윤초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할 시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2012년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윤초 적용 문제로 30분 이상 운영이 중단됐습니다.
같은해 호주 콴타스항공 또한 발권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먹통도 발권 작업을 모두 수작업으로 처리했고, 그 결과 항공기 운항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2017년 미국 네트워크 기업 클라우드플레어도 윤초 적용 과정에서 서비스가 먹통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메타(구 페이스북)·아마존·구글 등 빅테크 기업 상당수가 윤초 폐지를 줄곧 주장하고 있습니다.
“극지방서 녹은 담수 적도로 대거 유입돼 지구의 자전 속도 변화” 🌎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극지방 빙하 소실이 지구의 자전 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단 것입니다.
지구물리학자이자 연구를 이끈 던컨 애그뉴 UCSD 교수는 네이처에 “기후위기로 극지방에 있던 수㎞ 두께의 얼음이 녹아 생긴 물이 적도로 이동하면서 지구가 더 구체으로 바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지구는 완벽한 구체가 아닙니다. 적도 지름이 극 지름보다 좀 더 긴 타원형 형태입니다.
기후변화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고 있단 것이 애그뉴 교수의 설명입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위도에 따라 점점 느려집니다. 저위도인 적도 부근은 무거워질수록 느려집니다. 반면, 고위도의 극지방은 무거워질수록 자전 속도가 빨라집니다.
애그뉴 교수는 결국 2026~2029년 사이에 이같은 변수를 반영한 공식 시간 조정이 이뤄져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윤초는 국제도량형국(BIPM)에 의해 1972년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총 27차례 1초를 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초가 적용된 시점은 2016년입니다.
2016년 이후부터는 윤초를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느려지던 자전 속도가 지구 내부 핵의 변화 탓에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과학계들은 세계시에 사상 처음으로 ‘음의 윤초’, 즉 1초를 뺄지를 놓고 논의를 이어왔습니다.
이에 대해 애그뉴 교슈는 기후위기로 인해 시간을 줄여야 할 정확한 시점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빠르면 2026년 말에는 시간에서 1초를 삭제했어야 했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2029년까지도 1초를 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의적 시각 공존…“지구 중대한 변화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 ⌛
다만, 일부 과학계에서는 이번 연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습니다.
유다 레빈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 소속 물리학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지구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건 본질적으로 까다롭다”며 “연구 결과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를 결정짓는 변수가 많단 것이 레빈 박사의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도 큽니다. 영국 리버풀대 기후학자인 크리스 휴즈 박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번 연구 결과는 지구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척도”라고 밝혔습니다.
연구 저자인 애그뉴 박사는 “지구의 자전 속도가 영향받았단 것을 관측할 수 있을 만큼 극지방 얼음이 많이 녹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윤초 적용이 3년가량 지연될 것이란 연구 예측을 희소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윤초 적용 이후 사상 처음으로 1초를 뺄 시 어떤 문제를 낳을지 몰라 우려했으나, 그 시점이 뒤로 늦춰졌기 때문입니다.
윤초 폐지 시기를 더 앞당기자는 목소리도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서 2022년 국제도량형총회(CGPM)은 윤초를 2035년까지 폐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또한 윤초 폐지 결의안을 지난해 채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