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을 하나 넘길 때마다 수없이 논의와 토론을 해야 한다. 그게 현재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다. 이론적 괴리와 현실적 한계가 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방향과 시장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이번 행사는 기후변화센터가 주관했습니다.
이날 패널토론 좌장을 맡은 조 교수는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가 직면한 여러 어려움을 짚었습니다.
조 교수는 “(탄소배출권 가격이) 낮으면 낮다고 뭐라 한다”며 “오르면 올라도 뭐라고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세미나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운영될 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이하 4차 기본계획)과 방향성을 주제로 열렸습니다.
이날 세미나에는 4차 기본계획 수립 과정서 주요 쟁점 사항이 소개됐습니다. 온오프라인으로 5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 올해 수립 예정”…쟁점은? 🤔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배출권거래법)’에 따라 2015년 1월부터 거래제를 운영 중입니다. 크게 ▲전환(발전) ▲수송 ▲산업 ▲폐기물 ▲건물 ▲공공·기타 부문에 속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이 거래제 대상으로 선정해 관리 중입니다.
거래제는 5년 주기로 관리합니다. 현재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이 진행 중입니다.
환경부에 의하면, 2022년 기준 69개 업종 713개 온실가스 다배출사업장이 거래제 적용 대상이 됐습니다. 거래제가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3%를 다루는 효과적인 감축수단이 됐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조 교수의 말처럼 배출권거래제 속 세부내용을 두고 의견차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거래제 대상 기업 확대 적용 여부는 물론 구체적인 참여 방식을 두고 이해관계자들끼리 시각이 다릅니다.
4차 기본계획 초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4차 기본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입니다.
4차 기본계획이 중요한 이유는 탄소시장 활성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4차 기본계획 기간(2026~2030년)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 달성을 위한 기간과 겹칩니다.
2030 NDC 달성에 거래제가 기여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몰립니다. 정부 역시 이를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날 에너지경제연구원 기후변화정책연구실의 손인성 실장은 4차 기본계획 내 주요 논의 현황을 주제로 세미나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손 실장은 발제에서 거래제 속 ①배출권 할당방식 개선 ②간접배출 관리방안 개선 ③배출권 이월제한 완화 ④상쇄배출권 제도 ⑤배출허용총량 강화 등 주요 논의 현황을 소개했습니다.
1️⃣ 배출권 할당방식 개선: 유상할당 단계적 확대, 주의사항은?
한국은 배출권 할당을 크게 유상할당과 무상할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상할당은 할당된 배출권을 정부가 일정한 경매 방식을 통해 일부 또는 전부를 판매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반대로 무상할당은 정부가 거래제 대상업체에게 무료로 배출권을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기후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을 높여야 한단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부 역시 온실가스 감축 유인 강화를 고려해 유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3차 계획기간 속 유상할당 비중은 10%에 그칩니다.
손 실장은 유상할당 비중 상향 시 산업 경쟁력에 대한 고려가 필수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집약적 장치 산업의 수출을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이뤘습니다. 산업 부문은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 비중과 무역집약도가 모두 높습니다. 산업 부문 무상할당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해 손 실장은 “다배출 업종의 유상할당 전환 또는 다배출 업종의 국제경쟁력 유지를 위한 무상할당 유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무역집약도가 높은 다배출 업종이 유상할당 전환 시 탄소누출* 방지 방안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그는 제언했습니다.
이어 손 실장은 “유상할당 비중 상승에 따른 전력 요금 상승이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유상할당 비중 상향 시 전기고지서에 포함된 ‘기후환경요금’ 역시 그에 맞춰 올라갈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단 것. 올해 기후환경요금은 동결된 상황입니다. 손 실장은 “기후환경요금이 지속동결된 상황 속에서 취약계층이 겪을 어려움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탄소누출(Carbon Leakage): 배출 감축 규제가 강한 국가의 제조업 생산시설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국가로 이전하는 현상을 말한다.
2️⃣ 간접배출 관리방안 개선: 이중규제 해소 필요
발전소 등 전환 부문을 우선적으로 유상할당 비중을 상향할 경우 그게 맞춰 간접배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단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간접배출은 전기 또는 열을 사용할 때도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제를 말합니다.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등 에너지 생산한 곳에서 온실가스 직접배출량으로 산정됩니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이나 열을 사용한 공장도 온실가스를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간접배출량으로 산정되는 등 이중산정의 이슈가 있습니다.
실제로 거래제 도입 당시 철강 등 전력 사용이 많은 업종에서도 간접배출에 따른 부담을 호소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손 실장은 간접배출이 이중규제로 적용될 수 있단 점을 우려했습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간접배출이 이중규제와 관련된 논란을 가지고 있단 점을 짚었습니다. 현재 배출권거래제에 간접배출을 포함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합니다.
3️⃣ 배출권 이월제한 완화: K-MSR 도입 시사
손 실장은 배출권 이월제한 완화가 필요하다는 상황을 전했습니다.
거래제 대상 기업은 정부가 할당한 배출량을 초과하거나 미달하면 이를 배출권으로 사고팔 수 있습니다. 현 거래제는 순매도량만큼만 이월이 가능합니다. 이월되지 못한 배출권은 소멸됩니다.
손 실장은 “잉여배출권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재판매보다 이월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단, 이월제한 완화 시 배출권 시장 공급 물량 감소와 가격 상승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손 실장은 유럽연합(EU)의 시장안정화예비분(MSR)과 같은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는 배출권 시장 안정화를 목적으로 정부가 예비분을 보유해 배출권 공급량을 조절하는 제도입니다.
환경부 역시 국내 배출권 시장의 가격 변동성 완화를 위해 EU의 MSR 제도를 벤치마킹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일명 ‘K-MSR’로 알려졌습니다.
4️⃣ 상쇄배출권 제도: 5% → 10% 늘려…상쇄한도 적정 수준 고민
정부는 기업의 유연한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고자 상쇄배출권 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상쇄배출권 허용 한도는 10%였으나 3차 계획기간에 5%로 줄었습니다. 이를 다시 10%로 늘리는 방안이 고려 중입니다. 손 실장은 적절한 상쇄한도 허용은 필요하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상쇄배출권 사용이 배출허용총량 이외의 배출권을 공급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양한나 환경부 기후경제과장 역시 상쇄배출권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양 과장은 “상쇄를 배출권으로 들고 올 시 배출허용총량이 올라간다”며 “국가 감축목표 달성에 있어 비대상 기업이 (온실가스를) 더 줄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상쇄배출권에 있어서는 적정한 수준을 고민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충국 한국기후변화연구원 탄소가치연구실장 또한 “10%로 올려도 그만큼 쓸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있다”며 “상쇄배출권은 반드시 국내외 구분이 필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5️⃣ 배출허용총량 강화: 2030 NDC 달성 목표 부합 경로
배출허용총량은 쉽게 말해 정부가 각 기업과 사업장에 온실가스를 얼마만큼 배출할 수 있는지 허용한 것을 모두 합친 값입니다. 현재 배출허용총량은 NDC를 기준으로 산정됩니다.
2030 NDC 달성을 위해 배출허용총량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4차 기본계획에서는 현재보다 배출허용총량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최형식 한국환경연구원 탄소중립연구실 부연구위원은 NDC 목표 달성을 위해선 배출허용총량을 줄여야 한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손 실장은 “상향된 NDC와 이로 인한 배출허용총량이 감소할 시 기업의 기술개발과 투자 지원도 강화됐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규제가 강화된 만큼, 지원 역시 늘어야 한단 것이 그의 입장입니다.
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지원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배출권 수요와 가격 모두 급격히 상승할 우려가 있다고 손 실장은 덧붙였습니다.
이밖에도 2030 NDC의 연도별 감축 경로에 맞춰 4차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