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와 관련된 주요국의 규제 동향이 강화된 가운데 한국 기업들 역시 빠르게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습니다.
특히, 기후공시 등 지속가능성 정보가 이제는 재무제표의 영역으로 확대되는 만큼 두 정보 간 연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지난 19일 ‘제15회 ESG 온(ON)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세미나는 ‘국내외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 동향과 기업 대응방안’을 주제로 열렸습니다. 최대 참석자 수는 435여명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ESG 공시 재무정보로 확대…“기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와 구분 필요” 🤔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백태영 위원이 이날 세미나 첫 발제자로 나섰습니다.
ISSB는 140개국이 재무보고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는 국제재무보고기준(IFRS) 산하 조직입니다.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계기로 설립됐습니다.
ESG 공시 등 지속가능성 공시와 관련해 국제 기준을 만드는 기관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앞서 ISSB는 작년 6월 지속가능성 공시를 위한 첫 국제 기준을 채택했습니다.
▲S1(일반 공시 요구사항) ▲S2(기후 관련 공시)로 구성됩니다. 전자는 기업이 단기·중장기에 걸쳐 직면하는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를 재무제표 내 관련 정보와의 연계성을 제시합니다. 후자는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합니다. 해당 기준은 올해 1월부터 적용됐습니다.
ISSB 위원은 현재 총 14명. 백 위원은 유일한 한국인 위원으로, 관련 기준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날 백 위원은 ESG 공시가 비(非) 재무정보의 영역에서 재무정보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는 “(과거) ESG 공시 등은 다중 이해관계자를 위한 기업 홍보(PR) 자료의 관점이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투자자를 위한 정보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컨대 몇몇 지속가능성 보고서들은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의 권고안에 따라 관련 정보를 뒤에 붙이는 형태로 기술했습니다. 해당 보고서 역시 기업 홍보팀이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해당 내용은 보고서 속으로 옮겨와야 할뿐더러, 홍보팀이 아닌 전문팀이 만들어 한단 것. 쉽게 말해 기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의무공시 기준에 따른 보고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백 위원은 “의무공시 틀에 들어가게 되면 ‘유럽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과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의무공시 기준에 따른 보고서를 (각각)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두 보고서를 섞을 순 없다”는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백 위원은 지속가능성 정보와 재무제표가 연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재무제표와 지속가능성 공시가 같은 시점에 발표돼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재무제표와 지속가능성 공시 간 일관성에 대해 백 위원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그걸 제외하고는 볼 수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원칙을 지켜야 한단 것.
그러면서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 잘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완전한 조사가 불가능하므로 기존에 알려진 정보를 포함해 보유한 정보를 기반으로 최대한 합리적이고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가 공시돼야 한단 것.
백 위원은 “가장 중요한 6가지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①리스크와 기회 식별 ②밸류체인(가치사슬) 범위 설정 ③스코프3 측정 ④미래 재무적 영향 공시(기업 내 기술·역량·자원 고려) ⑤기후시나리오 분석 ⑥특정 산업전반 지표 계산 등입니다.
백태영 ISSB 위원, ESG 의무공시 도입 늦출수록 韓 기업에 불리 🗺️
무엇보다 백 위원은 ESG 공시를 부담이 아닌 위험 관리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임팩트 관점이 아닌 기업 경영 관점에서 봐야 한단 말입니다.
백 위원은 “전 세계가 빠르게 의무공시로 나아가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은 이미 앞서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가운데 국내는 ESG 공시가 어렵다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단 것이 문제라고 그는 밝혔습니다.
실제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요 경제단체와 공동으로 ‘국내 ESG 공시제도 관련 기업 의견’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절반 이상이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더 늦출 것을 요구했습니다.
자산 2조 원 이상 125개 상장사 중 58.4%는 ESG 의무공시 도입 시기가 2028년 이후(2028~2030년)가 적당하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백 위원은 “(한국은 ESG) 공시를 2028년에 시작할 분위기”라며 “기업이나 국가가 중요한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회계기준원 수석연구원 “ESG 공시서 투자자 관점 중요하게 봐야” 🏛️
이어 홍현선 한국회계기준원(KAI) 수석연구원이 한국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국내 기업 여건과 현황을 반영해 개발된 기준입니다.
지난 4월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ESG 공시기준 초안은 ISSB가 제안한 구조와 유사합니다.
제1호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를 위한 일반사항’은 지속가능성 사안과 관련된 개념적 기반과 일반사항이 제시됩니다. 제2호 ‘기후관련 공시사항’은 기후 관련 위험·기회에 관련된 공시 요구사항이 제시됩니다.
홍 수석연구원은 “국제 정합성과 기업 수용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다”며 “이중공시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생물다양성이나 물이 아닌 기후공시가 먼저 추진된 이유에 대해선 그는 “정량적으로 공시하기가 유용하고 글로벌 이슈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단, 국내 ESG 공시 공개초안에서는 스코프3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홍 수석연구위원은 의견수렴 후 적용 여부와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홍 수석연구위원 역시 백 위원처럼 투자자의 관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현재 공개된 초안에 의하면, 기업은 재무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선 공시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그는 “재무적 중요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회사가 맡는다”면서도 “이 정보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제3자는 투자자란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투자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는 재무적 중요성에 따라 공시를 해야 한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한 청중은 금융위 등 정부 당국이 ESG 공시를 위해 획일화된 프레임워크를 제공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즉, 공통 양식이 개발될 수 있는지 물은 것.
홍 수석연구위원은 산업군 다양화로 인해 “획일화된 양식을 제공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있다”며 “그 대신 밸류체인이나 중요성 판단에 도움이 되는 사례와 지표를 개발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