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부터 9일(이하 현지시각)까지 나흘간 열린 제10대 유럽의회 선거 결과, 강경우파와 극우정당이 약진했습니다. 물론 유럽의회 내 ‘주류’로 불리는 친 유럽연합(EU) 성향의 중도 진영이 과반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의회 선거체계는 독특합니다. 27개 EU 회원국 유권자는 자국 선거법에 따라 정당에 투표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회원국은 인구 비례해 할당받은 의석수만큼 당선인들을 배분해 유럽의회 의원을 보냅니다.
쉽게 말해 정치성향·이념이 맞는 EU 각 회원국 정당 간 정치그룹(교섭단체)가 유럽의회 내에서 활동하는 체계인 것. 현재 유럽의회 내 정치그룹은 총 7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지난 10일 유럽의회 공식 집계 결과에 의하면,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가 직전 2019년 선거보다 10석을 더 많이 얻은 186석으로 제1당 자리를 지켰습니다. 제2당은 135석을 얻은 중도좌파의 사회민주진보동맹(S&D)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극우성향의 유럽보수와개혁(ECR)은 73석으로 늘었습니다. 기존(69석)보다 4석 더 확보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극우성향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49석에서 58석으로 늘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등에서 극우정당이 대거 약진한 덕분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곳은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입니다. 2019년 71석을 얻었던 녹색당은 선거에서 18석을 잃은 53석으로 떨어졌습니다. 유럽의회 내 정치그룹(교섭단체) 제4당에서 6위로 밀려났습니다.
중도 성향의 자유당그룹(리뉴그룹) 역시 참패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자유당그룹은 기존 102석에서 79석을 차지했습니다.
“마크롱·숄츠 울고, 멜로니 웃다” 유럽의회 선거가 EU 정치권 뒤흔든 까닭 🤔
앞서 언급한대로 유럽의회 선거는 회원국별 선거법에 따라 각 나라 정당에 투표하게 돼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각국 정치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단 뜻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선거 결과는 EU 내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 프랑스
프랑스가 대표적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소속된 집권여당인 르네상스당은 유럽의회 내에서 중도 성향의 자유당그룹에 속합니다. 반면, 마리 르펜 의원이 이끄는 국민연합은 극우성향의 정체성과민주주의에 소속돼 있습니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르펜 의원이 이끄는 극우성향의 국민연합이 약 31%를 득표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르네상스당의 14.6%보다 2배 넘게 앞선 것입니다.
선거 종료 직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의회 해산이 이뤄진 것은 자크 시라크 전(前) 대통령 시절인 1997년 이후 27년만 입니다.
국민연합이 총선에서 약진할 경우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 생명이 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단 분석이 나옵니다.
🇩🇪 독일
독일 역시 극우정당이 약진했습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신호등’ 연립정부에 속한 정당 3곳 모두 극우정당에 참패했습니다.
출구조사 결과, 숄츠 총리가 속한 사회민주당(SPD)의 득표율은 13.9%였습니다.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15.9%를 차지해 2위를 내줬습니다. 이 정당은 ‘나치 옹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단, 숄츠 총리는 프랑스와 달리 조기 총선을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 이탈리아
이탈리아 또한 극우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l)이란 정당이 1위를 차지할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멜로니 총리가 속한 정당은 유럽의회에서 강경우파 성향의 정치그룹 유럽보수와개혁에 속합니다. 이와 관련해 폴리티코 등 주요 정치전문매체는 이번 선거가 멜로니 총리의 승리라고 평가했습니다.
멜로니 총리는 현재 연임을 노리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현 집행위원장과 프랑스 강경우파인 르펜 의원 모두로부터 협력 제안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멜로니 총리가 어느 세력과 손을 잡든 EU의 정책은 오른쪽으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 헝가리
과거 유럽국민당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탈퇴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속한 피데스당도 유럽의회에서 9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입니다.
피데스당은 유럽의회에서 어느 정치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무소속입니다.
🇧🇪 벨기에
벨기에 총리는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책임을 물고 사퇴하기로 했습니다. 유럽의회 선거날(9일) 벨기에에서는 연방 하원과 불어·네덜란드 지방선거가 일제히 실시됐습니다. 선거 결과,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가 속한 열린자유민주당(Open VLD)은 우파 성향 정당에게 크게 졌습니다.
더크로 총리는 “선거 결과가 실망스럽다”면서도 “그에 대한 결과는 내가 책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후임이 결정될 때까지 임시 총리를 맡습니다.
유럽 정치지형 재편, 각국 기후대응 정책 영향 주나? 🚨
극우성향 정당이 약진한 배경에 대해 유럽 전문매체 유랙티브는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 등 전통적으로 녹색당이 강세를 보였던 국가들에서 영향력이 약화한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들 국가에서는 농민 트랙터 시위 등 ‘그린래시(Greenlash)’가 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린래시는 기후대응 등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일컫습니다.
유럽에서는 EU 집행위와 유럽의회가 추진하던 각종 환경규제로 인해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거리로 나선 바 있습니다.
물론 환경규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난민 등의 문제도 유럽 정치를 우경화로 이끌었단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프랑스 조기 총선과 벨기에 총리 사퇴 등 EU 곳곳에서 정치지형이 바뀌는 상황입니다.
EU 외교 전문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회(ECFR)의 아냐 푸글리에린 박사는 독일을 대표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푸글리에린 박사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1위를 차지했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같은 우경화가 계속될 경우 오는 2025년 열릴 독일의 차기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습니다.
한편,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 내 극우세력의 약진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EU에서 극우 정당의 돌풍이 서방 전체로 나아갈 수 있단 것. 미 뉴욕타임스(NYT) 또한 이번 선거가 자국 우선주위를 내세운 ‘트럼피즘(트럼프주의)’ 세력을 고무시킬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을 내놓았습니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 모아보기]
①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 ‘극우’ 약진…EU 기후정책 향방은?
② 프랑스 조기총선·독일 집권당 참패 등 유럽의회 선거에 EU 권력지형 급변 예고
③ EU 그린딜 주도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연임 성공하나?
④ 유럽의회 우경화…“자국우선주의에도 韓 기업 호재 가능성 대두된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