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이 발효를 앞둔 가운데 대(對)EU 수출이 높은 국내 산업군이 직접 영향권에 놓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습니다.
자동차, 이차전지 양극재, 선박, 바이오의약품 산업 등이 언급됐습니다.
KDB산업은행 미래전략연구소는 최근 ‘제822호 산은조사월보(이하 보고서)’를 통해 이들 산업군을 언급했습니다.
10일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연구소는 “(CSDDD가) 현지 법인과 생산시설을 보유한 대기업뿐만 아니라, 수출 중소기업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습니다.
한국에서는 ‘공급망실사법’으로 불리는 CSDDD는 지난 5월 EU 차원의 법적 절차가 마무리돼 발효를 앞둔 상태입니다. CSDDD는 EU 시장 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게 공급망 내 인권 및 환경문제를 식별해 예방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27개 EU 회원국은 CSDDD를 가이드라인 삼아 발효 이후 2년 안에 자국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르면 2027년부터 2029년까지 순차적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역외 기업, 즉 한국 기업은 직원 수 기준 없이 순매출액 기준으로 CSDDD에 적용받습니다.
현재 EU 내 순매출액이 4억 5,000만 유로(약 6,530억원) 이상인 한국 기업들은 모두 실사 의무 대상에 포함됩니다.
EU 공급망실사법 직접 영향 받을 韓 산업군은? 🤔
보고서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10.8%입니다. EU 수출 기업은 약 1만 8,000개로 추정됩니다. 이는 전체 수출 기업(9만 5,015개)의 19%에 해당합니다.
연구소는 “EU 역외기업의 경우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며 “CSDDD 적용을 받는 한국 기업의 수를 추산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산업별로 보면 CSDDD에 영향을 받을 기업들이 확인됩니다.
🚗 자동차|현대자동차, 기아, KG모빌리티
먼저 자동차 산업입니다. 보고서는 국내 완성차 생산업체 3곳을 언급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기아자동차 ▲KG모빌리티 순입니다.
보고서는 “이들 기업은 매출의 약 25~30%가 유럽 시장에서 발생한다”며 “유럽 현지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공급망 실사의 직접적인 영향이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금감원에 올라온 전자공시 자료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이들 기업의 유럽 내 매출 비중은 현대자동차가 30.5%로 가장 높습니다. 이어 KG모빌리티(25.5%)와 기아(23.8%) 순이었습니다.
🔋 이차전지|LG엔솔, 삼성SDI,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이차전지 역시 CSDDD 대비가 필요한 산업군으로 꼽혔습니다. 보고서는 국내 기업의 유럽 현지 생산 공장 소재지인 폴란드와 헝가리가 EU의 이차전지 생산의 68%를 차지한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공급망 실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두 기업의 유럽 내 매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각각 35.6%와 47.4%입니다.
이차전지 소재 생산업체인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양사 전체 매출의 약 35% 이상이 유럽 시장에서 발생합니다.
🚢 선박|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선박 산업 또한 CSDDD 대비가 필요합니다.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이 언급됐습니다. 3개 기업의 지난해 유럽 내 매출 비중은 ▲HD한국조선해양(38.4%) ▲HD현대중공업(24.2%) ▲현대미포조선(65.8%) 순이었습니다.
보고서는 또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 등 다른 조선사들도 친환경 선박 수요 증대에 따라 신규 수주를 이어가고 있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유럽 지역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주요 선박사 모두 공급망 실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 바이오의약품|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종근당
마지막으로 바이오의약품 산업입니다. EU는 전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제약 시장입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수출 상위 국가에는 다수의 EU 회원국이 포함돼 있습니다.
바이오의악품 기업 역시 공급망 실사 대비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유럽 내 매출 비중에 의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63.7%를 차지했습니다. 이어 삼성바이오에스피(59.2%), 셀트리온헬스케어(46.0%), 종근당바이오(35.1%) 순이었습니다.
보고서는 “(바이오의약품 기업은) 지속적인 해외 허가 승인으로 매출의 약 35~60% 이상이 유럽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공급망 실사의 직접 영향이 예상된다”고 내다봤습니다.
“재정·행정 여력 부족한 협력 기업, 공급망 실사 위해선 원청 기업 지원” ⚖️
CSDDD 위반 시에는 연매출액의 최소 5%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일부 회원국에서는 과징금 상한이 더 높게 책정될 수도 있습니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책임 범위가 고위 또는 과실로 인한 피해에 한합니다. 손해 책임이 전적으로 협력 기업에 있는 경우에는 면책이 가능합니다. 물론 실사 의무 위반에 따른 제재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의 수준은 EU 회원국마다 상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보고서는 CSDDD가 발효 후 EU 27개 회원국별로 적용되기까지 3~5년 정도의 시한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럼에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재정적·행정적 여력이 부족한 협력기업이 공급망 실사에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원청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협력 기업들의 실사 결과가 미흡할 시 아예 계약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결과를 입찰 조건으로 담은 표준계약서를 새로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등을 위반 시 납품업체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연구소는 인권·환경 분야 세부항목별로 실사를 수행할 전문기관을 선정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단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회원국의 입법 동향을 검토하고 감독기구의 제재 강도를 파악하는 등 추진경과 역시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기관은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