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최초로 생활폐기물 업사이클링 연료 개발에 도전했던 미국 청정에너지 기업이 사실상 파산 위기에 놓였습니다.
2007년 설립된 ‘펄크럼 바이오에너지(이하 펄크럼)’입니다. 지속가능한 항공유(SAF) 개발 선두 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펄크럼이 최근 직원 대다수를 해고하고 운영도 사실상 중단한 상태라고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습니다. 6명 이상의 펄크럼 전(前) 직원과 접촉한 결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
직원 100여명 대다수가 거의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 역시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앞서 영국 정유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과 유나이티드항공 등 대형 항공사 등은 펄크럼의 가능성에 거액을 투자한 바 있습니다. 한국 SK그룹과 SK이노베이션도 투자자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데이터제공업체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지금까지 펄크럼이 유치한 투자금은 2억 8,110만 달러(약 3,858억원)에 달합니다. 여기에는 SK이노베이션과 SK그룹이 투자한 387억 원이 포함됩니다.
5일 그리니엄과의 인터뷰에서 김병도 SK이노베이션 홍보실 팀장은 펄크럼의 파산 여부에 대해 별도로 확인된 바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어떤 스타트업이든 바로 수익으로 직결되는 길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300억 이상 투자한 SK이노, 펄크럼 투자 전액 손실 처리 💸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이 아예 펄크럼의 상황을 몰랐다고 단정짓긴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이 내놓은 ‘2023년 사업보고서’에 의하면, 펄크럼에 투자한 387억 원 전액이 손실처리된 상태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보고서에서 “펄크럼의 후속 투자 유치 지연으로 인한 재무상태 악화”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초 SK이노베이션은 2022년과 2023년 총 두 차례 투자를 통해 펄크럼의 3.4%의 지분을 보유했습니다. SK그룹 역시 사모투자펀드 등과 공동으로 펄크럼에 총 1,0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펄크럼 파산 시 국내 투자자들은 약 1,000억원 정도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때 SK이노베이션은 펄크럼과 함께 폐기물 가스화 사업의 아시아 진출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초 생활폐기물 연료화 성공했지만…“역으로 기업 발목 잡아” 🗑️
그간 펄크럼은 생활폐기물을 가스화해 합성연료를 생산했습니다. 폐식용유·옥수수 부산물 등을 이용하는 기존의 SAF보다 친환경적이라고 평가받았습니다.
거액의 투자를 바탕으로 2021년에는 세계 최초의 생활폐기물 기반 연료 생산시설 건설까지 성공했습니다. 미 서부 네바다주에 소재한 시에라 바이오연료 공장입니다.
해당 공장은 연간 17만 5,000톤의 생활폐기물을 원료로 약 1,100만 갤런(약 4,100만 리터)의 무탄소 연료를 생산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생산방식이 문제였다고 평가합니다.
미국 사모펀드 YCP의 미치 게이너 파트너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합성가스 공정이 기술적 어려움을 지닌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대규모 공정으로 확대할 경우 안정성이 떨어진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여러 생활폐기물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생산 결과물 역시 품질에서도 일관성이 떨어집니다.
스페인 석유기업 세프사(CEPSA)의 라파엘 라라즈 고문 또한 높은 운영 비용과 기술적 과제 등을 문제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탄탄대로 어긋난 까닭? “부산물 처리에 운영상 어려움 겪어” 🏭
실제로 그간 펄크럼은 네바다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펄크럼 전직 직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네바다 공장 가동 때마다 질소산화물(NOx)이 배출되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습니다.
질소산화물 오염으로 인해 수백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을 뿐더러, 공장 가동도 수개월간 지연됐다는 것.
지역 환경단체 또한 펄크럼 공장의 환경오염에 대해 그간 거센 비판을 이어왔습니다. 다양한 생활폐기물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화학물질이 배출될지 알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이같은 어려움으로 인해 네바다 공장은 건설 2년 만인 2023년에야 첫 SAF 운송에 성공합니다.
이마저 생산량 부족으로 350갤런(약 1,300리터)에 불과했단 것이 전직 직원들의 증언입니다. 해당 시설의 연간 생산가능 용량 1,100만 갤런의 0.1%에도 못 미치는 수량입니다.
이같은 생산량 저하로 인해 작년 10월 신규 자금 조달 역시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당초 펄크럼은 인디애나주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해 신규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채권 규모는 5억 달러(약 6,800억원)에 달합니다. 이를 통해 네바다 공장의 3배에 달하는 신규 공장을 지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10월 인디애나 주당국은 펄크럼의 채권 발행 중단을 명령합니다. 같은달 네바다주 채권 상환에 실패했단 소식에 따른 결정입니다.
펄크럼은 현재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소셜미디어(SNS) 또한 작년 9월을 기점으로 신규 게시글이 중단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