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기후과학자 출신 여성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는 신속 표본집계 결과, 제66대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 소속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가 압도적 표차를 거뒀다고 밝혔습니다.
멕시코 선관위에 의하면 셰인바움 후보가 58.3~60.7%, 상대 야당 후보인 소치틀 갈베스(국민행동당) 후보는 26.6~28.6% 득표가 예상됩니다.
발표 이후 셰인바움 후보는 “나는 혼자가 아니라 모든 멕시코 여성들과 함께 여기에 왔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여성 대통령이 선출된 건 멕시코 헌정사상 200년 만에 처음입니다. 1953년 여성 투표권이 보장된 지 71년 만의 성과란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더욱이 셰인바움 후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저자 출신 기후과학자란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12위인 멕시코의 기후정책이 달라질지 이목이 쏠립니다.
멕시코, 첫 여성 대통령 당선…“IPCC 저자·환경부 장관 출신” 🏆
이번 발표는 7,500개 투표소에서 무작위 표본을 추출해 결과를 예측한 결과입니다. 최종 결과는 6월 5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개표 이후 발표됩니다.
표본집계이긴 하나 득표 차이가 큰 만큼, 결과가 뒤집히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당선이 확정될 경우, 셰인바움 후보는 오는 10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합니다. 멕시코 대통령 임기는 6년입니다.
사실 이번 멕시코 대선에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졌습니다. 여당 후보와 야당 연합 후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간의 관심은 셰인바움 후보의 배경에 쏠립니다. 그중에서도 그가 유명한 기후과학자이자 환경정치인으로 이력을 쌓아왔다는 점입니다.
셰인바움 후보는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에서 물리학과 에너지공학을 전공한 박사 출신입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수도 멕시코시티 환경부 장관으로 일하며 정계에 처음 진출했습니다.
동시에 2007년과 2014년에는 IPCC의 평가보고서에 저자로 참여하며 기후과학자로서 성과를 다졌습니다. 그가 저자로 참여했던 2007년, IPCC는 앨 고어 전(前) 미국 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셰임바움 후보는 2018년에는 멕시코시티의 첫 여성 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배경을 살려 친환경 정책을 다수 도입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전기버스 확보, 옥상 태양광 추진, 자전거 도로 확충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재까지 시장으로 재임 중입니다.
‘재생에너지 전환 확대’ 공언한 셰인바움, 우려 나온 까닭 🤔
셰인바움 후보는 선거 기간 중 재생에너지 인프라(기반시설) 확장에 대한 의지를 여러 번 피력했습니다.
영국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멕시코 전체 발전원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22%에 불과합니다. 멕시코는 전력 상당수(77%)를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통해 생산하고 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멕시코는 최근 재생에너지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에 셰인바움 후보는 지난 4월 재생에너지 발전 프로젝트에 135억 7,000만 달러(약 18조 7,00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풍력·태양광 발전을 늘리고 5개의 수력발전소를 현대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셰인바움 후보는 해당 프로젝트가 멕시코 전력망에 13.66GW(기가와트)를 추가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그는 파리협정을 언급하며 “우리는 2030년뿐만 아니라 2050년까지 국가 에너지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현(現)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민족주의 좌파 정치인으로 국가주의적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자국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자립을 주장해온 인물입니다. 이에 미국을 포함한 외국 자본의 자국 재생에너지 투자를 막아왔습니다.
그는 셰인바움 후보의 멘토로 알려져 있습니다. 쉽게 말해, 현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은 셰인바움 후보가 그에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란 추정이 가능합니다.
정치 컨설턴트 카를로스 라미레즈는 기후전문매체 클라이밋홈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유령이 그를 괴롭힐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둘째, 셰인바움 후보 역시 국가주의자란 점입니다.
이에 대해 라미레즈 분석가는 “셰인바움은 멕시코연방전력공사와 페멕스가 에너지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는 강력한 이념을 갖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페멕스는 멕시코의 국영 석유기업입니다.
현 대통령과 달리 재생에너지 전환을 옹호하지만, 민간 투자 반대라는 점에는 입장이 같다는 것.
라미레즈 분석가는 민간 투자 없이 국가가 주도한다면 “매우 느릴뿐더러,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당면과제는 카르텔 범죄·재정난…11월 美 대선 역시 변수 🗳️
여기에 멕시코의 현 상황에서 당장 기후·에너지 정책이 중점이 되기 어렵단 분석이 다수입니다.
가장 큰 과제는 카르텔 범죄로 불리는 조직범죄 대응입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조직범죄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사회적 문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재임 기간 동안 실종·사망한 수는 22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당장 지방자치단체 의원까지 뽑은 이번 선거 기간 중 각종 공직에 나선 후보 38명이 숨졌습니다.
이와 함께 멕시코가 직면한 재정난 또한 해결이 시급합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조직범죄 해결 방안으로 사회 안정화를 추진했습니다. 이에 각종 사회복지를 늘리면서 국가 재정이 악화된 것.
페멕스가 막대한 부채로 국가 재정난을 가중시키고 있단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한편,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도 멕시코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시 멕시코와의 관계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셰인바 후보는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든 간에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