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 대기업 엑손모빌이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재선임 표결을 앞두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엑손모빌은 오는 29일(이하 현지시각) 열릴 연례주주총회에서 대런 우즈 CEO와 기존 이사 12명을 재선임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엑손모빌 주주 중 하나인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는 이사회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지난 24일 밝혔습니다.
NBIM은 엑손모빌 전체 지분의 약 1.3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규모로만 50억 달러(약 6조 8,400억원)에 이릅니다.
앞서 지난 20일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주 공무원 연금) 또한 주주총회에서 우즈 CEO 재선임 등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미 최대 공적 연금인 캘퍼스는 4,900억 달러(약 77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영합니다. 캘퍼스는 엑손모빌 지분, 약 10억 달러(약 1조 3,680억원)를 보유했습니다.
두 기업의 이같은 입장 표명에는 지난 1월 엑손모빌이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극단적 감축안 주주총회 상정 금지”…엑손모빌, 주주 대상 소송 제기 🤔
이 모든 사건은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월 22일, 엑손모빌은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 소재 지방법원에 주주총회 안건으로 “극단적인 온실가스 감축안이 상정되는 것을 막아달라”며 소송을 제기합니다.
네덜란드 기후단체 폴로우디스(Follow This)와 행동주의 펀드 아르주나캐피털(Arjuina Capital)을 상대로 제기한 것입니다.
‘행동주의 펀드’란 주식투자를 넘어 투자한 기업의 경영 개선도 요구해 적극적으로 주주권리를 행사하는 펀드입니다.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한단 것. 최근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개선이나 기후목표 개선 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두 기관은 그간 엑손모빌 같은 정유업체들에게 더 엄격한 기후목표 설정을 요구해 왔습니다.
엑손모빌은 주요 5대 석유 대기업(셰브론·로열더치쉘·브리티시페트롤리엄·토탈에너지 등) 중 유일하게 스코프3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작년 12월 두 기관은 엑손모빌의 기후목표에 스코프3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주주 제안을 제출합니다.
석유 정제를 넘어 고객사가 엑손모빌 석유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온 탄소도 줄여야 한단 것이 두 기관의 주장입니다.
단, 2022년과 2023년에도 유사한 주주 제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나 찬성표가 각각 27%와 10%에 불과해 부결됐습니다.
NBIM·캘퍼스, 투자자 대상 소송 제기 우려…“이사회 재선임 반대표 시사” 🗳️
투자자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은 있으나, 기업이 주주를 고소한 일은 거의 없어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엑손모빌은 “(두 기관의 제안은) 기업의 수익을 개선하거나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라며 “영업을 위축시키고 세세하게 간섭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법원에 오는 5월 29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가속하는 안을 투표에 부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두 기관은 주주 제안을 철회합니다. 이후 포트워스 지방법원에 소송 기각을 요청합니다. 네덜란드에 소재한 폴로우디스는 관할권 문제로 소송이 기각됐습니다.
반면, 아르주나캐피털을 대상으로 한 소송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법원은 밝혔습니다. 여기에 엑손모빌은 피고 측에 소송 비용을 청구합니다.
NIBM과 캘퍼스 측은 엑손모빌의 이같은 법적 조치가 되레 투자자들의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단 입장입니다.
NBIM은 성명에서 “단순히 주주 제안서를 제출했단 이유로 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에 우려가 된다”면서도 “(해당 소송과 관련해) 엑손모빌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NBIM은 이사회 내에서도 조셉 훌리 수석 사외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캘퍼스 역시 투자자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잠재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 점을 짚었습니다.
투자자들의 주주 제안이 경영진을 구속하는 수준이 아니었을뿐더러, 엑손모빌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주주 제안 철회를 요청할 수 있었단 것이 캘퍼스 측의 말입니다.
통상 미 상장기업은 SEC와 주주 제안을 논의합니다. 주주 제안 안건을 배제하려면 그 사유를 자세히 담아 SEC에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SEC의 권고가 정권에 따라 뒤바뀐다며 일관성이 부족하단 점을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SEC와의 논의 대신 소송을 제기한 엑손모빌의 선례는 다른 기업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캘퍼스는 이에 오는 29일 열릴 주주총회에서 우즈 CEO과 이사회 12명 전원의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시 프로스트 캘퍼스 CEO는 최근 블로그에 “캘퍼스와 엑손모빌의 현재 의견 차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회사 경영진이 좋아하지 않는 주주의 발언을 침묵시키려는 것에 대한 논쟁”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글래스루이스, 엑손모빌 이사 재선임 반대 권고…美 상공회의소 엑손 지지 🏛️
지난 3월 미 의결권 자문기업 글래스루이스 역시 주주들에게 엑손모빌의 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를 권고하고 나섰습니다.
글래스루이스는 엑손모빌이 “비정상적이고 공격적인 전술을 펼치고 있다”며 “주주 제안 안건 상정, 투자자들의 투표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밖에도 브래드 랜더 뉴욕시 감사원장 등 미국 내 여러 인사들이 엑손모빌의 이사회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촉구하고 나선 상태입니다. 이들 모두 엑손모빌이 주주의 권리를 훼손했단 점을 지적합니다.
반면, 미 상공회의소와 200개 기업 연합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는 엑손모빌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주주 행동주의에 따라 기업 내 소송이 증가한 상황에서 맞서 싸워야 한단 것이 이들의 입장입니다.
이번 사건의 결과는 오는 29일 열릴 엑손모빌의 주주총회에서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