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기술 채택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광물 자원 수요와 전자폐기물 배출이 동시에 급증하고 있습니다. 자원 부족과 자원 낭비가 동전의 양면처럼 악순환하는 상황.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전 세계에서는 연간 6,200만 톤 규모의 전자폐기물이 배출됩니다.
이 악순환을 해결할 방안은 없는 걸까요? 최근 이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소재가 공개됐습니다.
지속가능한 재생 전자소재로, 상표명은 ‘전자피부(Electric Skin)’입니다. 여성 과학자 4인이 설립한 동명의 스타트업 일렉트릭스킨이 개발했습니다.
박테리아와 해조류를 기반으로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소재’란 것이 사측의 설명입니다.
해당 소재는 지난 4월 ‘리디자인 애브리씽 챌린지(Redesign Everything Challenge)’ 33개 결선 후보작으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명 디자인 플랫폼 WDCD가 가장 창의적인 기후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케아재단과 함께 진행 중인 디자인 대회입니다.
소재가 어떻게 스스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단 걸까요?
일렉트릭스킨은 이를 설명하는 한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영상 속에는 반투명한 전등갓이 씌워진 전등이 등장합니다. 전등갓에 손을 얹자 불이 켜집니다. 전등에는 전원과 전선이 연결돼 있지 않습니다.
전등 안에 건전지나 배터리가 내장된 것도 아닙니다. 이어 등장하는 소재 개발 과정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반투명 소재에 전압계를 연결하자 전압이 측정됩니다. 소형전구를 연결하면 불도 들어옵니다. 이 과정에서도 어떠한 별도의 에너지원이 보이지 않습니다.
에너지원의 비결은 일렉트릭스킨 연구진이 주목한 특별한 박테리아에 있습니다.
박테리아의 이름은 ‘지오박터 설퍼리듀센(Geobacter sulfurreducens)’.
토양과 퇴적물에서 주로 발견되는 박테리아입니다. 일찍이 미국 매사추세츠애머스트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미생물로 알려졌습니다.
박테리아의 나노와이어*를 활용해서 공기 중 습도 차이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박테리아의 특정 단백질이 증발 현상을 활용하여 전기로 만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당 소재는 가로세로 0.5㎝ 필름으로 최대 0.2V(볼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박테리아가 죽은 후에도 전기 생산이 계속된단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해당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조작해 미생물 연료전지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노와이어: 전하의 이동 통로로서 미세한 기공으로 두 전극 사이에 전류를 생성한다.
일렉트린스킨 공동설립자인 나다 엘카라시 바이오 디자이너는 2020년 우연한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에 실린 ‘진흙은 전기다(The mud is electric)’ 기사였습니다. 해당 기사에는 자가발전 성질을 가진 미생물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 궤적이 소개됐습니다.
엘카라시 디자이너는 “이것이 매우 흥미로웠다”며 “전력 공급이 끝난 뒤 토양으로 되돌릴 수 있는 물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박테리아 내 단백질과 해조류 기반 소재를 더해 만든 전자피부입니다.
해조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퇴비화가 가능합니다. 리튬 등의 광물 없이도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저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장점도 있습니다.
동시에 연구진은 소재의 수명 자체를 연장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왔습니다. 이름에 ‘피부’를 붙이고, 의도적으로 피부와 유사한 질감을 만든 것이 대표적입니다.
엘카라시 디자이너는 생명체와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함으로써 “심리적 차원에서 생명체를 버릴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전자피부는 개념증명(PoC) 단계로, 아직 연구실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향후 이 소재가 일상 속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휴대전화나 건물 전체를 전자피부로 덮어 전기를 생산하고 싶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또 인체에도 거부반응이 없어 의료용 바이오센서 등의 필름으로도 활용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더욱이 전 세계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단 점에서 범용성이 높단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공기 중 수분은 어떤 지역이나 날씨에도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된 수증기는 포집을 거쳐 재활용도 가능합니다.
일렉트릭스킨은 다음 단계로, 연구 활성화와 진입 비용 경감을 위해 나노와이어 생산 규모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프로젝트는 유럽연합(EU)의 ‘워스 파트너십(Worth Partnership)’에 선정돼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유럽 낸 패션과 디자인 산업 내 혁신과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