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에 대한 내부통제체계가 필요하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열린 ‘제4회 스탠포드-아시아 지속가능성 심포지엄’에 참석한 윤용희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 변호사가 강조한 말입니다.
‘탄소중립을 향하여: 기업과 법이 만들어 가는 지속가능한 미래’란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은 법무법인 미션과 미국 스탠포드대학 도어스쿨이 공동 주최했습니다.
도어스쿨은 미국의 전설적인 벤처투자자 존 도어가 11억 달러(약 1조 4,800억원)를 기부해 설립됐습니다. 기후위기와 지속가능성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전문 대학원입니다.
이날 ‘탄소중립 규제로 인한 사업환경의 변화와 도전’을 주제로 발표를 맡은 윤 변호사는 ESG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좋은 기업이더라도 ESG 리스크 크면 협력하지 않을 것” 🙅
윤 변호사는 “(국내 기업들이) 준법 리스크를 넘어선 ESG 리스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SG 경영이 대두되기 전까지 기업들은 국내 법령, 즉 공적 규제를 기반으로 위험관리에 나서면 됐습니다. 그간 매출액과 수익률을 기반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했으나, 이제는 비(非)재무적 요소인 ESG도 고려해야 한단 것이 윤 변호사 말입니다.
윤 변호사는 해외 고객사, 특히 유럽 고객사를 중심으로 이같은 움직임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이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등이 역외 기업들에게도 ESG 리스크 관리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공급망실사법’으로 불리는 CSDDD는 인권과 환경에 대한 기업 실사·정보 공개 책임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CSRD는 유럽연합(EU)의 대표적인 ESG 공시 기준입니다.
그는 “(유럽 고객사들이) ESG 리스크가 없는 곳과 협력을 맺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ESG 리스크가 크면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한다”고 밝혔습니다.
“韓 기업, ESG 경영 위해선 ‘3층 주택’ 내 리스크 모두 관리해야” 🏠
그렇다면 윤 변호사가 말한 ESG 리스크란 무엇일까요?
그는 국내 기업이 식별·관리해야 하는 EGS 리스크를 ‘3층 주택’에 비유했습니다.
1층에는 한국 국내 법령(환경법·공정거래법·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따른 리스크가 있습니다. 2층에는 CSDDD·CSRD 등과 같은 해외 법령에 따른 리스크, 마지막 3층에는 파리협정 등 연성규범*에 따른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윤 변호사는 “과거에는 미국이나 유럽 법을 이야기해도 한국 기업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미국·EU 등 주요국에서 발의된 법률을 지키고자 고객사들이 역외 기업, 즉 한국 기업들도 해당 법률을 지키라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단 것.
또 이들 국가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국내 기업 또한 법의 직접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윤 변호사는 이어 “3층 연성규범은 구속력이 없지만 ESG 논의 맥락에서는 사적 자율규제 메커니즘을 통해 사실상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윤 변호사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ESG 공시기준을 대표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쉽게 말해 한국 기업이 식별하고 관리·대응해야 할 리스크의 양과 질이 매우 복잡해졌단 뜻입니다. 해당 ESG 리스크를 기존 기업 법무팀이 관리할지 또는 별도 태스크포스(TF)가 관리할지도 고민할 지점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연성규범(Soft Law): 직접적으로 법적 강제력은 갖지 않으나, 간접적으로 사회구성원의 행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만들어진 행위규범의 일종.
탄소중립 흐름 속 韓 스타트업 생존 위해선 해외 진출 고려 필수 🌐
국내 스타트업들이 탄소중립 흐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해외 시장에 적극 진출해야 한단 제언도 나왔습니다.
이날 발표에 나선 김서룡 법무법인 미션 변호사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한국 시장을 보고 활동하기에는 작다”며 “한국만 보고 사업모델을 개발하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종이 빨대 제조업체를 예시로 소개했습니다. 작년 11월 환경부는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등 일회용품 규제 계도기한을 무기한 연장했습니다. 그 결과, 종이 빨대 제조업체가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정부가 약속했던) 규제가 실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며 “이같은 역규제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선 스타트업들은 해외 진출을 노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는 국내 스타트업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경기도 기후테크 스타트업 육성 사업 ▲한국국제협력단(KOICA)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CTS) 등을 언급했습니다.
KOICA CTS는 예비창업가나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혁신적 아이디어나 기술에 공적개발원조(ODA)를 적용해 기존 방법으로 해결이 어려웠던 난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김 변호사는 “국내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며 “(스타트업들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3년 전 볼 수 없던 기업 등장” 韓 기후테크 산업 생태계, 변화 흐름 감지 📊
한편, 최근 기후테크 산업 내 투자 흐름에도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단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스타트업 토크 세션에 참석한 조윤민 소풍벤처스 파트너는 “최근 기후적응 부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배출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나, 어떻게 적응해 살아남을 것인에 대한 관심도 떠올랐다”고 투자 동향을 전했습니다.
주요 기관에 의하면, 기후적응은 감축보다 투자가 미약합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적응재원 격차가 최대 3,660억 달러(약 48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
조 파트너는 “기후테크 산업은 2030년까지 어떻게든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라며 “자본이 몰리는 것뿐만 아니라, 사업 기회도 생긴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소풍벤처스가 자체적으로 기업공개(IPO) 도달 시점을 분석한 결과, 기후테크가 상당히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며 “주요 (투자) 신호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임팩트투자사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의 남보현 대표 또한 국내 기후테크 산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남 대표는 “(기후테크) 산업의 규모와 다양성 모두 커지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3년 전에는 볼 수 없던 기업들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상당수가 아직 초기단계이긴 하나, 어떤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지 면밀하게 보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김성훈 법무법인 미션 대표변호사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만이 아니라 투자와 산업계 모든 주체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