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0일 실시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총선 지역구 254곳의 후보자 등록이 모두 마무리됨에 따라 각 정당 대표들이 맞붙는 주요 승부처들도 확정됐습니다. 오는 28일부터는 공식 선거운동도 시작됩니다.
그런데 올해 총선에서 화두로 떠오른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기후위기’입니다.
유권자 5명 중 3명은 기후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다른 정당이나 후보라도 투표를 고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또 3명 중 1명은 이번 총선에서 기후문제를 주요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녹색전환연구소, 로컬에너지랩, 더가능연구소 등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이 발간한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 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보고서는 지난 1월 22일 공개됐습니다.
이번 조사는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 1,000명씩, 모두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여론조사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 무엇일까요?
[편집자주]
설문조사를 통해 찾은 해답은 크게 3가지다. ‘기후위기와 생활 정치의 괴리’, ‘기후재난의 양극화’ 그리고 ‘대변인의 부재’였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기후의제가 한국 정치계에 주요 의제로 떠오르지 못한 원인에 대해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그리니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터뷰는 지난 3월 18일 진행됐습니다.
이 소장은 기후대응이란 사회적 의제가 생활 정치와 연결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 기후위기는 이제 경제문제와 직결돼 있단 점도 피력했습니다.
그는 “기후대응은 에너지와 산업, 일자리, 생활정치 등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북극곰’과 ‘환경부’의 일로 국한해 왔다”고 꼬집었습니다.
특히, 축제나 농업 등 지역이 수도권보다 기후위기로 더 큰 피해를 본다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한국 시민들은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정작 이 문제를 대변할 정치인과 정당이 너무 부족하단 것이 이 소장의 말입니다.
이어 앞서 치러진 국내 모든 선거(총선·대통령 선거·지방선거)에서 기후의제가 영향을 미친 사례를 찾아보긴 어려웠다고 이 소장은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오는 4월 10일 실시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기후위기’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원내 정당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총선 공약을 살펴본 결과, 자유통일당을 제외하고 모든 정당의 10대 공약에 기후대응이 모두 언급돼 있었습니다.
이 소장은 “이번 총선 당선자 임기(2024~2028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피력했습니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 달성을 위해 기후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한 여러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란 뜻입니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를 진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해외에서는 정치인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정치적 발언 없이 정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기후의제가 정치의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무심한가 싶었다.
기후위기에 대해 시민들은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또 실제 그 관심이 투표나 정치적 행위로 이어질까 알고 싶었다.
한국도 기후의제가 정치의제가 돼야 한단 생각이다. 그래서 170여개 질문 문항을 갖고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기후문제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기후문제에 대한 성별·계층별·연령별·지역별·정치성향별·가치지향별 등 차이와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 유권자의 33.5%가 ‘기후유권자’란 결과를 도출했다.
그리고 기후유권자가 이미 기후대응을 위해 거론되는 여러 제도를 깊이 있게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단 사실도 확인하게 됐다.
🗣️ 이번에 나온 ‘기후유권자’란 개념이 생소하다. 기후유권자란 누구인가?
기후의제에 대해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 의제를 중심으로 투표할 의향이 있는 유권자로 이해하면 된다.
주관적 이념성향 기준으로는 보수층(28.8%)이나 중도층(30.6%)보다는 진보층(41.7%)에 기후유권자가 더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31.4%)보다는 남성(35.7%)에 더 많이 분포했다. 연령별로는 20·30대 보다는 60대 이상(35.2%)에서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후위기 민감도 ▲기후정보 인지 ▲기후 투표 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연령이 높아질수록 기후유권자 비중이 높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 유권자 중 33.5%가 기후유권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권자 10명 중 3명은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를 고려하고 있다. 이는 생각보다 높은 수치다. 또 기후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투표를 고민하겠다고 답한 응답이 62.5%에 이르렀다.
한국 정치가 기후유권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본다.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정치인들에게 기후의제를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을 갖게 됐다.
🗣️ 17개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기후선거구’를 도출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지역은 어디였는지 궁금하다.
전라남도가 인상 깊었다. 전남은 기후유권자 비율이 38.1%로,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 가장 높았다.
기후정보 인지도와 민감도 그리고 투표 성향 등으로 기후유권자를 분석한 결과, 기후정보 인지도 면에서는 서울이 제일 높았다. 허나, 기후민감도에서는 전남이 1위를 차지했다. 또 기후유권자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60세 이상 전남 거주자로 나타났다.
이는 ‘재난의 경험’과 연결돼 있다. 2023년 제한급수까지 불러왔던 극심한 가뭄이다. 당시 전남의 가뭄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진행됐다. 가뭄으로 인해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간의 갈등도 있었다. 생활용수도 제한돼 지급됐었다.
가뭄이 일상생활에 상당한 오랜 영향을 끼치다 보니 전남 유권자들에게 당시 상황이 각인된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추후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통해 더 정확히 알아낼 계획이다.
🗣️ 그렇다면 국내 기후테크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무엇인가?
기후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의 기술 발전을 위해선 규제와 제도가 중요하다.
예컨대 일회용품 규제가 강화돼야 그에 맞춰 순환자원 시장이 확장될 수 있다. 환경부의 일회용컵 규제 정책 철회에 관해 물은 결과, 응답자 중 53%가 규제 철회는 잘못이라고 답했다.
현재 한국 시민들은 캠페인을 넘어 정부의 정책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기후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이 제대로 확장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의 변화를 꾸준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 산업계와 노동계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어떤 것인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1.6%는 기후위기가 자산가치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또 거주하는 지역의 산업이 탄소중립 정책에 영향을 받는다면 ‘단기적으로 나쁘나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란 응답도 48.3%로 가장 많았다.
한국 시민들은 기후위기가 자산은 물론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탄소중립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단 것이다.
기후대응과 탄소중립이 어려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결국 산업계와 노동계 모두 이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다른 나라에서도 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혹시 해외에서는 기후의제가 선거를 흔든 사례가 있는지 알고 싶다.
2022년 5월 실시된 호주 총선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호주는 기록적인 산불과 홍수를 경험했다.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며 노동당 출신인 앤서니 앨버니즈 총리가 호주 총리로 취임했다. 녹색당도 당시 선전했다.
또 2021년 7월 대홍수로 180명이 넘게 사망한 독일 또한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기후문제가 의제로 떠올랐다.
미국의 경우 미 콜로라도대 미래사회환경센터(CSEF)가 내놓은 조사 결과를 인용하고 싶다. CSEF가 미국 유권자 4,513명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2020년 미 대선 당시 기후 이슈 덕에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3% 더 많이 득표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블룸버그통신은 3% 득표율 차이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당선시키에는 충분했던 수준이라고 짚었다. 2020년 미 대선 당시 기후의제를 중점적으로 고려해 투표한 비율은 67%, 즉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로 집계됐다.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도 기후재난이 변수로 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미국 청년들이 현 행정부의 기후정책에 실망한 상태다. 향후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이들이 어떤 입장으로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
🗣️ 기후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번 조사로 기후유권자란 용어가 한국 사회에 등장한 것이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총선 기간에 더 많은 기후유권자가 등장할 차례다.
올해 2월 덴마크 코펜하겐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이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흥미로웠다.
기후대응을 위해 소득 1%를 내놓을 수 있냐는 질문을 세계 125개국 13만 명에게 물었더니, 69%가 그럴 수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국가의 다른 사람이 1% 내는 것에 얼마나 찬성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는 34%였다.
한국 시민의 70.89%는 소득의 1%를 기후대응을 위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자국민 100명 중 35명은 기꺼이 돈을 낼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 말은 사실 (기후정치바람이 조사한 것보다) 더 많이 숨겨진 기후유권자가 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단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그 어떤 때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2024 기후총선 모아보기]
① 유권자 3명 중 1명 ‘기후유권자’…“기후공약이 총선 당락 가를 수도”
② 지역별 기후선거구 주요 특징은?
③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22대 총선, 기후대응 위한 골든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