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가뭄으로 일일 선박 통행 대수를 줄였던 파나마 운하가 우기를 앞두고 통행량을 다시 늘리고 있습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물류 동맥인 파나마 운하. 현재 전 세계 해상무역의 약 5%가 파나마 운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허나, 지난해 중남미를 덮친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파나마 운하는 극심한 수량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이에 작년 7월 파나마 당국은 운하 통행 가능 최대 선박 수를 일일 36척에서 32척으로 줄였습니다. 이후 11월 24척, 12월에는 22척까지 줄었습니다. 올해 1월에는 통행 선박 대수를 20척까지 줄였고, 2월에는 18척까지 줄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정과 달리 파나마 당국은 통행 선박 대수를 늘리겠다고 공지했습니다.
22일 파나마운하청(ACP)에서 해운업계에 내놓은 공지를 확인한 결과, ACP는 오는 25일까지 파나마 운하 일일 통항 가능 최대 선박 수를 최대 27척으로 조정할 계획입니다.
ACP는 “파나마 운하의 주요 용수 공급원인 가툰 호수의 현재 및 예상 수위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우량이 일부 회복됐고 파나마 정부 또한 물 절약 및 보존 조치에 나선 덕분입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파나마 당국의) 물 절약 및 보존 조치로 인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당국의 물 보존 조치가 되려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단 것이 매체의 설명입니다.
해수면보다 높은 파나마 운하, 선박 통행 위해선 ‘담수’ 공급 필요 🌊
이를 알기 위해선 파나마 운하의 작동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파나마 운하는 산지에 있습니다. 운하 중앙의 가툰 호수는 해수면보다 26m 높습니다. 이 때문에 파나마 운하는 다른 운하들과 달리 담수를 끌어 올려 운영됩니다.
운하 내 선박들은 계단식 갑문을 이용해 이동합니다. 갑문에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갑문으로 올린 뒤, 운하 가운데를 지난 후에는 다시 갑문에서 물을 빼 내려가는 방식입니다. 파나마 운하는 총 12개 갑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선박 한 척이 갑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최대 2억 3,000만 리터의 담수가 필요합니다. 이는 파나마 국민 50만 명이 하루 사용하는 양과 맞먹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파나마는 1950년 이후 최저 강우량을 보였습니다. 그 여파로 운하 용수 공급원인 가툰 호수의 수위도 급격히 낮아집니다. 즉 갑문에 공급할 수 있는 담수 용량이 부족해졌습니다.
ACP에 의하면, 호수 수위는 작년 12월 약 88피트(약 27m)에서 같은해 7월 약 79피트(약 24m)까지 떨어졌습니다.
역대 최악 가뭄 속 물 부족 대두…파나마운하청 “갑문, 물 재사용 조치” ⚖️
파나마 운하 일일 통행 선박 대수는 최대 50척입니다. 이는 가뭄으로 인해 올해 1월 통행 선박 대수는 20척까지 떨어졌습니다.
통행 선박에 제한이 생기자 파나마 운하 주변에는 병목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공급망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단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이에 지난해 10월 ACP는 물 절약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바로 갑문에서 사용한 담수를 다시 재사용하는 것입니다. 갑문을 채운 담수를 바다로 흘려보낸 기존 방식 대신 담수를 재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같은 보존 조치 덕에 가툰 호수의 수위는 소폭 감소에 그쳤다고 ACP는 설명합니다.
“갑문 작동 시 해수 대거 유입” 파나마 최대 수원, 가툰 호수 염도 ↑ 💧
문제는 가툰 호수의 염도가 치솟고 있단 것입니다. 파나마 운하는 갑문 작동 시 해수와 담수가 섞입니다. 이중 일부는 갑문을 넘어 파나마 최대 수원인 가툰 호수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산하 열대연구소가 관련 데이터를 수집한 이래 가툰 호수 내 염도가 최고치에 도달한 시점은 2020년입니다.
2016년 이전까지 가툰 호수 염도는 0.05ppm 수준이었습니다. 2016년 신(新) 갑문인 ‘네오파나맥스’ 준공 후 선박 통행량이 급증하자 호수 염도는 2020년 0.35ppm까지 치솟았습니다. 패튼 책임자는 “호수 염도가 이때 수준에 가까워졌다”며 “우기 전까지는 염도가 더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운하 내 선박 통행량이 줄었음에도 가툰 호수 염도가 높아진 이유는 당국의 물 재사용 조치 때문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갑문에 사용되면서 염도가 높아진 물을 재사용할수록 더 염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최근 ACP는 선박 통행량을 점차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물 재사용 조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운하 내 일일 선박 통량까지 늘어나면 가툰 호수 염분은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단 우려가 나옵니다.
염도 증가 속 해양생물 호수에 유입…외래침입종 유입 문제도 🐠
물 재사용 과정에서 외래침입종이 유입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패튼 책임자는 호수 내 염도 증가로 인해 가툰 호수에서 해양생물이 관측되는 사례가 늘고 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파나마 당국의 물 재사용 조치가 태평양과 대서양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단 점을 경고했습니다. 나아가 이런 외래침입종이 기존 토종 개체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그는 피력했습니다.
카리브해 일대를 위협하는 ‘쏠배감펭’이 대표적인 외래침입종으로 꼽힙니다. 화려한 지느러미를 가진 이 어종은 원래 남태평양과 인도양에 분포했습니다. 관상용으로 북미에 도입된 후 1980년대 야생에 유출되면서 카리브해와 대서양 나아가 지중해까지 전 세계로 번졌습니다.
쏠배감펭은 독 때문에 포식자가 없을뿐더러, 산호초나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해양생태계를 교란하는 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인류가 의존한 수자원 미래 밝지 않아” 🤔
ACP 소속 수석 수문학자인 에릭 코르도바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새로운 담수 공급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툰 호수 근처에 새로운 저수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파나마 운하에서 나온 염분이 가툰 호수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빗물을 수집할 예정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파나마 운하가 현재 처한 상황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소개했습니다.
정부 당국이 기후문제의 영향을 제한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환경과 경제에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단 것이 매체의 설명입니다.
파나마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한 프레드 오그 전(前) 미 와이오밍대학 토몽공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인류가 의존해온 수자원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파나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난해 미국 미시시피강은 바닷물이 역류해 지역 수돗물의 염분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바닷물 역류는 기후변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과거 미시시피강 하류는 수위와 유속이 강해 바닷물의 유입을 억제했습니다. 허나 지난해 기록적인 고온과 가뭄으로 인해 수위가 낮아지면서 강물 흐름이 약해져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게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최대 강인 메콩강 또한 비슷한 이유로 해수가 쉽게 강으로 유입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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