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공시’ 최종안을 승인한 가운데 제도 시행을 두고 소송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기후공시는 2025년부터 미국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처음 적용되며, 이후 일부 조항이 강화됩니다.
환경단체들은 기후공시 규정을 더 강화할 것을 요구하며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입니다. 반면, 미국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 또한 기후공시 규정 도입에 반대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최소 10곳이 SEC의 기후공시 최종안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시에라클럽, SEC 제소…“스코프3 제외,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 🤔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은 미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에 SEC의 기후공시 최종안과 관련해 지난 14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시에라클럽은 미국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입니다.
환경단체가 미 정부의 기후공시를 상대로 소송을 건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에라클럽은 SEC가 승인한 기후공시 최종안에 스코프3(공급망 내 배출량) 공개 규정이 제외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철회하고 원안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시에라클럽은 성명을 통해 “기후리스크는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며 “SEC는 스코프3를 공시에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투자자 보호 의무를 명시한 연방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SEC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에 “기후공시 안건을 법정에서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업 경영활동 자유 침해” 美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 SEC 제소 ⚖️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미 전역에 설치된 13개 법원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법원, 2심 법원에 해당합니다. 연방 정부 기관이 내린 결정이 제소 대상일 경우 항소법원에 곧장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13개 법원 중에서도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가장 권위가 높습니다. 여기서 내린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곳은 연방 대법원 뿐입니다.
같은날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미 상공회의소는 기후공시 최종안 도입에 반대하며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에 SEC를 제소했습니다.
톰 쿼드먼 미 상공회의소 부사장은 “SEC 기후공시 최종안은 지난 50년간 미국 기업들이 이어온 지배구조에 해를 끼칠 것”이라며 “나아가 더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에너지생산연맹(DEPA) 등 화석연료 기업들이 주축이 된 협회들도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유사한 내용의 소송을 냈습니다.
나아가 조지아·웨스트버지니아·알래스카 등 공화당 소속 10개주 법무장관들은 제11 연방순회항소법원에 SE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황입니다. 13개 중 해당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소송을 준비한 주체가 남부 조지아와 앨라배마 주정부이기 때문입니다.
18일 기준 기후공시 최종안을 놓고 13개 항소법원 중 최소 6곳에서 SEC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주정부와 경제단체가 SEC를 제소한 핵심 근거로는 ‘수정헌법 제1조’가 언급됩니다. 수정헌법 1조는 미국 시민들의 자유와 기본권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그런데 스코프1·스코프2 등 온실가스 배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SEC의 기후공시가 기업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줘 기업 경영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단 것이 경제단체의 주장입니다.
SEC가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 정보 공개를 요구할 권한이 없단 지적도 나옵니다.
SEC를 제소한 패트릭 모리시 웨스트버지니아주 검찰총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SEC 규제는 월권 행위”라며 “기업의 기밀 정보를 강제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수정헌법 1조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제5 항소법원, 기후공시 행정 유예 요청 받아들여…향후 향방은? 🏛️
주정부와 경제단체가 제기한 수정헌법 1조를 법원이 받아들일지는 그간 불투명했습니다. 이전에 기각된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작년 5월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은 SEC가 새로 승인한 ‘자사주 매입 규정’이 수정헌법 1조에서 보장하는 기업 경영활동의 자유를 침해했단 사유로 제기된 소송을 기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15일 나온 결과는 달랐습니다. 미국 천연가스 시추기업 리버티에너지와 노마드프로판트서비스가 기후공시 최종안이 기업 경영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단 사유로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에 SEC를 제소했습니다.
양사는 청원서에서 “(기후공시에 있어) SEC는 명확한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기후공시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선 40억 달러(약 5조 3,200억원) 이상을 지출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양사는 법원에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기후공시 도입을 일시적으로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이들 기업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구체적인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청원인의) 행정 유예 신청이 승인된다”고 문서에 명시됐습니다.
이번 판결은 SEC의 기후공시 최종안이 부적절하거나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헌법과 연방법에 따라 추가적으로 검토하는 동안 기후공시 도입이 일시적으로 유예된단 것입니다.
이튿날 미 유력 법률 전문지 내셔널로저널(NRL)은 “이번 판결의 영향을 과장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대신, 최종 결정은 향후 더 광범위한 법적 절차를 거쳐 이루어질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같은 법원의 판단이 미국의 기후공시와 나아가 세계 기후공시 제도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