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유로 만든 바이오연료를 더는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수 없다는 유럽연합(EU)의 결정에 말레이시아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습니다. 최근 WTO는 이같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제소를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 팜유 2위 생산국인 말레이시아는 2021년 1월 EU의 팜유 바이오연료 사용 제한 조치가 무역장벽이라며 WTO에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14일 그리니엄이 WTO와 EU 집행위원회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열린 1심 판결에서 WTO 분쟁해결기구(DSB)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주장을 과반수 반대로 기각했습니다.
WTO의 분쟁해결제도는 패널(1심)과 상소기구(최종심) 등 2단계로 구성돼 있습니다. 패널은 분쟁당 3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당사국 합의 시 5명까지 구성이 가능합니다.
패널 투표 결과, 2대 1로 말레이시아가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허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번 결과가 되려 ‘승리’라고 자축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입장이 일부 받아들여졌을 뿐더러, 올 연말 발효가 예정된 EU의 ‘삼림벌채금지법(EUDR)’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단 기대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재생에너지서 팜유 기반 바이오원료 제외”…EU vs 말레이·인니 갈등 촉발 🤔
이들 국가의 갈등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EU는 ‘재생에너지 지침 개정안(RED II)’을 채택합니다. 지침은 EU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수급 안정성을 목표로 합니다. 현재 3차 개정안까지 통과됐습니다.
그간 EU는 팜유를 원료로 제조된 바이오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분류하고 보조금을 지급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침을 개정함에 따라, EU 집행위는 팜유를 원재료로 한 바이오연료를 재생에너지 범주에서 제외합니다.
나아가 2030년까지 팜유를 원료로 하는 차량용 바이오연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기로 합니다.
팜유 생산 과정에서 대규모 열대우림이 벌목돼 사라진단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같은 EU의 조치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반발한 것입니다. 두 국가는 세계 팜유 생산량의 85%를 담당합니다. 팜유는 국가 경제의 핵심 산업 중 하나입니다.
2018년 기준 EU 내 팜유 소비량은 760만 톤, 이중 65%가 바이오디젤 같은 에너지 부문에 사용됐습니다. 상당수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됐습니다. 달리 말하면 EU의 조치로 인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주요 수출국이 사라질 수 있단 뜻입니다.
WTO 패널, 말레이 제소 기각…말레이 “EU 상대로 승리한 것” 이유는? ⚖️
WTO가 내린 이번 판결에 대해 EU 집행위는 성명을 통해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EU 집행위는 “WTO가 RED II에 따라 환경 및 기후대응을 위한 EU의 조치를 지지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법무부 또한 이번 판결에 대해 “EU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투표 결과, WTO 패널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의 주장 상당수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팜유 바이오연료를 퇴출하기로 한 EU의 결정 또한 근거가 빈약하다고 패널들은 평가했습니다.
패널들은 “EU가 간접적토지이용변경(ILUC) 메커니즘과 무역 제한 조치를 도입했으나 WTO 회원국에게 제대로 통보하지 않고 또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ILUC 메커니즘은 쉽게 말해 팜유·대두·해바라기유 등 바이오연료 생산 작물 재배를 위해 산림과 열대우림을 개간하는 비율을 말합니다.
유일하게 말레이시아의 손을 들어준 패널도 ILUC 메커니즘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대두 등 다른 작물 또한 ILUC 배출량이 높으나 EU가 팜유만 문제 삼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일부 주장이 수용된 것입니다.
실제로 EU는 2030년까지 차량용 바이오원료에서 팜유 사용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기로 한 반면, 유채와 해바라기유 등 역내에서 생산되는 바이오원료 작물에는 별도 규제를 두지 않았습니다.
2030년까지 팜유를 원료로 한 바이오연료 퇴출 계획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WTO의 지적에 EU 집행위 또한 “위임법을 조정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말레이시아 농장·상품부는 WTO의 이번 판결에 EU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별도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12월 인도네시아 또한 WTO에 같은 사유로 EU를 제소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지난 5일 공동 판결을 예고했습니다. 허나, 전날(4일)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청으로 판결이 미뤄졌습니다.
팜유 둘러싼 WTO 판결, EU 삼림벌채금지법 발효에도 영향 주나? 🌲
한편, 이번 WTO의 판결은 EU의 삼림벌채금지법을 둘러싼 갈등 상황에서 나와 더 관심을 모았습니다.
삼림벌채금지법은 불법 삼림벌채 지역에서 생산된 7개 제품군에 대해 EU 시장 내 유통 및 판매 금지를 골자로 합니다. 7개 제품군은 ①팜유 ②대두 ③목재 ④코코아 ⑤커피 ⑥소고기 ⑦고무 순입니다. 이와 별개의 세부 품목도 지정돼 있습니다.
해당 법안 작년 6월 29일 공식 채택됐습니다. 실질적인 발효는 올해 12월 말로 예정돼 있습니다. 규정 발효 이전, 즉 2023년 6월 29일 이전 생산된 제품은 규제에서 제외됩니다.
삼림벌채금지법에 따라 해당 7개 제품군과 하위 세부 품목을 EU에 판매 또는 유통하려는 기업은 실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해당 제품군이 삼림벌채 지역에서 생산하지 않았단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지리정보, 인권 보호 여부, 부패 방지 등의 정보가 포함된 실사 확인서를 제출해 해당 상품이 삼림벌채와 무관하단 점을 입증해야 한단 것. 이를 증명하지 못하거나 위반할 경우 해당 지역에서 연 매출액의 최대 4%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됩니다.
현재 삼림벌채금지법을 두고 가장 반발하는 국가는 단연 말레시이아와 인도네시아입니다. 그중에서도 팜유 업계의 반발이 큽니다.
이에 EU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EUDR 이행을 지원한단 계힉입니다. 작년 6월 구성이 완료됐으며, 지난 2월 제2차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럼에도 갈등은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인도네시아 바이오연료생산자협회(Aprobi)는 자카르트포스트에 “EU의 삼림벌채금지법이 시행되면 (팜유 기반) 바이오디젤 수출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밖에도 양국의 가구 수출업체들과 코코아 재배 농가 또한 EU의 삼림벌채금지법에 이미 충격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 국가를 포함한 남반구의 최소 17개국이 EU의 삼림벌채금지법이 과도한 무역장벽이라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