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 급증으로 인해 미국 내 유틸리티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늘고 있습니다. 산불의 원인으로 노후화된 전력망이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극단적 기후변화도 이들 화재 규모를 더욱 키우면서 진압을 더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비용은 결국 소비자들이 부담할 것이란 평가도 나옵니다.
11일 그리니엄이 미국 컬럼비아대학 산하 사빈기후변화법센터(이하 사빈센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산불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만 총 30건의 기후소송이 확인됐습니다.
이중 3건은 유틸리티 기업을 상대로 법적 책임과 보상금을 요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유틸리티 산업은 전력 생산·송전·배급 등 에너지에 필요한 필수 기반 산업을 일컫습니다.
美 역사상 2번째 큰 산불…엑셀에너지 “산불 원인 ‘전선 스파크’ 때문” 🔥
당장 미 남부 텍사스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을 일으킨 주범은 송전선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전선에서 튄 불꽃, 즉 스파크가 산불의 도화선이 됐단 것입니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유틸리티 기업 엑셀에너지는 성명을 통해 “스모크하우스 크리크 화재가 자사의 전선 설비에서 점화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사측은 피해 지역 주민들의 보험금 청구를 권고했습니다. 다만, “전력 시설 관리 및 운영에 있어선 미흡한 조치는 없었다”며 “(뒤이어 발생한) 윈디 듀스 화재에는 책임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엑셀에너지는 미국 내 8개주(콜로라도·미시간·미네소타·뉴멕시코·사우스다코타·노스다코타·위스콘신·텍사스주)에 유틸리티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텍사스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산불 중 팬핸들 지역을 휩쓴 화재는 ‘스모크하우스 크리크 화재’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미 피해 지역 주민들은 엑셀에너지와 다른 2개 전력 기업을 상대로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주민들은 마을 근처 전선이 끊어지면서 화재가 촉발됐다고 주장합니다.
텍사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텍사스 서북부 팬핸들 지역에서 시작된 산불의 피해 면적은 총 107만 8,086에이커(약 4,363㎢)로 파악됐습니다. 서울시(약 605㎢)의 약 7배가 넘습니다. 텍사스 산림청은 해당 화재가 전선 스파크에서 일어난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 역사상 2번째의 대규모 산불입니다. 산불로 인해 총 2명의 사망자가 확인됐고, 최소 5,000여명의 주민이 대피했다고 주정부는 밝혔습니다. 현재 화재 진압률은 약 87%입니다.
텍사스 산림청은 스모크하우스 크리크 화재에 이어 인근에서 발생한 ‘윈디 듀스 화재’ 역시 전선 스파크에 의해 시작됐다고 밝혔습니다. 윈디 듀스 화재는 약 582㎢를 태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 텍사스 산림청은 정확한 화재 발생 경위는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텍사스 대형 산불, 기후변화가 화재 규모 부추겨 🤔
한편, 텍사스A&M대학 대기과학과의 존 닐슨-개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이번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습니다. 그는 “고온·저습·강풍 등 3개 조건이 맞물렸기 때문에 산불이 급속도록 확대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스모크하우스 크리크 화재 첫 발화지역 인근 도시인 에머릴로는 당일 낮 최고기온이 27.8℃였습니다. 이는 예년 낮 최고기온 평균치인 12.2℃의 2배를 웃돈 것입니다. 주정부에 의하하면, 텍사스주는 1975년 이래 10년마다 평균기온 0.34℃씩 오르고 있습니다.

마우이 화재 원인 ‘전선 스파크’ 지목…“배상책임 인정 시 파산 가능성 ↑” 📉
엑셀에너지가 산불로 인해 소송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2021년 엑셀에너지는 콜로라도주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송을 당해 대응 중입니다. 일명 ‘마샬 화재’로 인해 콜로라도주에서는 2명이 사망하고, 3만 7,5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또 약 1,100여채의 주택들이 전소했습니다.
콜로라도 주정부의 조사 결과, 화재의 1차 원인은 주택에서 나뭇가지를 태우던 중 발생했습니다. 이후 돌풍이 불면서 불씨가 엑셀에너지의 송전탑으로 옮겨져 발화되며 2차 대형 화재로 번졌단 것이 주정부의 설명입니다.
지난해 8월 발생한 하와이주 마우이섬의 대규모 화재 또한 전선 스파크가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마우이섬 화재로 97명이 사망했고, 주택 등 건물들 2,200여채가 전소되거나 무너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화재로 피해 입은 마우이섬 당국은 지역 송전망 운영사인 하와이안 일렉트릭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당시 미 기상청이 허리케인 적색경보를 내렸으나 운영사가 전기설비의 전원을 차단하지 않았단 것.
이 때문에 강풍에 끊긴 전선이 마른 덤불에 닿아 대형 산불을 일으켰단 주장입니다. 사측은 산불의 원인을 자사의 탓으로 돌린 마우이섬 당국의 주장에 반박했습니다.
그럼에도 하와이안 일렉트릭의 책임으로 밝혀질 시 수십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넘어 파산까지 이를 수 있단 전망도 나옵니다.
이미 무디스·피치·스탠다드앤푸어스(S&P) 글로벌 등 3대 신용평가사 모두 하와이안 일렉트릭업의 신용등급을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강등한 상황입니다.
캘리포니아 산불 책임 PG&E, 17조 배상…퍼시피코프 파산보호 신청 💰
소송 등으로 인해 유틸리티 기업이 파산할 뻔한 사례도 여럿 있습니다.
미 최대 유틸리티 기업인 퍼시픽가스앤드일렉트릭(PG&E)이 대표적입니다. PG&E는 2017년과 2018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화재의 직접적 책임이 있단 판결을 법원으로부터 받았습니다.
당시 막대한 피해 보상 청구 소송을 감당하지 못해 2019년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피해자 7만여명과 135억 달러(약 17조원) 규모의 보상안에 합의하면서입니다.
이후에도 거듭된 산불로 보상 규모는 늘고 있습니다. PG&E는 2020년과 2021년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과 관련해 전선 관리 불량이 원인이란 판정을 받아 기소됐습니다. 이에 PG&E는 2020년 화재에 5,000만 달러(약 660억원)의 보상액을 지급하고, 2021년 화제에도 4,500만 달러(약 593억원) 규모의 합의안을 승인했습니다.
미 서부 6개 지역에 전력 서비스를 제공하는 퍼시피코프 또한 상황이 어렵긴 매한가지입니다.
이 기업은 2020년 오리건주 산불, 2022년 오리건주·캘리포니아주 산불에 대한 손해 배상금과 합의금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퍼시피코프가 물기로 한 합의금만 7억 3,500만 달러(약 9,700억원)에 달합니다. 미 법무부도 산불 대책 소홀 등의 사유로 퍼시피코프를 제소할 계획입니다.
퍼시피코프는 현재 300억 달러(약 40조원) 규모의 부채로 인해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손해배상, 전력망 개선 등 유틸리티 기업이 직면한 재정 문제 2가지” 🤔
송전선 등 미국 내 전력설비 대다수가 1950~1970년대 무렵에 설치됐습니다. 이 때문에 미 에너지부는 전체 전력망의 약 70%가 노후화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각종 자연재해가 빈번해짐에 따라 복구가 필요한 전력망 설비들이 늘었고, 앞선 사례와 같이 사건사고도 늘어난 추세입니다.
이로 인해 유틸리티 기업들은 크게 2가지 재정적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피해자와 보험사에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하고, 동시에 추가 피해방지를 위해 전력망 개선 사업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합니다.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PG&E은 전기요금을 2023년 18%에서 2026년까지 32%로 높일 계획입니다. 퍼시피코프 또한 산불 예방 계획의 일환으로 전기요금을 14% 인상했습니다.
미 스탠포드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마이클 와라 부교수는 기후전문매체 그리스트에 “소송에도 상당한 대가가 따르며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현실적으로 그 피해는 회사 주주와 소비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퍼시피코프는 수익악화로 주주들에게 배당금 지급을 중단했습니다. 또 향후 몇 년간 배당금 지급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미 퍼시픽노스웨스트국립연구소(PNNL)의 유틸리티 전문가인 케빈 슈나이더 박사 또한 비슷한 지적을 내놓았습니다. 송전선 지하 매설 작업, 송전선 인근 가지치기 작업 등 전력망 개선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
슈나이더 박사는 “이 막대한 비용 청구는 기업에게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리스트는 기후적응을 위해 정부가 도로, 수자원, 대중노선 등 공공부문 개선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하고 있지만 “전력망 내 기후적응 노력은 정부가 아닌 유틸리티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이는 “화재에 대해 책임 당사자인 유틸리티 기업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이 비용들은 일반 주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화재에 대해 책임 당사자인 유틸리티 기업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결국 이 비용들은 일반 주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