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한때 좌초될 뻔했던 유럽연합(EU)의 자연복원법(NRL)이 유럽의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결과, 자연복원법은 찬성 329표·반대 275표·기권 24표를 받아 최종 가결됐습니다. 54표 차이로 통과된 것입니다. 이제 27개국으로 구성된 EU 이사회의 승인만 받으면 됩니다.
자연복원법은 EU 차원에서 회원국이 달성해야 할 복원 목표치를 못 박은 최초의 법입니다.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가 2022년 6월 제안했습니다. 기후중립 달성과 지속가능한 산업 환경 구축 목표를 내놓은 ‘그린딜 계획’의 핵심 법안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자연복원법은 기후대응과 생물다양성 회복을 목표로 2030년까지 EU 내 육지 및 바다의 최소 20%를 복원한단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역내 파괴된 생태계를 2040년까지 60%, 2050년까지 90%를 원래대로 되돌린단 계획입니다.
유럽환경청(EEA)에 의하면, EU 역내 생태계의 약 81%가 복원이 필요합니다.
이 법안은 애초 작년 11월 3자 협상이 타결된 덕에 유럽의회와 EU 이사회의 최종 승인만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해당 절차는 통상 형식적 절차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당시 의회 승인을 위한 투표를 앞두고 유럽의회 내 우파 성향 정당들이 결속해 막판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EU 육지·바다 면적 20% 복원, 자연복원법 추진서 농민들이 반대 외친 까닭 🤔
이들 정치세력이 자연복원법에 제동을 건 이유, 바로 농어업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때문입니다. 법안 초안 공개 당시부터 유럽 내 농어업 내 반발이 극심했습니다.
당초 EU 집행위가 내놓은 초안에는 생태계 복원을 위해 역내 농지 면적의 최소 10%를 복원한단 목표가 담겼습니다. 중도우파 성향 정치그룹인 유럽인민당그룹(EPP)은 이 목표가 경작 면적을 줄여 농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여기에 최근 유럽 각지에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확산하자 EPP를 포함한 보수정당들은 농민 피해 가능성을 앞세워 자연복원법 폐기를 주장했습니다.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농민 표심을 의식했단 분석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의회 회기가 끝나는 오는 4월 전까지 의회 승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안이 좌초될 수 있단 우려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날 투표 결과 예상보다 찬성표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유럽의회 다수당이자 자연복원법 폐기에 앞장선 EPP에서 찬성표를 던지는 등 이탈표가 다수 나온 탓입니다.
투표 직전 EPP 소속 아일랜드 의원들은 자연복원법에 찬성을 던질 것이라고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유럽의회, 자연복원법 통과…76개 대기업, 주요 환경단체 “일제히 환영” 👏
유럽의회 내 중도좌파 성향인 사회민주진보동맹(S&D) 소속 세자르 루에나 의원은 “자연복원법은 누구에게나 불리한 법이 아니다”라며 “자연을 위한 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이 자연 보호와 보존에서 자연 복원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자연복원법 가결을 촉구해온 주요 환경단체와 기업들 또한 환영 의사를 내놓았습니다. 앞서 법안 제정이 어려움을 겪자 코카콜라유럽·네슬레·이케아(IKEA) 등 유럽 76개 기업이 자연복원법 통과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환경 파괴는 원자재 수급 타격으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법안 반대에 앞장서 온 우익 성향인 유럽보수개혁연합(ECR)은 “(자연복원법은) 농촌 지역에 경제적 위험과 행정적 부담을 수반할 불행한 결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U 이사회 채택만 남은 자연복원법, 초안보다 약화했단 평가도” 📊
한편, 유럽의회를 통과한 자연복원법은 EU 이사회 최종 채택만 남은 상황입니다. EU 이사회가 해당 법안을 채택할 시 EU 관보에 게재된 후 발효됩니다.
이번에 유럽의회를 통과한 자연복원법은 당초 초안보다 약화했단 평가가 나옵니다.
EPP 요청에 따라 법안에는 “예외적인 상황에 따라 농업 생태계 내 복원 목표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이는 유럽 내 농업 생산성이 충분하지 않은 ‘긴급 사태’에 한해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2030년까지 화학 살충제 사용을 50% 줄인단 기존 목표도 삭제됐습니다. 앞서 지난 6일 EU 집행위는 해당 목표가 담긴 ‘농업용 살충제 감축 의무화 규제’ 법안을 철회한 바 있습니다. 최근 농업 정책에 반발한 유럽 농민들을 달래기 위한 조치입니다.
농업 부문을 제외하고는 기존 목표 상당수가 그대로 통과됐습니다.
2030년까지 역내 육지·바다의 최소 20%를 복원한단 목표의 경우 EU의 ‘생태보호구역(Natura 2000)’ 복원에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이는 EU 전체 산림의 29%에 해당합니다.
또 같은기간 꿀벌 등 꽃가루 매개체 개체수를 회복한단 내용도 담겼습니다. EU 내 30억 그루의 나무를 더 심고, 2만 5,000㎞ 길이의 수로를 하천으로 복원한단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이탄지대*를 복원한단 목표도 명시됐습니다. EU는 2030년까지 이탄지대의 최소 30%, 2050년까지 50%를 복원한단 계획입니다.
*이탄지대: 석탄의 일종으로, 이탄지대는 이탄이 얕은 물에 잠겨 수천 년에 걸쳐 퇴적되면서 생긴 지역을 말한다. 일반 토양보다 10배 이상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세계 최대의 탄소저장 창고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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