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설립 후 5억 달러(약 6,650억 원)를 투자받은 독일 수직농장 스타트업 인팜이 유럽 시장에서 전면 철수했습니다. 네덜란드와 영국 지사 등 일부 유럽 지사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같은 악재로 기업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인팜은 유니콘 기업 목록에서 제외됐습니다.
23일 그리니엄 취재를 종합한 결과, 한때 11개국에서 수직농장 사업을 진행하던 인팜은 9개국에서 사업을 종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위스 시장을 철수함에 따라 유럽 시장을 포기했다고 봐야합니다. 아시아에서 유일했던 일본 시장도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캐나다 시장은 유지되고 있으나 사업이 대폭 축소됐습니다.
주요 수직농장 재배시설이 폐쇄한 가운데 회사는 여러 소송에 휘말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유럽 최대 수직농장 기업이던 인팜…”누적 투자금만 약 5억 달러” 💰
2013년 설립된 독일은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수직농장 기업이었습니다.
독일 대표 식료품 체인점인 에데카(Edeka)나 대형 음식점과 협력해 실내 수직농장을 설치하는 사업을 주로 진행해 왔습니다. 신선채소 재배와 판매를 한 곳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인팜은 수요지에서 바로 재배돼 공급된 덕에 유통이나 물류 등 중간 과정이 필요 없단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중간 과정에서 유통 물류로 발생한 탄소발자국과 농업폐기물을 줄일 수 있단 것도 이점 중 하나로 내세웠습니다.
인팜은 “소매업체나 음식점을 위한 수직농장이 토양 기반 농업보다 57배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사의 클라우드 기반 제어 센터 덕에 작물의 영양분 공급과 빛, 물소비량 등이 원격제어 및 모니터링된단 것이 주요 근거였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경기침체로 투자가 주춤했을 당시에도 인팜은 대규모 투자를 여럿 유치했습니다. 2020년 3월 시리즈 C 투자에 성공했고, 2021년 12월 시리즈 D 투자에도 연이어 성공하며 인팜의 누적 투자금은 총 5억 달러가 됩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유럽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환경·건강·웰빙 같은 가치와 함께 로컬푸드(지역농산물) 소비 습관이 떠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인팜, 11개국 1800개 매장서 1400개 이상 수직농장 운영 🥬
대규모 투자 덕에 인팜은 독일을 포함해 11개국으로 1,800개 매장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보유한 수직농장만 1,400개 이상. 전 세계 직원 규모도 한때 1,000명 이상을 넘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인팜이 재배에 성공한 작물한 75종에 이릅니다.
인팜 공동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에레즈 갈론스카는 투자 유치 당시 “투자금을 활용해 직원 채용을 늘릴 것”이라며 “채소류를 넘어 칠리나 버섯, 토마토 등 작물 재배를 다각화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어 갈론스카 CEO는 “(수직농장에서 재배된) 프리미엄 농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경기침체 속 회사경영 악화…직원 1000명 중 절반 이상 해고 💼
그러나 갈론스카 CEO가 말한 포부는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시리즈 D 투자 이듬해인 2022년부터 인팜은 빠르게 하락세를 걷습니다.
유례없는 경기침체와 급격한 에너지가격 상승 탓에 수직농장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2022년 2월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유럽연합(EU)은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 내 에너지가격은 다른 대륙보다 급등했습니다.
전력소비량이 높은 수직농장으로써 에너지가격 상승은 회사경영에 큰 타격이었습니다. 공급망 대란으로 인한 자재비 급등도 회사 운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더욱이 고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것도 인팜을 비롯한 수직농장 업계에는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수직농장에서 나온 채소류는 가격이 높아 기존 농산물보다 경쟁력이 더 낮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2022년 11월 인팜은 전체 직원 중 절반인 500명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이후에도 해고가 여러 차례 단행됐고, 현재 회사 직원은 250~300명 안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팜 독일 본사 폐쇄…영국·네덜란드 지사 파산, 주력 재배시설 문 닫아 📉
에너지가격 상승은 거의 모든 수직농장 기업을 흔들었습니다. 네덜란드 글로우팜은 폐업을 결정했고, 미국 앱하베스트와 에어로팜 또한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인팜의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2023년 7월 인팜은 독일 베를린 본사를 폐쇄하고 영국 런던으로 이전합니다. 이후 인팜 영국 지사와 네덜란드 지사는 파산을 신청합니다.
영국 중부 도시 베드퍼드에 있던 축구장 1.5개 크기인 주력 재배시설도 영구 폐쇄됐습니다. 덴마크·프랑스 등 다른 지역에 있던 지사도 사업을 접으며 유럽 시장 철수를 결정합니다.
인팜은 대규모 정리해고 당시 성명을 통해 “에너지가격이 유럽 전역에서 2배 이상 상승하는 등 사업에 추가 압박이 상당하다”며 “수익성 향상을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2023년에는 수익화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수직농장 시설을 확대하고, 중동 카타르로 사업을 확장할 것이란 계획도 내놓았습니다.
이중 어느 것도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작년 3월을 기점으로 인팜은 소셜미디어(SNS) 계정 운영이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회사 공지나 보도자료 또한 배포되지 않고 있습니다. 갈론스카 CEO를 비롯한 회사 공동설립자 3명 또한 링크드인 같은 SNS 계정을 삭제하거나 운영을 멈춘 상태입니다.
전직 직원 “회사 경영진 ‘전형적 스타트업 사고방식’으로 회사 경영” 지적 💸
이에 대해 인팜 전직 직원들은 회사 경영진이 “전형적인 스타트업 사고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큰 사업을 미리 약속하고 그다음 실행하는 방식을 추구했단 지적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인팜의 전 고위직원은 유럽 스타트업 매체 시프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인팜은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며 “이후 고객사들이 사업을 위해 다가왔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하지만 그 시점에는 사업 확장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인팜이 수직농장에서 재배에 성공한 딸기가 사례로 언급됐습니다. 회사 경영진은 바질 같은 허브류로는 수익 창출이 충분하지 않기에 딸기 같은 작물 재배에 성공할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전직 직원은 “연구개발(R&D) 부서는 딸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했지만, 회사 경영진은 이미 계약을 체결한 뒤였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재배 성공 기술개발 직전까지는 일반 농가에서 수급한 딸기를 고객에게 판매하는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수직농장 건설이 어려운 곳에 계약이 체결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예컨대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지하 매장에 수직농장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단 것.
이 때문에 “운영부서는 제한된 기술로 각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표준 작물보다 품질이 떨어짐에 따라 계약이 결국 취소됐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2021년 인팜 회사 총수익 115억 < 손실 1840억”…협력업체 소송 잇따라 🏛️
인팜이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한 반면, 수익률은 저조했습니다.
2021년 인팜의 총수익은 800만 유로(약 115억원)였습니다. 전년보다 380만 유로(약 54억원) 늘어난 것이었습니다.
같은해 인팜은 사업을 덴마크와 영국으로 확장하고, 영국 베드퍼드에 주력 재배시설을 개장합니다. 이로 인해 회사 손실은 2020년 7,460만 유로에서 2021년 1억 2,780만 유로(약 1,840억원)로 급증했습니다.
같은해 회사 인건비는 7,700만 유로(약 1,11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2020년 3,800만 유로(약 547억원)의 2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인팜이 사업 대비 과도한 인력을 채용했단 지적도 나옵니다. 예컨대 인팜 네덜란드 지사는 작년 9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후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해당 지사를 인수한 한 채권자는 “인팜이 등록된 기록보다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인팜의 유럽 시장 전면 철수는 주요 협력사에게도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에 있던 한 공급업체는 회사와의 계약이 “2022년 12월 1일 갑작스레 종료됐다”며 “대금 지불 요청에 인팜이 응답한 것은 3개월 뒤였다”고 밝혔습니다.
인팜이 대금을 지불한 시점은 공급업체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직후였습니다. 영국 법원에는 인팜을 상대로 2건의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계약 위반’ 혐의로 각각 철강 및 건설기업이 제기했습니다.
영국으로 본사 옮긴 인팜, 2024년 재기 가능하나? 🤔
유럽 시장 전면 철수를 결정한 인팜은 2024년 현재 어떤 사업을 하고 있을까요?
일단 인팜은 재기를 노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본사를 옮긴 인팜의 공동창업자들은 현재 2개의 법인을 설립한 상황입니다. 인팜테크놀로지스로 등록돼 있었으나 이후 법인명은 변경됐습니다.
그리니엄이 영국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법인 자료를 확인한 결과, 두 법인 모두 같은 건물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갈론스카 CEO가 ‘메이 디뉴(May DNU)’의 이사를 맡고, 남은 2명이 다른 법인인 ‘메이 에쿼지션즈(May Acquisitions)’를 맡고 있습니다.
또 영국 기업청에 조회한 결과, 지난 1월 4일(이하 현지시각) 인팜은 본사명을 ‘메이 XYZ(메이 XYZ)’로 바꾼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직 인팜 직원은 “인팜이 (유럽 내) 파산한 시장에서 자산을 회수하기 위해 영국 법인을 설립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갈론스카 CEO가 맡은 기업이 서비스형 농업 기업으로 재출발하는 것이 인팜의 향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중동 카타르에 새로운 수직농장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장비 상당수를 중동 업체에 판매했단 증언도 나왔습니다. 앞서 카타르투자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인팜은 2023년까지 대형 수직농장을 카타르에 건설할 것이란 포부를 내비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인팜의 재출발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으로 내다봤습니다. 직원 대다수가 해고됨에 따라 작물 재배 기술 상당수도 소실됐기 때문입니다.
[2023년 수직농장 대기업 파산·폐업 이유 모아보기]
① 소리소문 없이 5억 달러와 함께 사라진 수직농장 기업 ‘인팜’
② “지상에서 가장 지독한 지옥” 수직농장계 테슬라 美 앱하베스트가 폐업한 이유는?